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월의 달콤쌉쌀한 인생

노란 버스들이 꼬리를 문다. 유치원 차량 행렬이 지나고 ‘사랑 나무’라는 버스가 자주 아파트 단지를 돈다. 요양원 차량이다. 누가 또 실려 가시나? 가슴이 철렁해진다. 100세 시대의 세태를 반영하듯 요양원 간판이 늘어간다.

선택 없이 세상에 왔듯이 큰 기운이 시간의 바퀴를 타고 돌다 어느 순간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또 하루를 살다, 먼 길을 가기 전 간이역처럼 요양원을 거쳐 가기도 한다. 두해 전 저희 어머님도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 먼 길을 가셨다. 그곳을 드나들면서 저의 미래를 들킨 것 같아 놀란 가슴이 된다. 잘났든 돈이 많든 허망하기 짝이 없는 말년 한 평 위의 생이다.

밥때가 되면 홀에 모여 아무 표정 없이 음식을 드신다. 식탁 위에 날라 온 작은 바가지 물에 틀니를 헹구어 툭툭 털고 잇몸에 맞춘다. 한 할머니는 아침부터 등본을 떼러 동네에 간다고 생떼를 부린다. 갑자기 식구가 그립고 낯선가보다. “엄마, 엄마!” 하며 한참을 피도 살도 안 섞인 요양사가 손잡고 달래니까 수그러든다. 한때 호령하시던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다.

하루는 어머님을 부축하고 옥상에 산책을 갔더니 풋고추, 상추들이 텃밭처럼 안도감을 준다. 어머님은 흙냄새가 그리운지 호미질 흉내를 내신다. 옥상 빨랫줄에는 속옷들이 생의 의지처럼 펄럭이고 고춧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눈을 맞춘다.

날갯죽지 접고 있다, 둥지 옮긴 티티새가/비바람에 엉겨 붙은 흙먼지 털어내고/ 속울음 삼키는 저녁 어미 살내 맡고 있다.//
퀭한 두 눈 깜빡이며 남은 초록 쪼아대다/다 야윈 맨 다리로 외딴 집 되돌아 나와/침묵의 그루터기에 하얀 깃털 나부낀다.//
잎마름병 번진 줄기 비어가는 관절마다/활짝 폈던 꽃잎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떠밀린 ‘당신들의 천국’ 뉘를 위한 천국인가?//(자작시 「티티새의 날갯짓?)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물살이 폭포를 뛰어내려 다시는 오를 수 없는 벽처럼 돌아갈 수 없는 집, 우리 부모님들의 현주소다. 옆 침대에 낯선 할머니가 어리둥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짐을 푼다. 따님인지, 제게 삶은 옥수수 한 자루를 건넨다. 옥수수 잎에서 문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색, 삼베로 짓는 옷처럼 갈색 슬픔이 뚝뚝 떨어진다.
웰빙, 웰빙 하며 좋은 것만 찾으며 허둥거릴 일이 아니다. 한 번쯤은 끌고 온 하늘의 무게 잠시 내려놓고 웰다잉을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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