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공동체 활성화
지방소멸이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지역주도 균형발전은 윤석열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핵심이다. 2011년 시작돼 2022년 기준 1770개 마을기업은 지역자원을 활용한 수익사업으로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기업을 연결고리로 지역의 경제생태계를 발전시키고 공동체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관련예산이 대거 삭감되고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마을기업의 위기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여성 등 일자리 창출·공동체 활성화에 기여
2030년 3500개 만들겠다면서 올해 예산 60% 삭감
‘마을기업 육성법’ 제정 21대 국회 또 좌절될 듯
단계적 지원 통해 마을기업 성장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육성은 예비마을기업과 1회차(신규)·2회차(재지정)·3회차(고도화) 마을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최대 3차례 1억원의 사업지원비(1회차 5천만원, 2회차 3천만원, 3회차 2천만원, 예비마을기업은 최대 1천만원), 코로나19 이후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 판로 다변화와 온라인 입점도 지원한다.
마을기업 회원과 근로자, 설립 희망자 대상 교육과 경영상황을 파악해 맞춤형 경영 컨설팅도 이뤄진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온‧오프라인 홍보 콘텐츠 제작과 권역별 네트워크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우수마을기업과 모두애(愛)마을기업이 신설됐다. 우수마을기업은 공동체성·공공성·지역성·기업성의 4대 운영원칙을 갖추면서 2회차 이상 사업비를 지원받아 정산을 완료한 기업이다. 모두애마을기업은 경쟁력이 뛰어난 선도기업으로, 지정된 지 만 2년 이상이 지나고,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3억원 이상이며, 지역발전에 공헌해 공동체성이 돋보이는 기업이 대상이다. 성장가능성이 높은 마을기업에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것.
단계별 지원을 통해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고, 마을문제에 대응한 주민의 자발적 노력을 통해 소극적 마을이 적극적 마을로 바뀌는 공익적 기능도 거뒀다.
양은진 부산플랜 이사장은 “수도권이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건 지방에서 태어나도 성인이 되면 일자리를 찾아 빠져나가기 때문”이라며 “사회적경제 중에서도 마을기업은 지역성이 특히 강한데, 지역을 좋은 일자리가 많고 창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산 깎이고 법률 제정 더뎌
마을기업의 순기능이 인정받고 있음에도 정부는 올해 예산을 크게 깎았다. 보조금 직접 지급에서 자립성 강화를 위한 판로 확대와 홍보와 컨설팅 위주로 간접 지원하겠다고 이유다. 하지만 2030년까지 3500개 마을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마을기업 활성화를 위한 발전방안’(2021)을 내놓은 지 3년도 안 된 상황에서 마을기업에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장과의 소통도 없이 진행된 데는, 사회적경제를 집중 육성하기로 한 전 정부 지우기가 마을기업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기업 육성을 위한 법안 제정도 지지부진하다. 2020년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마을기업육성 지원법’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의 ‘마을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각각 발의됐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기업의 육성과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종합계획 수립과 지원시책 추진, 예산의 범위에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두 법안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행안부도 법안이 공익적 가치를 제고하고 경제적 자립을 뒷받침할 수 있다며 법안에 긍정적 의견을 밝혔지만 국회에서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2021년 행안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대선을 앞두고 공청회 개최 후 논의하자는 것을 끝으로 후속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19·20대에서도 임기만료로 폐기됐지만 관계자들은 21대에서 여·야 이견이 없어 기대가 컸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적근거가 마련되면 예산 지원, 공공구매, 조세감면 등 마을기업이 요구하는 정책이 도입되는 길이 넓어질 수 있지만 국회에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제정법이라 공청회가 필요해 국회에서 입법과정이 진행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인터뷰-김대형 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장
마을기업에 여성은 핵심…지역주도 경제 마중물
공공성·기업성 지닌 장수 마을기업 나와야
편의점 운영 등 수익 다각화로 활로 모색
김대형 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장은 초대 회장에 이어 4·5대, 현재 6대 회장을 맡고 있다. 고향인 부산 기장에서 마을기업 희망기장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김 회장은 매출과 고용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마을기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 예산삭감의 된서리를 맞은 마을기업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수익사업을 다각화하고 마을기업 육성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희망기장협동조합은 어떤 마을기업인가.
수산물 지리적표시에 등록될 정도로 역사성과 상품성을 인정받는 기장의 미역과 다시마 생산·가공을 주로 하는 마을기업으로, 모두애마을기업으로도 지정받았다. 인근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지원으로 마을방역과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공급 등 수익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100여명의 조합원 중 해녀도 있는데, 농촌지역의 마을기업일수록 핵심인력은 단연 여성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으로 마을에 활기가 돌고 사라져가는 공동체 정신도 되살아나는 등 긍정적 효과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10년 넘은 정책지원을 통해 지역주도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마을기업이 있어 지방과 농촌이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올해 마을기업 예산이 크게 줄었다.
국회에서 1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역구 예산이 아닌 탓에 예산소소위에서 증액되지 못했다. 깜깜이 예산편성의 피해를 마을기업이 봤다.
무엇보다 신규 마을기업 발굴예산과 정책이 없어졌다는 게 제일 안타깝다. 꾸준히 늘어나던 마을기업들이 내년부터는 줄어들 게 분명하다. 보조금에만 기대는 일부 부실한 마을기업은 분명 문제지만 그렇다고 전체의 문제인 냥 예산을 깎는 건 생존을 위협하는 처사다. 지방소멸을 막고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을기업 육성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국회가 22대 총선모드에 들어가면서 법 제정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2020년 여·야에서 법안을 발의할 정도로 이견이 없었음에도 공청회조차 열지 못했다. 아마 폐기될 것이다. 마을기업 예산이 급격하게 쪼그라든 것도 법적근거가 없는 게 크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나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돼 있는 것과 비교해 봐도 아쉽다. 기업과 공동체 성격을 절반씩 가진 마을기업이 사라지면 지역곳곳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10년 넘게 마을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 초대 회장으로서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을기업이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최대 3년의 지원금에 목매지 않고 기업가 마인드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마을기업이 100억원대 정도인데, 천억 이상 선도 마을기업이 여럿 나와야 한다.
수익사업이 그래서 중요한데 희망기장협동조합은 현재 편의점 사업을 하고 있다. GS리테일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전국 4곳에 마을기업이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조합원이 돌아가면서 편의점에서 일해 운영비 부담도 덜고, 수익은 조합원 몫으로 돌아간다. 마을기업에서 생산한 제품 전용 매대도 갖춰 자연스레 오프라인 판로도 갖추게 됐다.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더 늘려갈 생각이다. 정부가 직접 지원 대신 판로 등 간접 지원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편의점처럼 다양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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