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다가오는 영농철, 농촌인력 실태는... 농촌 인력수급 반응 ‘온도차’
농업인력 공급 비중 ‘사설인력’ 가장 높아
“까다로운 내국인 조건 맞추느니 차라리…”
임금만 기준 삼는 불법 외국인 근로자 선호
“승합차에 외국인 싣고…하우스 동당 선납”
“지난해 태국에서 온 부부가 10년 동안 불법체류 신분으로 농장 일을 하면서 난방비를 아끼겠다고 나무를 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불법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인 거죠.”
요즘 시설하우스에서 오이 생산이 한창이 충남 천안의 한 인력사무소 대표의 말이다. 천안지역 농가에서는 종종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데, 불법체류자인 경우가 많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미 타성에 젖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설상가상으로 농번기에는 사설인력 등 브로커들이 활개를 친다”며 “브로커들이 승합차에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태우고 다니면서, 하우스 동당 값을 매겨 농가에 선납을 받아 운영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이 지역에 불법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보니 인력사무소들도 불법 알선을 신고하는 등 서로 견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오이 시설하우스는 낮에는 뜨겁다고 새벽부터 불 밝혀서 일하고, 수확기에는 휴일도 없이 오이를 따니까, 근로 환경을 따지는 내국인 고용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전남 무안의 한 인력사무소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밭일이 고되다 보니 내국인 근로자들이 농촌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합니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농가에서 찾으니 외국인 근로자를 중개할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정부정책에도 농번기 농촌일손 턱없이 부족”
농협중앙회 ‘시·군별 농업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우리나라 농업인력 공급 경로는 사설인력, 인력중개센터, 자가, 농협, 동네품앗이, 농업기술센터 등이다. 이 중 공급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사설인력이고, 다음은 인력중개센터, 자가 순으로 나타났다.
농가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실정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사설인력을 통한 고용은 더욱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민간 인력중개센터들은 “정부에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영농인력이 집중되는 농번기에는 농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고, 인력사무소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 중개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화성의 한 인력사무소 직원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파견에 앞서 간단한 체조, 음주 여부와 열 체크 등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체류인 것을 알고 있지만, 힘든 하우스 작업에 안전사고가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인력사무소는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근로 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불법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연고지도 불분명하고 여러 인력사무소에 등록한 뒤 임금을 높게 주는 곳으로 옮겨가며 일하기 때문에 관리도 쉽지 않다고 한다.
“육체노동 영농현장, 외국인에 더 의존할 것”
하지만 농가에서 환경 등 근로 조건이 까다로운 내국인 근로자보다 임금만을 기준으로 삼는 외국인 근로자를 더 선호하는 탓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계속해서 모집한다고 전했다.
화성의 또 다른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어떤 농가에는 불법 외국인 근로자들이 상근하기도 한다”면서 “인력사무소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꼬집었다.
충남 부여에서 30년 넘게 인력중개센터를 운영해 온 A씨는 “3년 전부터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외국인 근로자를 중개하지 않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농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오고, 작업이 익숙해질 만하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 등 관리에 어려움이 커지면서다.
그는 “부여는 계절근로자 등 합법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활성화된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내국인 근로자 중개를 하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농가에 인력을 공급하는 인력사무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농인력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농가에서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현장에서는 인력이 농가로 다 빠져나가서 현장에 사람이 없다는 불만이 몰려들기 때문. 또 겨울철에는 인력이 남아 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강원 원주에서 17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는 농번기에 겪는 인력난에 더해 인력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내국인 구직자는 대개 정년을 훌쩍 넘겼거나 명예퇴직을한 이들이라는 것. 그는 “요즘 젊은 청년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면서 “영농 현장은 점점 더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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