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공동체 활성화(경남 김해 소담공방마을기업)
가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경남 김해, 흙에 혼을 담는 사람들이 있다. 분청도자기공방이 100여곳 밀집해 운영되고 있는 진례면. 이곳에 자리 잡은 소담공방마을기업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하다.
천효선(진례면생활개선회원) 소담공방마을기업 대표가 섬세한 손길로 흙점토를 주무른다. 내리꽂힌 시선은 날카롭게 빛난다. 조합원들은 도자기 납품기한에 맞추느라 밤을 꼬박 샜다고 한다.
“고급 일식집에 납품할 도자기를 빚고 있어요. 1개당 10만원씩, 총 30개를 주문 받았죠. 유약을 발라 색을 입히면 초밥과 회가 올라가는 고급접시가 됩니다.”
2천년 가야시대 분청도자기 맥 이어
경력단절 도공과 협력…일자리 창출
청년층 겨냥한 가벼운 도자기 선봬
“정부가 마을기업 자생력 키워야”
가야도공의 혼을 잇다
경남 김해는 우리나라 최대의 분청사기 도예촌이다. 가야의 맥을 이어 조선시대 생활자기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은 김해분청도자기는 한국도자기 사상 가장 한국적인 미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자기공방 100여곳이 밀집해 있는 진례면은 도공이 많고 텃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한다.
천효선 대표는 새롭고 독특한 표현법으로 빚은 도자기를 수집하며 평소 도자기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2015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55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자기전문기술교육 3년 과정을 수료하며 실력을 다졌고, 2018년 주민 10명을 모집해 2019년 행정안전부로부터 마을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여성조합원만 7명인데 60대면 젊고 74세 조합원도 있어요. 고령이지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고, 흙을 만져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어 자부심을 갖고 일합니다.”
‘노년의 능동적인 삶’ 이끌어
소담공방마을기업의 경영철학은 ‘거품 없는 가격으로 진실하게 만들고 좋은 제품을 판매한다’. 흙을 구입해 토린기에서 반죽해 점토를 만들고 이를 알맞은 치수로 재단, 물레에서 성형하는 창의로운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새로운 도자기 디자인을 발굴하고 시제품을 선보인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자구적 노력은 행정안전부 2023년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지원금 7천만원을 받아 도자기 가마를 최신식으로 바꿨습니다. 작업실의 노후시설을 점검하고 필요한 작업도구를 구입해 일하는 환경을 개선했어요.”
주요 고객층은 차를 즐겨 마시는 다도 마니아와 다례도구를 구매하는 사찰 관계자다. 종종 공공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기념일에 맞춘 답례품을 의뢰하는 등 단체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공기업이나 초등학교 같은 기관에서 마을기업 제품을 구매해줘서 감사한 마음이죠. 마을기업은 아직까지 지역민들의 입소문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천 대표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박람회에도 참여하는 등 대외활동으로 마을기업 제품을 홍보하고,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 환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진례면 경로당 45곳에 직접 만든 머그컵 500개를 나누며 일회용컵 안 쓰기 운동을 선도했고, 매년 어려운 이웃에 밥그릇 등 식기세트를 기증하며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불어넣고 있다.
경력단절 도공의 새 일터
작업실에서 일손을 보탠 근남숙 소담공방마을기업 이사는 30여년 경력의 생활자기 도공이다. 판로에 어려움을 겪어 휴식기였다고 한다. 최영옥씨도 손기술이 좋고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도 있지만 판로가 막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력단절 도공들과 협업하고 어려운 이웃과 일감을 나눌 수 있어 마을기업을 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많은 보탬은 안 되더라도 땀 흘려 얻은 수익이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활력이 되길 바랍니다.”
소담공방에서는 인건비를 제외하고 매월 고정적으로 200만원의 운영비를 지출한다. 마을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천 대표와 조합원들은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현장체험학습 운영, 김해시농업기술센터 출강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서며 부수입을 올린다고.
천 대표는 “정부에서 지정한 마을기업이 전국에 많이 운영되고 있다”며 “지원금도 필요하지만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지역 안팎으로 홍보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기법으로 개성있는 제품 선봬
소담공방마을기업은 생산한 도자기를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제품사진을 올리고 전국으로 택배를 발송하는 한편, 진례면 번화가에 자리한 판매장에도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을 속속 선보인다.
“청년층을 겨냥해 가벼운 찻잔세트도 만들었어요. 개나리색이 깜찍하지 않나요? 막걸리를 담아도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가마에서 소나무로 구워 20만원대를 호가하는 다례도구부터 집안 인테리어에 포인트가 돼 줄 꽃병, 반려식물에 맞춘 다육화분 등도 눈에 띄었다. 개성이 뚜렷한 도자기작품들은 외형과 문양이 서로 달라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공들이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도자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유약을 바르는 평범한 방식에서 벗어나 옻칠을 한 도자기는 소담도자기만의 자랑이죠. 광이 적은 옻칠제품은 오래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은은한 매력이 있어요.”
천 대표는 마을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정부의 문화·예술분야 예산이 어떻게 운영하는지 관심을 집중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스마트공방지원사업을에 선정돼 제품 개발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의 김해분청도자기는 지역의 자랑이지만 뛰어난 실력자에 비해 수요가 많지 않아서 어려운 현실이에요. 마을기업을 통해 한마음 한뜻으로 김해분청도자기 명맥을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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