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서 명인이다 -강원 원주 김명자 대한민국 식품명인(엿류 제조·가공분야)
전통 제조방식 고수…아들이 가업 이어
명인 사명감으로 국내·외 ‘우리 엿’ 알려
‘달그락~ 달그락~’
새벽 2시가 되면 부엌에선 엿을 고기 위한 시어머니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전남 벌교에서 나고 자란 김명자(65)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70호, 생활개선원주시연합회 회원)은 42년 전 강원 원주시 치악산 입구 황골마을로 시집오면서 황골엿과 인연을 맺었다.
치악산 황골엿은 치악산 중턱에 자리 잡은 황골마을에서 100년이 지난 오랜 세월 동안 토속 농산물로만 만들어 온 향토식품이다. ‘엿’은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는데 비싼 꿀을 대신해 음식과 과자를 만드는 데 썼다. 강원도의 황골엿, 충청도의 무엿, 전라도의 고구마엿, 황해도에서 조청에 찹쌀 미숫가루를 넣어 만든 태식이 유명하다.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엿에 꿩이나 닭고기를 넣은 꿩엿과 닭엿을 보신용으로 먹었다. 꿩이 없으면 닭고기로 엿을 만들었는데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자체, 지원과 교육으로 명인 발굴 노력
황골조청과 황골엿으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 명인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제조 방식을 고집하며 100%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강원도는 땅이 척박해 쌀농사보다는 옥수수 재배가 수월했기에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와 우수한 강원도 쌀을 8:2 비율로 섞어 엿을 만들었다. 엿을 만드는 조청은 엿기름이 생명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보리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공수해 직접 싹을 틔운 후 건조한 맥아(엿기름)를 사용했다.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전통 수제 황골엿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엿을 팔다가 1999년에 본격 사업에 뛰어들었다.“밤새 고운 엿을 팔기 위해 전국 안 다닌 곳이 없어요. 초기에 용달차 한 대를 빌려 서울 농협으로 팔러 갔지요. 서울에서 많이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필 그날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단속이 나왔는데 불량식품 취급을 하는 거예요. 흰 상자에 엿만 부어 한 트럭을 싣고 갔으니 엿 이름도, 회사명도 없었다고요. 그러면서 2천만원 벌금형과 2개월 영업정지를 운운하는데, 정말 무섭고 억울했죠. 결국 한 개도 못 팔고 왔어요.”
그때 알았다. 주먹구구식 판매는 옛날 방식이고 무지하면 용감하다는 것을. 주변 지인을 통해 원주시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하게 됐고 1996년 생활개선회에 가입해 관련 교육을 빠짐없이 들었다. 3년 후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제조공장에 외벽을 설치하고 유사제품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장바우’ 캐릭터를 상표 등록했다.
김 명인은 ‘장바우 치악산 황골엿’으로 사업자를 내걸고 전국을 돌며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가족 전수자 아니면 명맥 유지 ‘불투명’
그는 “엿을 눈에 보여야 먹지 누가 사 먹겠냐”는 지인 말에 방방곡곡 직접 엿을 들고 뛰어다니며 알렸다. 또 치악산 황골엿이 그간 방송, 신문 등을 통해 60여 차례 소개되면서 비법도 숨김없이 공개했다. 따라 할 수 있어도 맛은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황골엿은 일반 엿과는 다르게 쌀로 만드는 엿이 아니고, 쌀, 옥수수, 엿기름을 같이 갈아서 죽을 쑤어 만든다.
대형 가마솥에 수시간 끓여 애기죽을 만든 뒤, 죽을 짜 나온 엿기름을 정성껏 끓여야 조청이 되고, 엿이 된다. 한 번 작업에만 이틀이 걸린다. 엿물이 가마솥에서 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아들이 전수자로 나서지 않았으면 명인에 도전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40년 넘게 엿만 고았으니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물려주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학교를 서울로 보내고 직장도 거기서 다니게끔 했는데...”
엿 고는 일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고된 일이다. 외아들인 김기석(42)씨는 주말에 원주로 내려와 바쁜 부모님 일손을 돕다가 7년 전 회사를 접고 귀향해 든든한 후계자로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고령 명인 승계받을 전수자 발굴 절실
김 명인은 100년 이상 비법을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엿류 제조·가공 분야 ‘대한민국식품명인 제70호’에 선정됐다. 현재 활동하는 식품명인 80명 중 여성 명인은 45명이다.
“식품명인에 신청할 때 서류 작업이 까다롭고 어려웠어요. 현장점검은 물론 족보와 전과 여부까지 직접 챙겨야 할 서류가 많더라고요. 평생 엿만 과서 아는 게 있어야지요. 그래서 아들의 도움을 받아 명인신청을 했죠.”
김 명인은 “명인이 된 이후 황골엿을 알리기 위해 사명감이 더 커졌다”며 체험이 가능한 융복합산업 인증과 조청을 활용한 다양한 간식을 선보여 ‘대한민국 한식대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이달 중순 미국 LA에서 열리는 한인 축제에 참여해 한국의 전통 먹거리 황골엿을 알릴 예정이다.
“황골엿 하나로 15개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게다가 동의보감에 쓰여 있을 정도로 몸에도 좋죠. 요즘 아이들은 덜 달다고 안 좋아하지만요. 그래서 경험을 통해 아이들도 엿과 친해지고 청년들이 엿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을에 체험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혼자 알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보다 더 엿을 잘 고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체험관을 만들려고 지자체와 논의하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네요.”
황골엿이 유명세를 탈 때마다 마을 엿집도 호황을 누리게 됐고, 황골이 ‘엿마을’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 늦기 전에 엿술과 황골식혜도 개발해 해외에서도 건강한 전통 먹거리로 인정받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김 명인은 “대개 명인의 나이가 60대를 훌쩍 넘은 고령”이라며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을 통한 전수자 발굴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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