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국인근로자 주거시설 강화 지침에도
2년여 전 포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사고 되풀이
“1500만원 지원 사업은?…실현가능한 대책 내놔야”

■ 다가오는 영농철, 농촌인력 실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충북 음성 임모씨의 수박농장에 외국인근로자 4명이 투입됐다. 인력을 구해야만 농사에 속도가 붙는데, 지자체와 농협에서 시행하는 인력사업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아 민간 인력사무소를 통해 수수료를 지불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매주 지출되는 인건비와 줄인상된 농자잿값이 임씨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충북 음성 임모씨의 수박농장에 외국인근로자 4명이 투입됐다. 인력을 구해야만 농사에 속도가 붙는데, 지자체와 농협에서 시행하는 인력사업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아 민간 인력사무소를 통해 수수료를 지불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매주 지출되는 인건비와 줄인상된 농자잿값이 임씨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외국인근로자 숙소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최근 경기 포천의 한 돼지농장에서 숨진 뒤 유기된 태국인 근로자가 열악한 숙소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숨진 근로자가 불법체류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영농철을 앞둔 농업·농촌에서는 사태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는 모양새다.

불법 외국인 고용 농가들 비상
“불법 외국인근로자들의 숙소 등 근로환경 실태는 2년여 전과 다름없네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고용한 농업인들의 속은 지금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거예요.”

포천 사건과 관련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불법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한 농업·농촌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관리·감독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시선이 쏠리자 해명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당장 노동부는 “고용허가제(E-9, H-2 비자)가 아닌 사증면제(B1) 등으로 입국한 뒤 불법체류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한 농가에서는 열악한 숙소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지난 2020년 말 경기 포천에서 외국인근로자가 ‘간경화’로 사망하면서 노동부는 외국인 주거시설 강화 지침부터 마련했다.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숙소에서 생활하다 한파로 인해 동사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

노동부, 농업 사업장 40곳 적발
노동부는 “2021년부터 1월1일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 대해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해 왔다”고 강조했다. 단, 지자체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을 받은 경우에는 허가한다.

또 지침 시행 이전에 해당 숙소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근로자가 희망하는 경우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알렸다. 특히 지난해 고용허가를 받은 농업분야 사업장 중 지침 위반이 의심되는 200곳을 별도 선정해 주거실태 특별점검을 실시했다는 것.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허가 신청을 받을 때 제출한 것과 달리, 기준을 위반한 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고 있는 사업장 40곳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조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숙사 등 주거환경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현장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외국인근로자가 입국 전에 현지에서 숙소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숙식비 지침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9월부터 노사정이 참여하는 실무특별팀을 운영, 개선방안을 논의 중이며, 그 논의 내용 등을 토대로 합리적 숙식비 관련 기준을 조속히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졸속 대책이 또 다른 화 불러”
정부의 이 같은 해명에도 농업·농촌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졸속 대책으로 또 다른 화를 부른다”는 비판이 나온다. 2021년 당시 외국인 주거시설 강화 지침과 함께 실시한 농업분야 외국인근로자 주거지원 사업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탓이다.

해당 사업은 외국인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빈집 또는 이동식 조립주택의 개보수와 설치에 드는 비용 1500만원을 지원한다. 당시 사업 신청을 원하는 농가는 그해 4월까지 읍·면·동 사무소에 사업신청서를 제출하면 됐다. 대상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1명 이상의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어야 하며, 빈집 또는 이동식 조립주택 설치 터를 확보하고, 임차할 경우 소유주와 7년 이상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관련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농가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로 일회성 시범사업에 그치고 말았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해명이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이루면서 해당 금액으로는 농촌 현실에 부합하는 외국인근로자 숙소를 짓거나 개보수할 만한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불법 족쇄 언제 벗어날까”
경기 용인의 한 농장주는 “지침을 강화한다고 불법 농가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겠냐”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지원 대책을 내놔야 농가들도 불법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충남 천안 한 농장주는 “요즘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외국인근로자들도 많이 배우고 현지 사정을 잘 알아서 열악한 환경이라면 꺼리는데 안타까운 사건이 또 일어났다”며 혀를 찼다.

전북 진안 한 농장주는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등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기숙사를 내 집 앞에 짓는다고 하니 지역 민심이 술렁인다”면서 “농가에선 혹시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앞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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