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같은 동에 사는 8층 엄마가 울상이다. 내용인즉슨 7층에 사는 할머니가 수시로 인터폰으로 연락해서 애들을 뒷 발꿈치를 들고 다니라고 훈계를 한단다. 아무리 까칠한 할머니라지만 그 집에도 손주가 있을 텐데. 40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의 한 동은 작은 마을인 셈이다. 층간 소음으로 크게 분쟁하는 사건도 쉽게 접하는 세상이고 보면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 하겠다. 어쩌다 반상회에 참석하면 한동안 안 보이던 이웃이 긴 여행을 간 것이 아니고 안부 대신 부음으로 전해 듣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추수 무렵이면 고사를 지낸 후 떡을 이웃에 돌리는 곳이 있다. 애경사를 함께 하며 큰일에는 계를 태워서 힘을 보태주는 곳도 있다. 도시와 농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난가을에는 친구가 양평에 작은 터에 집을 마련하여 주말 생활을 시작했다고 초대했다. 몇 집이 모였다. 도심에서 1시간 남짓 거리인데다 경치도 수려했다. 소꿉놀이 같은 편백나무로 지은 아담한 집은 나무 냄새가 좋았다. 난방은 나무를 태워서 하는데 타닥타닥 탈 때의 냄새는 커피 맛을 더 깊고 그윽하게 했다. 작은방에 몸을 맡기니 근심 걱정도 다 내려지는 것 같다. 머리가 맑아진다. 창으로 내다보는 경치가 그림 같다. 앞마당에서 남편들은 장작을 패며 힘내기를 하고 바비큐에 음식이 익어갈 때 피어오르는 연기가 넉넉함을 더한다. 한 끼를 나누며 그곳에 터를 잡게 된 얘기... 남편이 암과 투병 중인 슬픈 얘기를 들었다.

막상 도심을 떠나 새로운 활력과 건강을 다지는 제2의 보금자리에 문제가 생겼단다. 불편한 이웃을 만난 것이다. 처음 이사 와서 집 마당에 잡초를 뽑고 울타리의 경계가 없기에 작은 나무들의 가지를 얼떨결에 잘라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웃집도 주말에만 오는 중년 부부였는데 본인들이 정성 들여 키운 나무들을 베었다며 흥분했고 진심의 사과가 통하지 않자 냉랭한 관계가 되었다. 농장에 오갈 때마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불쾌한 심사가 되었다.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이웃사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텐데. 시골 담장을 허무니 수만 평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는 시인도 있다. 마음의 벽도 허물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새로운 삶을 펼치는 낯선 곳에서 원수가 아닌 다정한 이웃으로 차 한 잔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은 그림도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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