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특집 : K-컬처 선봉장 ‘한복’
요즘 한복은 명절이나 경조사에만 입는 경건한 의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경복궁, 화성행궁 등 고궁에서 한복을 입으며 전통문화 사랑을 실천하고 있어서다. 지난 주말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특별한 기억을 쌓아나가고 있는 외국인과 시민들을 만나봤다.
외국인 “BTS 춤췄던 경복궁, 한국여행 1번지”
한국인 “평범한 한복 글쎄…” 개성 찾아 입는다
한류타고 한복입기 유행
광화문에서부터 한복을 입은 무리가 발길을 재촉하더니 입장권 QR코드를 태그 해야 들어갈 수 있는 흥례문을 자유자재로 통과했다. 경복궁관리소에서 한복을 입은 관람객에게는 경복궁 무료입장을 허용하고 있어서다. 일반 관람객들은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고, 한 번 퇴장하면 재입장이 불가하다.
경복궁은 세계인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지난 2020년 6월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시기에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온라인으로 세계에 알려보자’는 문화재청의 제안에 방탄소년단이 화답하면서 미국 NBC 방송 인기프로그램 ‘지미 팰런쇼’에 BTS의 경복궁 공연이 공개되면서 화려한 자태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복 입고 ‘K-문화’ 만끽하는 외국인들
경복궁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이 저마다의 언어로 대화해 사방에서 외국어가 들렸다. 서울에서 한복 입은 한국사람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흥례문 입구에서 한복을 입은 일본인 4인 가족은 고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올해 스무살 된 기념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카에데(20)씨와 언니들, 어머니는 여행 첫날, 한달음에 경복궁부터 찾았다고 한다. 카에데씨는 대여해 입은 한복이 “매우 귀엽다”는 반응이다.
근정전에서 만난 몽골인 노부부 몰롬 할아버지와 어트겅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 곁을 지키며 유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에게 통역을 요청해 어트겅 할머니의 소회를 전해 들었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한국 전통 옷을 입어보고 싶었어요. 한복 착용감이 불편하지 않고 간단하다고 느꼈어요.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법궁인 데다 임금과 군주가 살았던 곳으로 꼭 와보고 싶었어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주는 해설프로그램과 전통 옷을 체험할 수 있어 마음에 들어요.”
유학생은 노부부가 올해 77세라고 했다. 고령이기에 한복만 입기 춥지 않냐는 기자의 걱정에 “몽골은 원래 춥고, 여기는 몽골보다 춥지 않다”고 안심시켰다.
국민들, 유행 따라 개성 뽐내
경복궁에서 시민들은 개성을 살린 한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청춘남녀가 한복을 입고 데이트하는 경우가 많았고, 선비와 아씨복장, 곤룡포를 입은 왕과 당의를 입은 중전 등이었다.
경남 진주에서 왔다는 6명의 동갑내기 청년들은 강원도에서 서울로 여행 중 경복궁을 방문했다고 한다.
최홍준(30)씨는 “진주에 살다보니까 서울 오는 것도 인생에 몇 번 없으니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한복을 입게 됐다”며 “조선시대 신분에 따라 왕, 중전, 문관, 포졸, 검객, 내시 등 각자 역할을 선택해서 한복을 입었다”고 소개했다.
최씨는 “한복이 주머니가 없어서 불편하다”며 “짐도 많고 추운데 휴대폰을 다들 손에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추위에 최홍준씨는 한복 안에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최씨의 친구들도 한복 안에 발열내의와 여벌의 옷을 껴입어 추위를 견뎠다. 그는 “고궁을 둘러보느라 계속 움직였더니 가만히 있을 때보다는 따듯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궁에서 내려다본 한복 입은 사람들은 비슷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저고리 위에 망토를 둘렀고, 저고리와 치마 색감은 파스텔톤이 유행인 것으로 짐작됐다.
회사 동료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한복을 입었다는 하정연(35)·이경미(34)씨. 한 한복매장에서 2만~3만 원대에 머리손질-한복-가방 패키지상품으로 2시간 대여했다며 한복체험을 적극 추천했다.
“저희가 보기보다 나이가 있어서 인터뷰하기 부끄러워요. 광화문 앞에 한복대여점이 성행하는 거 같아요. 우리처럼 망토 두르고 파스텔톤의 한복을 대여한 사람들이 많은 걸 경복궁에 와서 알았어요. 망토는 5000원 추가했는데, 한복 입고 노니까 더 재밌어요. 가격이 저렴하니까 다음에는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꼭 와보세요.”
드레스 입고 공주님 된 기분
시민 이다원(32)씨는 전통한복 마니아다. 비단으로 지은 모란무늬자수 저고리와 진초록 치마를 입고, 솜을 누빈 마고자와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1822~1844)의 장옷을 고증해 맞춘 장옷, 포인트가 되는 향대까지 두루 갖춰 입었다.
이씨는 위로는 발열내의, 속치마 안에는 융털바지를 입고 마고자를 입었더니 그렇게 춥지 않다고 했다.
“예전에 인테리어 업자가 집에 온 적이 있는데, 방에 가득한 한복을 보더니 옷 판매업을 하냐며 놀랐어요(웃음).”
이다원씨는 한복이 드레스를 입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통한복 특징과 입는 법을 알아보고 코디해 입으면서 겨울에도 한복을 입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누비 마고자와 장옷을 입으니 안 추워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궁금했는데 한복 입고도 날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 깨달았죠.”
다만 비단소재 특성상 한복은 입으면 입을수록 닳아 처음 한복을 맞췄을 때 같은 컨디션은 아니게 된다고 토로했다. 비온 뒤 땅이 질척거려 이씨의 치맛자락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비단 소재 특성상 드라이크리닝 밖에 세탁하는 방법이 없어 한복의 유지·관리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거주지는 경기 수원이라서 평소 화성행궁에 한복입고 돌아다니길 즐긴다는 이다원씨. 그에게 한복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의복이었다.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외국 관광객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고, 저마다의 인연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전통을 즐기는 경복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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