같은 동에 사는 8층 엄마가 울상이다. 내용인즉슨 7층에 사는 할머니가 수시로 인터폰으로 연락해서 애들을 뒷 발꿈치를 들고 다니라고 훈계를 한단다. 아무리 까칠한 할머니라지만 그 집에도 손주가 있을 텐데. 40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의 한 동은 작은 마을인 셈이다. 층간 소음으로 크게 분쟁하는 사건도 쉽게 접하는 세상이고 보면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큰 복
길가 편의점 앞 의자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본다. 모름지기 맥주는 여럿이 술잔을 부딪치며 마셔야 제 맛일 텐데. 일명 ‘치맥(치킨+맥주)’도 대세이긴 하나 요즘엔 이도 저도 다 귀찮고 오롯이 편의점에서 캔 맥주 하나로 위로받는 이들도 있다.술 문화도 변하고 있는가 보다. 빌딩 사이로 어둠이 내리면 땀에 절여진 고독한 도시남의 한숨
지난달엔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50십 중반에 처음으로 호사를 누렸다. 로마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책이나 TV에서나 보던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이래서 여행을 또 하는가 싶다. 유독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로마의 휴일’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 돌계단에 앉아 오드리 헵번 흉내를 내다 그만 웃음이 터졌다. 바티칸시국을 들어가기 위해 찜통더위에 이유도 정확히 모
나 어릴 땐 김치와 된장국 밥상에 고등어구이 한 마리만 올라와도 군침을 흘리며 먼저 먹으려다 눈총 받기 일쑤였다. 특별 메뉴였다. 요즘엔 입맛도 각각이고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나서 고등어도 귀한 대접을 덜 받는다.거기다 한술 더 떠 TV에선 푸근한 인상의 셰프들이 ‘먹방’, ‘쿡방’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등…. 마술사처럼 뚝딱뚝딱 요리를 척척
노란 버스들이 꼬리를 문다. 유치원 차량 행렬이 지나고 ‘사랑 나무’라는 버스가 자주 아파트 단지를 돈다. 요양원 차량이다. 누가 또 실려 가시나? 가슴이 철렁해진다. 100세 시대의 세태를 반영하듯 요양원 간판이 늘어간다.선택 없이 세상에 왔듯이 큰 기운이 시간의 바퀴를 타고 돌다 어느 순간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또 하루를 살다, 먼 길을 가기 전 간이
계란은 경전이다. 계란을 사다 냉장고에 모셔두고 문 열고 볼 때마다 든든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마치 경을 읽고 난 뒤처럼.어린 시절 우리 집은 양계장을 했다. 더운 날 닭똥 냄새는 고역이었지만 훈장 같은 벼슬로 경쾌하게 모이를 쪼아 먹는 닭들의 소리는 숲 속 마을의 작은 오케스트라였다. 학교 갔다 와서 언니와 나는 큰 바구니를 들고 계란 빨리 담기 내기
아들이 없는 빈방의 침대를 보다가 울컥 울음을 쏟았다. 요즘 만나기 싫은 사람들은 “아들 어느 대학 갔어?” 하고 은근 떠보는 학부모들이다. 남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내 아들은 거꾸로 지방으로 갔다. 집 근처에서 뱅뱅 돌며 초중고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가족과 멀리 떨어진 아들. 적응은 잘할까? 보고 싶으면 어쩌지…. 안절부절못하고 정작
과일가게를 지나는데 알 굵은 매실이 탐스럽다. 가끔 사 먹던 매실장아찌를 직접 담아보려고 한 박스 샀다. 꼭지를 따고 손질해서 소금물에 절여 놨다. 두세 시간 지난 뒤 매실을 건져 물기를 말리고 큰 다라에 붓고 운동기구인 작은 덤벨로 톡톡 치니 씨앗이 쉽게 분리된다. 유리병에 설탕과 버무려 거실 한쪽에 놓으니 뿌듯하다. 일주일 뒤부터는 아삭한 매실 장아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