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참여하는 모니터링 통해 지속성 높여야
보전·발전에 지자체 역할 중요…조례 제정 추진
농식품부, 국가중요농업유산 대상 직불금 검토

국가중요농업유산은 2022년까지 전국 18지역이 선정됐다.(사진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4호 경남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시스템. 물 빠짐이 심한 해안지역의 토양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논배미마다 둠벙을 조성했다. 고성군청 제공)
국가중요농업유산은 2022년까지 전국 18지역이 선정됐다.(사진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4호 경남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시스템. 물 빠짐이 심한 해안지역의 토양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논배미마다 둠벙을 조성했다. 고성군청 제공)

■기획특집 - 우리 마을 농업유산 어떻게 활성화할까…

열악한 환경 극복한 조상의 지혜 담겨
농업인이 해당 지역에서 환경·사회·풍습 등에 적응하면서 오랫동안 형성시켜 온 유·무형의 농업자원 중에서 보전하고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국가가 인정해 지정하는 농업유산 ‘국가중요농업유산’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18곳이 지정돼 있다.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인 전남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은 전통온돌과 유사한 구들장을 통수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논바닥 밑에 설치하고 그 위에 진흙으로 틈새를 메운 후 흙을 덮어 만든 논이다. 경지면적이 적고 돌이 많아 물 빠짐이 심한 청산도의 열악한 농업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조상들의 애환과 지혜가 담겨 있다.

전남도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가 또다시 국내 최초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친환경농업의 1번지인 농도 전남의 이미지와 지역 브랜드 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인구 고령화와 농업의 현대화에 따른 농촌다움 상실, 공동체 붕괴에 맞닥뜨리면서 보전에 어려움이 크다. 빈발해지는 기후변화와 농법 현대화로 전통적인 농업시스템이 허물어지고 있는 점도 큰 위기요소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0호 의성 전통수리 농업시스템에서 못종은 논물을 조절해 주는 핵심적인 요소다.(의성군청 제공)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0호 의성 전통수리 농업시스템에서 못종은 논물을 조절해 주는 핵심적인 요소다.(의성군청 제공)

주민 참여도 높여야 지속성↑
국가중요농업유산은 ‘농업유산 지정 관리 기준’에 의거 연 1회 이상 모니터링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세계중요농업유산은 2년 주기로 전문가 참여 모니터링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농업유산지역은 매년 2억원의 보전관리비를 지원받아 유산 정비와 복원·활용·홍보 등의 사업을 지자체와 주민협의체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2년 주기로 전문가 참여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농업유산의 지속적 보전·관리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3년이란 한정된 사업 기간과 기본계획 수립, 자원 정비와 홍보 사업에 치중한 결과, 보전관리에 대한 실질적 모니터링은 거의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이 대두됐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모니터링과 평가의 기준과 내용, 조사양식이 모호해 종합적이고 실효적인 모니터링이 실제로 이뤄지기 힘들고, 결과 활용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단순히 시설을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유직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2021년 ‘주민참여형 농업유산 모니터링 체계 구축방안 연구’(2021)에서도 농업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을 위해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모니터링 구역을 농업유산 지정지역·핵심구역·지구지정구역 등으로 구분하고, 주민들이 자체평가 체크리스트를 개발해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직불제 개편의 일환으로 국가중요농업유산을 직불금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직불제 개편의 일환으로 국가중요농업유산을 직불금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자체 역량 높이고
농업유산직불금 신설 필요

국가중요농업유산의 보전과 개발을 위해 해당 지자체의 역량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와 관계 공무원 몇몇을 제외하고 농업유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지역이 여전히 많다.

정명철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 연구사는 “의성 전통 수리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논물을 조절해 주는 나무로 만든 못종인데, 담당공무원이 ‘전국 어디에나 있는 거 아니냐’며 농업유산 지정에 회의적이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정 연구사는 “공무원이 농업유산을 왜 보전해야 하고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1차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기초와 광역지자체가 조례를 별도로 만들어 명확한 보전·관리·계승 활동 수행을 위한 이행기준을 마련하고 관련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업유산 둠벙이 위치한 경남 고성군은 농업유산의 체계적 보전을 목적으로 ‘농업유산 둠벙 보전·관리를 위한 지원 조례’를 지난 2021년 기초지자체 중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조례는 군수에게 체계적인 보전관리 계획을 수립·추진하도록 하고, 보전관련 단체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보전에 군민의 책임을 부여하고, 전담부서와 보전위원회 설치도 가능하도록 했다.

