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있어 2023년이 빛났습니다 - 전북 남원 이진 지리산하늘재농장 대표
부친이 평생 일군 ‘하늘재사과농장’ 2018년 승계
‘내 인생 사과’ 소비자 호평이 ‘나’를 세우는 힘
여성이 안전한 농촌, 육아 걱정 없는 농사 소망
“사과는 주변에 흔한 과일이지만 참 어려운 작물이에요. 다른 과수에 비해 일도 많고 전문 기술도 필요합니다. 사과나무의 전정부터 생리를 잘 알아야 하고 품종에 따라 재배법이 달라 공부도 많이 해야 해요.”
귀농 5년차인 이진(33) 지리산하늘재농장 대표는 부친이 30년간 일궈 온 2만4794㎡(7500평) 규모의 사과농장을 대를 이어 지키는 어엿한 농업경영인이다. 이 대표는 지리산 뱀사골 해발 500m 청정지대에 위치한 농장에 대해 “일조량이 풍부해 사과농장으로서 최적지다”라고 자신했다.
대이은 사과농장 5품종으로 사계절 수확
부산 외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 대표는 농사와 거리가 멀었다. 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며 안정적인 공직 생활을 꿈꿨다. 방학 때마다 부모님의 사과농장에 와서 사과 선별이나 포장을 한 게 전부였고, 늘 고되게 보이는 부모님의 일상을 보며 농사는 짓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부친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공인한 ‘사과 농업마이스터’였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그 무렵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이 대표는 투병 중인 부친의 농장 일을 돕기 시작했다. 잠시만이라고 생각했던 농사가 이듬해 부친이 별세한 후로 본업이 되고 말았다.
그는 부친이 일평생에 걸쳐 일궈놓은 사과농장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귀농 전 뚜렷한 직업이 없었기에 농장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그때 나이 28살이 되던 해였다. 이보다 더 큰 시련이 있을까. 청천병력과도 같은 어머니의 위암 진단, 지금은 온전하게 회복 중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했다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던 그 시기를 견뎌내면서 이 대표는 더 단단한 내면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필두로 농장을 꾸려 나갔죠. 어릴 때부터 농사를 접했던 게 아니라서 막상 농장을 운영하려니 막막했어요. 그래도 잘 해내고 싶었고 1등 사과로 키워야 하는 사명감이 컸기에 공부도, 실습도 게을리하지 않았죠.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5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지리산하늘재사과농장 사과가 특별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각각 제철이 다른 5가지 품종을 재배한다. 7월 말에 수확하는 여름 사과 품종인 ‘썸머킹’부터 가을 사과인 ‘홍로’ 그리고 ‘아리수’ ‘시나노 골드’ ‘감홍’에 이르기까지. 이 대표는 각 계절에 맞는 최고의 사과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 어느 농부보다 바쁜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시나노 골드는 ‘황금사과’라고도 불려요. 새콤달콤한 과즙과 상쾌한 사과 향을 가득 머금고 있는 품종으로 과육이 단단하고 식감도 매우 좋습니다. 최소한의 농약만을 사용해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까지 받았어요.”
지난 10월 여성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수 여성농업인 수상자에 당당히 이름 석자를 올렸다. 그는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에서 추천해 준 덕분”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사과로 맺어진 인연들이 많아요. 4-H연합회,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청년농업인연합회 등 농업을 하게 되면서 소중한 인연들을 알게 됐죠. 막상 귀농해서 보니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단체활동도, 사과 재배에도 더 많은 노력을 했죠. 그 덕분에 좋은 상도 받았고요.”
‘팔방미인’이지만 자연재해엔 ‘속수무책’
어머니의 30년 농업 경험을, 이 대표는 다양한 농업교육을 기반으로 사과농장에 접목하고 있다. 그는 남원시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농기계 교육을 통해 2022년 소형굴삭기 전문 자격을 취득했다. 그래서 농장에 흙이 유실되면 소형굴착기를 임차해 자갈을 직접 붓기도 한다고.
