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길가 편의점 앞 의자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본다. 모름지기 맥주는 여럿이 술잔을 부딪치며 마셔야 제 맛일 텐데. 일명 ‘치맥(치킨+맥주)’도 대세이긴 하나 요즘엔 이도 저도 다 귀찮고 오롯이 편의점에서 캔 맥주 하나로 위로받는 이들도 있다.
술 문화도 변하고 있는가 보다. 빌딩 사이로 어둠이 내리면 땀에 절여진 고독한 도시남의 한숨 하나가 담배연기를 타고 허공 속으로 오른다.
쉰세대 들의 술집 문화에는 성인쇼 장, 스탠드바, 칵테일 전문점, 카페 문화가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상사를 따라 우르르 2차까지 몰려다니기도 했다. 술이 있는 밤은 고단한 일터에서 억압됐던 감정들이 분출되는 시간이다. 이성으로 무장됐던 긴장감이 이완되며 없던 용기도 불쑥 생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이 급물살을 타고 비즈니스가 성사되기도 한다. 물론 과음하면 실수도 하고 비난의 손짓을 받기도 하지만. 여하튼 밤은 여백이 있어서 좋다.
토크 문화가 성숙하지 못 한때에는 기계가 크게 한몫을 하는 놀이문화가 휩쓸고 가기도 했다 디스코텍, 단란주점, 노래방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모처럼 회식이 있는 날엔 삼겹살 구이에 소주 한 잔. 다음 코스로 그럴듯한 공간으로 옮겨 간다 해도 자리 앞에선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뭐 그리 신통한 대단한 화젯거리도 빈약했다. 그 틈새로 시끄러운 반주와 음악소리가 어색한 빈 공간을 채워줬다. 반주가 흐르면 세상을 다 가진 가왕처럼 변신하며 대리만족의 기쁨을 맛보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때가 정도 많고 좋았던 시절로 기억된다. 우리의 밤 문화가 늦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이면엔 녹록하지 않은 삶의 다른 얼굴로 봐도 무방하리라.
요즘의 신세대들의 직장문화는 많이 변해서 직장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꿈속에서나 있으려나. 사람간의 끈끈함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각자 이기적 개인주의로 자기 생활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유행도 세월도 돌고 돈다지만 사람은 더불어 어울리며 조화를 이룰 때 세상사는 맛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곁에 있어도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 됐다. 술은 독주보다는 주거니 받거니 마셔야 제 맛 일텐데.
‘가맥’(가게 맥주를 즐기는 것)은 특히 빈 의자와 함께 마시는 ‘혼자만의 가맥’은 왠지 그렇다. 그런 풍경 앞에 설 때면 혹시 내 남편은 아닐까? 늑대처럼 밉다가도 엄마같은 보호 본능이 발동되는 아내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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