현대농법 적용과 농지 개발에 제한이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예산 지원도 중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7년까지 농업직불금 5조원 확보 국정과제 추진의 일환으로 경관보전직불제 확대에 국가중요농업유산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전국 경관보전직불금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89억5천만원으로, 현재 ㏊당 지급단가는 경관작물 170만원, 준경관작물 100만원, 준경관초지 45만원이다. 해바라기, 유채, 메밀 등 초화류와 밀과 보리 등 사료작물이 대상이다.

농식품부는 국가중요농업유산 등 전통적 농업 방식을 유지해 고유의 경관을 보전·관리하는 활동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을 2027년 23개 지역까지 늘리고 농촌공간계획법 시행에 맞춰 농업유산지구를 중심으로 보전 활동을 촉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직불금 확대 계획에 맞춰 경관보전직불금도 개편하게 될 것”이라면서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이 늘어나는 만큼, 관련 직불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 인터뷰-정명철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                            연구사

     “농업유산을 농촌관광 콘텐츠로 개발하고
     활력 불어넣는 ‘에코뮤지엄’으로 보전해야”

정명철 연구사는 문화재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 2016~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위해 21개 지역을 발굴했다. 그중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시스템, 서천 한산모시, 울릉도 화산섬 밭농업, 완주 생강 전통농업, 의성 전통 수리농업 등 5개 지역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중요농업유산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연구사는 보전과 개발의 조화를 통해 농촌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에코뮤지엄, 생태박물관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업유산은 어떻게 보전해야 하나.
농업유산 자원 조사는 2012년 시작됐고, 2015년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가중요농업유산 조항이 포함되면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농촌진흥청은 이후 후보지 발굴에 나섰고, 중국과 일본과 공조체계를 꾸려왔다. 한·중·일 삼국이 세계중요농업유산의 절반에 육박하면서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농촌진흥청-일본UN대학 국제 심포지엄에서 주민참여형 모니터링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기적 모니터링도 필요하지만, 실제 농업을 하는 주민들이 일상적인 모니터링도 중요하다. 개발압력에 따른 농지 파괴 등의 위협으로부터 대응할 수 있고, 모니터링 과정에서 농업유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자부심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못 1500여개가 존재하는 의성에서 주민 참여 모니터링을 실시했는데, 못총회를 열어 못도감을 선출하고, 논에 못물을 처음 공급할 때 못제를 재현하기도 했다. 못둑 제초작업과 못논 복원 공동활동에도 나서는 등 주민협의체 활성화에 기여한 순기능을 확인했다.

-전통농업과 농촌관광에서 농업유산 가치는.
보는 것에 그치질 않고 전통적 농업활동이 유지되고 후세대에게 전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농촌관광 콘텐츠로서 가치도 크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역과 가까운 곳을 연계하거나 전통농업, 수리시설, 계절과 꽃 등의 주제와 접목한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농촌다움 보전을 위해 중요한 자원으로, 농업유산에 포함된 역사·문화·생태·경관 등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다.

지속성 확보 차원에서 제도적 연구와 현장 중심의 기술지원을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 9일 완주 생강전통농업 시스템 보전위원회와 유기농업 기술 등을 지원하는 협업농장 지정이 좋은 예다. 완주는 외래종과 개량종 생강이 더 크고 수확량도 많지만 토종생강 재배면적을 10% 이상 꾸준히 유지하면서 토종생강의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젊은 농업인을 중심으로 토종생강 공동경작단이 조직돼 연작피해 방지를 위해 보리 간작(間作)과 참나무 잎으로 생강풀덮기 등의 전통농법을 이어가고 있다.

-농업유산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평가받는다.
일반 농촌관광과 달리 해당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농업유산이라는 차별적 가치를 가진 핵심 자원을 활용해 에코뮤지엄(eco-museum) 형태로 활성화돼야 한다. 에코뮤지엄, 즉 생태박물관으로서 지역 또는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차별화할 수 있으려면 인공적 시설물은 만들지 않는 게 낫고, 필요한 경우라도 최소화해야 한다.

실제 농사를 짓거나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이 해설사 역할을 하면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살아있는 이야깃거리를 들려줄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농업유산을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정적인 기존 박물관이 아닌 자연 그대로 수천년 동안 조상의 지혜가 담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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