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지난달엔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50십 중반에 처음으로 호사를 누렸다. 로마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책이나 TV에서나 보던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이래서 여행을 또 하는가 싶다. 유독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로마의 휴일’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 돌계단에 앉아 오드리 헵번 흉내를 내다 그만 웃음이 터졌다. 바티칸시국을 들어가기 위해 찜통더위에 이유도 정확히 모르고 4시간씩 긴 줄을 서야 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이니까.
꽃미남들이 거리에 넘친다. 불만은 내색하지 않았다.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는 국민들이 문화유산으로 먹고살다니. 울 아들은 시간만 나면 방학 때 알바 궁리에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쌓으려고 고민인데 이곳 청년들과 표정이 달라도 이리 다를까. 부러움 반 안타까움 반이다. 동전을 준비해 갔는데 ‘트레비 분수’는 공사 중이라 아쉬웠지만 그 옆에 ‘젤라또’ 아이스크림 집은 유명세로 북새통이었다. 깊은 에스프레소 한 잔의 맛도 잊기 어렵다. 굵직한 문화유산과 먹거리가 경쟁력으로 마술처럼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물 흐르듯 경제가 돌고 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도 인종 전시장 같은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들 틈에 끼어 광장을 걷다 돌아보니 문득, 이 나라의 저력이 또 고개를 든다.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발로 아픔이 서린 남쪽의 폼페이에도 화산재 밑에서 유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좁은 길엔 마차가 지났던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라져간 고대왕국은 더 이상의 슬픔이 아닌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차창으로 스치는 구릉마다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들이 초록의 성찬을 차린 듯 눈이 시원하다. 문득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고개를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의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건들이 지나갔다.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면 우리의 관광 경쟁력은 무엇일까 가끔 생각하게 된다. 경주와 여수 밤바다가 문득 스친다. 여수 밤바다의 멋이 베네치아보다 못한 게 뭐란 말인가. 과학적 영농기술을 접목하는 요즘의 농촌을 생각하며 먹거리로 히트 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상상해 본다. 과일과 유실수 열매를 활용한 우리만의 독특한 음료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 안 되나. 마시자마자 입이 검붉게 변하는 복분자 주스 맛에 이끌려 코리아를 다시 찾듯.
문화는 문화유산대로, 톡톡 튀는 우리만의 농산품이 관광객을 당겨오는 효자노릇 하길 고대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리무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