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인열전 - ③ ‘천리장’ 윤왕순 대한민국식품명인

윤왕순 천리장 식품명인이 살고 있는 전북 완주군 경천면은 높은 산이 가로막혀 있지 않아 종일 해가 들어 장을 숙성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많은 시간·정성 들인 별미장 ‘천리장’

몸 불편해도 명맥유지에 힘찬 발걸음

“‘천리(千里)를 가도 상하지 않는다’ 해서 예전부터 ‘천리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임금님 수라상에서나 맛볼 수 있던 귀한 장이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죠.”

천리장은 원재료도 중요하지만 제조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기에 일부 사대부가 외에는 맛볼 수 없었던 귀한 별미장이다. 전북 완주군 윤왕순(73) 식품명인은 모친 이규례씨로부터 파평윤씨가의 천리장 제조법을 전수받아 2013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50호에 지정됐다. 

전통장류의 계승·발전을 위해 20년 넘게 노력해 온 그의 너른 집 마당에 크고 작은 오지 항아리들에서 명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명인의 고단했던 세월의 흔적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좋은 재료가 장의 맛 좌우
“좋은 콩으로 빚은 메주를 잘 숙성시켜 만드는 감청장(맛이 달면서도 맑은 간장)에 우둔살을 삶아 썰어 말린 후 빻은 가루를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졸여 만듭니다. 양이 많으면 8시간 이상 졸이기도 하죠.”

쇠고기 장조림은 기름기 없는 쇠고기를 크게 토막 내어 졸여 만드는 반면, 천리장은 쇠고기를 썰어 말려서 가루를 내어 장에 조리므로 들어가는 재료는 거의 같으나 조리과정에 손이 많이 간다. 윤 명인의 천리장과 함께 어육장도 유명하다. “어육장은 활용도가 많아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육장은 소고기, 도미, 꿩고기 등 육해공 진미를 메주와 함께 1년 이상 숙성시키는 전통 발효 장으로 조선 시대 궁궐이나 양반가에서만 먹은 명품 장이다.

“좋은 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가 필수예요. 해콩과 3~5년 간수를 뺀 질 좋은 국산 소금이 주재료로 사용됩니다. 간수가 잘 빠진 소금은 움켜줬을 때 손에 달라붙지 않아요.”

윤왕순 명인은 “좋은 재료에 진심 어린 정성을 들여야 깊은 장맛을 낼 수 있다”고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윤왕순 명인은 “좋은 재료에 진심 어린 정성을 들여야 깊은 장맛을 낼 수 있다”고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거동 불편해도 희망의 끈 놓지 않아
전북 완주군 경천면은 높은 산이 가로막혀 있지 않아 종일 해가 들고, 물이 깨끗해 장을 담그는 데 최적지다. 맑은 빛깔과 깊은 향, 그리고 단맛까지 어우러진 구수한 맛의 간장이 이곳에서 탄생한다.

“보시다시피 다리가 불편해요. 의사 파업으로 수술 시기를 놓쳐 하지마비가 온 거죠. 아픈 허리 수술받은 게 오히려 더 악화됐어요. 그래도 몇 달 전부터 출장 물리치료를 받으며 많이 회복됐어요.”

윤 명인은 3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코로나19 시기에 의사 파업까지 더해져 수술 시기를 놓치면서 보조기구 없이 걷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수술 후 명인으로서 제 역할을 못 했어요.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많이 우울했죠. 그런데 몸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다시 일어설 희망이 보이니 요즘 들어 조금씩 웃게 됩니다.”

전수자로 나선 외동딸 김지나씨는 천리장 제조법을 배우는 데 열심이다. 홍보·마케팅에도 직접 관여해 윤 명인을 돕고 있지만 ‘어육장은 우리 백화점에서만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백화점관계자 요구에 따라 현대백화점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인지도 있는 ‘명인’의 제품도 판로 확장은 쉽지 않단다.

‘명인’ 유지에 남편 도움…“그저 감사”
“지역에서도 명인이라고 우대해 줘요. 그만큼 영향력이 생긴 거죠. 최근에 열린 전주발효식품엑스포에서 특별 전시도 했어요. 그 이후 완주군수님과의 대담에서 6차 산업화 지원을 부탁드렸죠. 그랬더니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하셨어요.”

윤 명인은 6차산업의 일환으로 천리장·어육장을 활용한 농가맛집을 계획하고 있다. 일반음식점과 차별화해 전통음식을 주메뉴로 지역 주부들 대상으로 체험 위주의 기술 전수를 하고 싶단다.

“할머니는 왜 맨날 된장냄새가 나?”
“된장 만드는 할머니니까 그렇지.”

4살 손주와의 대화를 회상하는 윤 명인. 그는 성인이 되고서도 어린 시절에 먹던 된장찌개 맛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주가 너무 반갑다고 했다.

“오래 기억될 깊은 맛을 위해서는 좋은 재료와 정성이 중요합니다. 지금 고마운 사람은 바로 남편이죠. 전복도, 숭어도 산지에 가서 직접 공수해다가 장을 만들다 보니 남편 도움 없이는 ‘명인’ 유지도 어려웠을 겁니다.”

남편 김석진(76)씨는 윤 명인의 손과 발이 돼주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나이 들수록 명인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며 “명인을 아내로 둔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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