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한민족 혼 담긴 무형문화의 중심 ‘명인’
대한민국식품명인 중 전수자는 불과 4명…모두 자녀
전수자 찾기 어렵고 명인 타이틀 난립해 위상 추락
■ 기획특집 – 명인 육성 활성화와 지원방안
민족의 혼 잇는 명인…여러 어려움 직면
5천년이라는 역사에서 선조들의 창의력과 뛰어난 솜씨가 전해지며 우리 한민족은 독창적인 문화를 가꿔왔다. 특히 무형문화는 사람 대 사람으로 세대 간 전승되며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핵심적 역할을 해오는 명인들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옛것으로 치부돼 자식들이 아니면 20·30대에서 전수자를 구하기 어렵고, 전국의 여러 전승관도 농악과 민요 등에만 치우쳐 다른 무형문화는 교육할 마땅한 장소조차 구하기 힘든 처지다. 전수자를 구하지 못해 명맥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정부지원 예산도 난립하는 명인관련 협회로 쪼개지며 한길만을 걷는 명인들의 지원은 쪼그라들고 있다.
심지어 명인 지정심사 명목으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호가하면서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을 돈 받고 명인 이름표를 붙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떨칠 수 없는 것이다.
한 민간 명인협회 관계자는 “인증을 받으려면 조사단을 꾸려 현장심사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돈은 거기서 거기”라며 “비용은 실비수준이라 당사자에게 크게 부담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자격미달 명인이 난립하면 피해는 묵묵히 한평생 한길만을 걸어온 명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청길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장 역시 이를 지적했다.
유 회장은 “명인이나 명장 이름만 내건 단체가 너무 많아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강화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확실한 지원도 이뤄져야 진정한 명인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식대에서 전수자를 구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명맥이 끊기는 것이라 전수장려금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로 어려워지는 명인들의 전수길
농업계는 전통식품에 특화된 제도인 대한민국 식품명인(이하 식품명인) 제도를 199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전통식품산업 활성화와 계승·발전에 이바지하는 제조·가공·조리 분야의 우수한 기능을 보유한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80명이 지정돼 있다.
가장 최근 명인으로 지정된 송인생 명인(제44-가호)은 부친 故 송화수 명인(제44호)으로부터 홍삼의 약리성분 손실 없는 증삼(蒸蔘) 방법을 전수 받았다. 원형을 유지한 채 속을 익히는 기술과 건조 시 부풀지 않는 기술은 대대로 전해진 홍삼제조법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충남 공주 계룡백일주 전수자인 이성우 명인(제4-가호, 제4호 지복남 명인 아들), 전북 순창 순창고추장 전수자인 조종현 명인(제36-가호, 제36호 문옥례 명인 아들), 경북 안동 안동소주 전수자인 김연박 명인(제20-가호, 제20호 조옥화 명인 아들) 등 4명만이 식품명인에게서 전수를 받아 선조의 유산을 이어오고 있다.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96인 중 썩은 배추로 김치를 만들었다는 논란으로 자진 반납한 김순자씨를 제외하고는 사망 등의 이유로 지정 또는 해제된 명인 15인에 달한다. 전수자 자격으로 식품명인에 지정된 4인을 제외하고는 선조로부터 내려온 전통 제조방법 등의 무형유산이 전수자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식품명인은 ▲해당 식품의 제조·가공·조리 분야에 계속하여 20년 이상 종사한 자 ▲전통 식품의 제조·가공·조리 방법을 원형 그대로 보전 및 실현할 수 있는 자 ▲대한민국식품명인으로부터 전수교육 5년 이상 받고 10년 이상 종사한 자 등이다. 평가기준은 전통성(25), 정통성(20), 경력·활동사항(20), 계승·발전 필요성과 보호가치(25), 산업성(5), 윤리성(5) 등이며, 법령 위반 시 감점(-20)된다. 이처럼 자격요건이 엄격하지만 지원은 충분치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전통 제조방법 등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전수자들에게 장려금을 늘려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지난해 고시를 개정해 전수장려금 실적기준을 조금 완화했다.
■인터뷰 - 유청길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장
“전통 잇는 자긍심에만 의존할 수 없어”
전수장려금 현실화하고 난립하는 민간협회 점검해야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이하 협회)는 식품산업진흥법 제14조에 따라 정부에서 지정한 식품명인 구성원으로 이뤄진 단체로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명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가치 실현에 힘쓰고 있다.
지난 4월 협회장에 오른 유청길 명인(제49호·산성막걸리)은 식품명인의 위상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전수장려금 현실화와 별도 판매플랫폼 마련에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큰 논란도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협회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불거진 문제의 명인은 불성실한 위생관리와 품질관리로 명인이라는 이름을 믿고 신뢰한 국민과 소비자들에게 큰 실망을 끼쳤다.
그 사태를 계기로 협회와 명인들은 전통식품의 가치존중과 실현이라는 사명감을 다시 일깨워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위생과 품질에 최선을 다해 다시 반복되지 않기로 결의했다. 또한 정기적인 점검을 더욱 강화해 신뢰받는 명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명인은 국위선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8월 세계잼버리대회에서 행사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협회 소속 명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유정임 명인(제38호·포기김치)과 이하연 명인(제58호·해물섞박지)이 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잼버리대원과 직접 김치 담그기 체험을 진행한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김치와 각국 특성에 맞는 수출김치도 선보였다.
이외에도 서울 종로의 식품명인체험관에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주도로 주기적으로 외부행사를 열어 국민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대상의 체험행사에서 전통의 맛을 선보이고 있다.
-전수자를 위한 지원은.
2019년부터 전수장려금 제도가 시작됐다. 교육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적보고서를 내면 횟수에 따라 연간 400만~600만원이 지급된다. 다른 분야 명인이나 명장과 비교해 빠듯하다. 어렵게 대한민국 식품명인에 오른 만큼 현실화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 전수활동 실적 인정기준이 조금 완화됐다. 월 2회 이상 전수교육을 해야 했었는데 품목마다 이를 충족하기 어려워 분기별로 6회로 하도록 고시를 개정해 교육을 상황에 맞게 진행할 수 있게 한 건 다행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명인이나 명장 명칭을 사용하는 민간단체가 늘어나 국가가 인정해주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제대로 알아주지도 않는 제도에 원재료를 모두 국내산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도 떨어진다. 지원은 부족한데 명인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냐는 회의적인 회원들도 많다. 언제까지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만 갖고 일할 순 없지 않겠나.
농협을 중심으로 식품명인들의 제품만을 판매하는 별도의 경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정부차원에서 난립하는 명인제도도 손봐주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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