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쌉쌀한 인생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과일가게를 지나는데 알 굵은 매실이 탐스럽다. 가끔 사 먹던 매실장아찌를 직접 담아보려고 한 박스 샀다. 꼭지를 따고 손질해서 소금물에 절여 놨다. 두세 시간 지난 뒤 매실을 건져 물기를 말리고 큰 다라에 붓고 운동기구인 작은 덤벨로 톡톡 치니 씨앗이 쉽게 분리된다. 유리병에 설탕과 버무려 거실 한쪽에 놓으니 뿌듯하다. 일주일 뒤부터는 아삭한 매실 장아찌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부푼다.

해마다 매화꽃이 후드득 터지는 초봄과 매실을 담글 때면 시골 우물가에 피었던 매화나무가 떠오르고 내 마음은 어느새 고향의 빈집에 달려가 있다. 우물가에서 찬물로 등목하며 엄마의 손길을 느끼던 아버지도, 온 동네를 놀이터처럼 쏘다니다 흙투성이 발을 닦던 동생도 이젠 흩어진 그림들. 녹슨 펌프만 기억을 퍼 올린다.

매화가 터질 때면 가신님을 다신 볼 수 없는 허망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자연의 순환에 생살을 뚫고 아련한 그리움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인지 나는 봄이 되면 매화를 만나러 남쪽 마을로 달린다.
매화나무는 봄엔 꽃을 선물하고 여름엔 매실로 먹거리를 준다. 씨앗은 잘 말려서 베개 속으로 활용하면 숙면을 취한단다. 매화나무는 버릴 것이라곤 없는 나무다. 눈의 즐거움과 양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밭이랑마다 거칠고 옹이가 굳은 나무엔 가지마다 튼실한 열매를 가득 달고 있다.
내 삶도 어느새 주름의 폭이 길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내 삶의 멘토처럼 두루두루 유용하게 쓰이는 매화나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쓸모로 다가가는가,  흠집 많고 한없이 작은 내 모습은.
이제 얼마 후면 꽃도 잎도 다 떨군 자리, 열매마저 내준 나목은 새봄을 준비하며 고매(古梅)는 물돌기가 바빠지리라. 매화나무의 쓸모를 생각하며 내 삶의 좌표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어본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