“농기계를 운전하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동네 농기계 센터나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곤 하죠. 그래서 이젠 간단한 수리까지도 가능합니다. 하하하.”
그러나 자연재해 앞에선 속수무책. 특히나 올해 초 냉해가 휩쓸고 간 자리에 긴 장마로 탄저피해가 발생해 30~40% 정도 수확량이 줄었다. 작년과 비교하면 9톤가량의 사과를 땅속에 파묻은 셈이다.
“자연재해를 100% 피할 수 없겠지만 그전에라도 만반의 대비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지중지 키운 사과를 그냥 따서 버려야 할 때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쓰리더라고요.”
이 대표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하고 있다. 공판장, 청과시장 등 도매시장이나 SNS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판매하고 있다. 양질의 과일을 전달하기 위해 최고로 좋은 사과만을 엄선한다고. 이렇게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매출은 그간에 빚을 청산하는 데 큰 해갈이 되고 있다고.
“부안에서 프리마켓을 했을 때였어요. 사과니까 백설공주 콘셉트로 소비자를 만났거든요. 그때 만났던 소비자가 3년 뒤 사과를 사러 농장을 찾아온 거예요. 어리둥절했지만 큰 감동이었고 보람 있던 순간이었어요.”
SNS에 소비자가 남긴 ‘내 인생 사과’라는 후기에 아직도 힘이 절로 난다는 이 대표. 소비자 한 명 한 명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 문득 농장을 찾아오는 손님에 감동도 받지만 블랙컨슈머에 대한 불안도 떨칠 수가 없다고.
“신상정보가 거의 공개돼 있잖아요. 악성 소비자가 들이닥칠까 봐 가끔 두려울 때가 있어요.”
농촌에서 여성농업인으로서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이 대표는 “결혼과 육아를 생각해야 할 시기의 여성이라면 주거안전은 물론 육아·돌봄 시스템도 마련돼야 이농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경북대 원예학과 석사과정에 도전한다. 하절기에 사과를 활용한 카페 오픈 계획도 밝히며 “여성 사과농부가 아니라 사과농부로서 당당히 서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관련기사
-
낯선 한국에서 엄마는 강했다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오기 하나로 다시 일어섰어요.”2002년 중국에서 충북 청주로 온 결혼이민여성 김수연(51·오근장동생활개선회 감사) 세원농장 대표는 겉모습도 말투도 토종 한국인과 다를 바 없다.타향살이 1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한 김 대표는 주민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대부분 그가 혼자 살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남편의 49제도 지내기 전에 농기계를 중고로 팔라며 찾아온 업자들은 터무니없이 싼값을 제안해 허탈감에 빠졌다고.“남겨진 빚 8천만원과 초등생 자녀 둘을 키울 생각에 정신을 바
-
“한국살이 점수는 100점 만점이에요”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농촌여성신문은 전문농업인으로 거듭나고, 각 지역에서 온기를 불어넣으며 2023년을 빛낸 여성 4인을 조명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그들의 묵묵한 노력을 알리며 다가오는 2024년의 희망을 그려본다.스무살 라오스에서 이민 와 지금은 ‘안산의 빛과 소금’공항·병원 등 통역봉사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고수·공심채 키우는 전문농업인 꿈꿔한국살이 13년차 다둥이 엄마경기 안산의 친다봉씨(33)는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지
-
성장하는 농업 따뜻한 농촌이 있어 ‘해피 투게더’~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농촌여성신문은 전문농업인으로 거듭나고, 각 지역에서 온기를 불어넣으며 2023년을 빛낸 여성 4인을 조명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그들의 묵묵한 노력을 알리며 다가오는 2024년의 희망을 그려본다.남편과 농사고수로 유명…수익배분 철저히‘대통령 표창’은 김천의 자랑이자 생활개선회 업적김천의료원과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동참김천에서 손꼽히는 농사 고수부부임소록 회장(56)과 남편 강진규(60)씨는 오로지 본인들의 힘으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