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월의 달콤쌉쌀한 인생

나 어릴 땐 김치와 된장국 밥상에 고등어구이 한 마리만 올라와도 군침을 흘리며 먼저 먹으려다 눈총 받기 일쑤였다. 특별 메뉴였다. 요즘엔 입맛도 각각이고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나서 고등어도 귀한 대접을 덜 받는다.
거기다 한술 더 떠 TV에선 푸근한 인상의 셰프들이 ‘먹방’, ‘쿡방’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등…. 마술사처럼 뚝딱뚝딱 요리를 척척해낸다. 주부 입장에선 별로 유쾌하지 않을 때가 많다. 요리라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장에 가서 재료를 구입해야 되고 다듬고 손질하고 볶고 삶고 한 끼 먹고 나면 쌓이는 설거지 양은 어떻고…. 하루는 한 끼가 아닌 삼시 세끼 아닌가?
식생활의 실제 주부의 노동량은 감추고 겉의 화려한 면만 보여주니 유감일 수밖에.
식사는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로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다. 도시의 젊은 주부들은 아침에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브런치 카페’에 모여 우아하게 모닝커피와 빵과 샐러드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세련된 사교의 시간을 보내는 족속들도 있다. 한 끼 식사의 종류와 방법도 여러 가지 있지만 상대방을 생각하며 정성으로 지은 밥과 찬에 비할 수 있을까? 비 오는 날이면 아득한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 말을 안 들어서 혼난 적이 있다. 심부름을 제대로 못한 죄로 점심을 굶기라는 아버지 명령에 어두운 방에서 두 손 들고 벌을 섰던 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무섭고 시간은 더디 갔다.
저녁 무렵이 됐다. 문을 열고 할머니가 나를 따라오라며 부엌 쪽마루로 데려갔다. 김이 솔솔 나는 흰쌀밥에 고등어를 숯불에 구워서 작은 밥상에 차려 주시고는 들키지 말고 잘 먹으라는 게 아닌가? 목이 메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감격이란.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현대인의 생활은 메마르고 개개인의 생활도 바쁘다. 직장인은 회식도 많고 주부도 각종 모임으로 밖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다.
주말부부든 다른 이유로 각자 흩어져 산다 해도 집에서 함께 모일 때는 외식도 좋지만 가족을 위해 맛있고 영양 있는 밥상을 차릴 때 느껴지는 행복감을 놓치지 말자. 지지고 볶는 고소한 내음도. 식구들이 함께 상을 차리며 짤랑거리는 수저 소리도 행복의 하모니로 연주될 테니.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음식을 먹으며 그간의 주변 얘기, 속 깊은 얘기들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라는 일체감이 후식처럼 또 양식으로 채워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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