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인열전② – ‘신선주’ 박준미 대한민국 식품명인

“직접 쌀농사, 밀농사지어 술을 빚으니까 외부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얘기합니다.”

충북 청주 미원면에서 신선주를 생산하는 박준미 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대한민국 식품명인(88호)이다. 2010년 명인에 선정된 뒤 전국의 다양한 전통주 가운데서도 ‘명인주’를 각인시킴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박준미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신선주를 빚기 위해 직접 지은 누룩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박준미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신선주를 빚기 위해 직접 지은 누룩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농사지은 원재료로 매달 500병 주조
비품 농산물 활용 상차림에 주민들 호응

전통주 내리사랑
신선주는 박준미 명인의 부친 故 박남희(충북도무형문화재 4호)씨가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고 25년의 세월을 쏟아 개발했다. 박준미 명인은 효심으로 지근거리에서 아버지의 손발을 자처했다. 무형문화재 전수자로 신선주 홍보에 나서며 아버지를 뒷받침했다.

“일본에서는 국가가 지정한 발효연구소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개인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10년 동안 실험주를 만들고 버리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죠. 그러면서 가세가 기울었어요.”

2남7녀 가운데 가업을 잇겠다는 자녀가 박준미 명인 말고 나오지 않았다. 어려워진 살림에 전통주 수익구조 등을 따져볼 때 선뜻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건축디자이너로서 회사를 다녔던 박 명인은 무형의 가치, 식문화를 계승하고자 결심을 굳혔다.

“조선 술 역사가 500년인데, 남아 있는 기록이 매우 적어요. 농사지어 누룩을 만들어도 최상의 맛을 찾는 데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농사지은 식재료 고집
10가지 한약재가 들어가는 신선주는 약주를 표방한다. 박 명인은 농사지은 쌀과 밀로 누룩을 띄운다. 또 지황을 수매, 구증구포해 생지황과 숙지황을 손수 만들고 국화, 인삼, 당귀도 밭에서 수확해 술 빚는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가열 유무에 따라 생주, 탁주, 증류주 등으로 월 400~500병 생산한다고.

“자연에서 누룩을 건조하면 산바람에 꽃가루가 누룩에 붙어 은은한 꽃향을 느낄 수 있어요. 자연발효를 거치면 잔향이 남죠. 술 빚는 과정 하나하나가 귀한 만큼 최고의 재료만 사용해요.”

‘세계 명주를 만들어 달라’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박 명인은 세계 무대로의 진출을 노렸다. 일본과 호주 등으로 해외연수를 떠나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등 전통주 대중화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술에서 나는 진한 약재향을 기피하는 청년층을 겨냥해 맛과 향이 은은한 삼양주 기법을 찾아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10가지 한약재가 들어가는 신선주
10가지 한약재가 들어가는 신선주

농촌사회에 신선주 가치 알려
“술을 돋보이려면 상차림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건축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을 음식에 활용했어요.”

박 명인은 충북도 농촌융복합산업인증경영체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청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도 강사로 활동하며 향토음식연구회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등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만찬을 구성하는 등 발로 뛰며 신선주를 홍보했다.

박 명인의 신선주는 백화점, 청주공항 면세점에 납품되고 있고, 인천공항 면세점 납품도 예정돼 있다. 연간 신선주 수익은 3억~4억원에 이른다고.

“항아리 뚜껑을 덮어만 놓기만 하면 전통음식이 잊혀요. 틈틈이 열어봐야 알릴 수 있습니다.”

박준미 명인(사진 가운데)은 우박피해 사과를 활용한 도시락을 구성하고 주변 관광자원인 옥화구곡 관광길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박준미 명인(사진 가운데)은 우박피해 사과를 활용한 도시락을 구성하고 주변 관광자원인 옥화구곡 관광길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비품 농산물에 명인 역량 발휘
박 명인은 명인주 품격에 맞는 곁들임 음식을 농촌에서 찾았다고 강조했다. 미원면장은 충북도 옥화구곡 특화단지사업을 진행하며 박 명인에게 도시락 구성을 의뢰했다고 한다.

도시락 반찬에 지역 청년농업인이 재배한 우박피해 사과 발효소스 레시피를 결합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지역문화재 활성화에 농업인, 명인이 머리를 맞댄 뜻 깊은 행사였다고 돌이켰다.

박 명인은 “내년에는 비품 사과를 활용해 사과와인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며 지역농업인들과 소통한 뒷이야기도 전했다.

박준미 명인은 신선주의 일부 자동화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원재료 엄선과 고두밥 짓는 과정은 사람이 하고, 병 세척을 비롯해 담고 뚜껑을 닫고, 라벨링 등 단순 작업은 기계에게 맡긴다는 것.

“전통의 뿌리를 간직하고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전통주를 떨어트려 놓으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신선주의 기반을 다져놨으니, 이제는 기둥을 세워야죠.”

박 명인은 전통주 수익을 걱정한 지난날을 되새기며,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신을 전했다.

“인생에서 신선주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핑계 같아요. 신선주의 명맥을 지키는 명인의 길은 스스로의 선택이고, 끝까지 책임지고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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