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당신이 있어 2023년이 빛났습니다(김수연 세원농장 대표)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오기 하나로 다시 일어섰어요.”

2002년 중국에서 충북 청주로 온 결혼이민여성 김수연(51·오근장동생활개선회 감사) 세원농장 대표는 겉모습도 말투도 토종 한국인과 다를 바 없다.

타향살이 13년 만에 남편과 사별한 김 대표는 주민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대부분 그가 혼자 살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남편의 49제도 지내기 전에 농기계를 중고로 팔라며 찾아온 업자들은 터무니없이 싼값을 제안해 허탈감에 빠졌다고.

“남겨진 빚 8천만원과 초등생 자녀 둘을 키울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김수연 세원농장 대표는 남편과 사별하고 2두 남은 한우를 37두까지 늘려 고품질 한우를 출하하고 있다
김수연 세원농장 대표는 남편과 사별하고 2두 남은 한우를 37두까지 늘려 고품질 한우를 출하하고 있다

트랙터 몰며 아이 키운 ‘오뚝이’ 결혼이민여성
농사외길 20년…치유농업에 사회복지사 1급 도전
충북마이스터대학 축산학과 졸업하고 한우 품질↑

트랙터·이앙기·콤바인 운전 나서
논 8만2500㎡(2만5천평)에서 김수연 대표는 혼자 힘으로 트랙터와 이앙기를 몰고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한다.

“여자 혼자 사니까 못 보던 자동차만 주차돼 있어도 주민들이 누구 차냐고 묻곤 했어요. 농번기에 농기계 조작을 몰라 헤매고 있어도 남자들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봐 선뜻 도와주지 못했죠.”

그는 남들이 감자 심으면 따라 심고, 트랙터를 끌고 밭에 나가면 따라하는 수준이라며 겸손해했다. 막상 트랙터를 몰고 논에 이르면 끝장을 봤다. 지역 농기계임대사업소에 전화해서 논에서의 트랙터 작동법을 물어봤고, 무작정 남의 논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농기계가 논에 빠지면 혼자 힘으로 당겨서 두둑에 올리곤 했어요. 얼마나 힘든지 그 자리에서 대자로 드러누웠습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겁나지 않아요.”

그는 여성농업인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외유내강의 면모도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아이 둘을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얻었어요. 평소에도 아들만 위하는 시어머니가 대리모를 얘기할 때는 서운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나이 먹으니 안 좋던 감정도 희미해졌습니다. 시어머니가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농번기에 일하러 오라고 부르는데, 우리집 할 일도 많은데 거절하기도 어렵고 난감했어요. ‘농사일도 직장이고, 일하기 힘들 땐 인력을 사서 써야 한다’고 용감하게 제안했습니다.”

지난 10월 12일 열린 제2회 여성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수연 대표는 결혼이민여성 경진대회의 우수농업분야를 수상하며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지난 10월 12일 열린 제2회 여성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수연 대표는 결혼이민여성 경진대회의 우수농업분야를 수상하며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홀로서기 도와준 이들에 감사”
2008년 남편이 위암 선고를 받고 청주시다문화센터에 나가서 스스로 할 수있는 일을 알아보던 날부터 김수연 대표의 홀로서기는 시작됐다. 김 대표는 혼자 힘만으로는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당시 한달음에 산후조리를 도우러 한국에 온 친정어머니는 김 대표의 ‘영원한 내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혼자가 된 김 대표의 곁을 지켜주기로 결심하고 청주에서 같이 살고 있다.

아흔을 목전에 둔 시부모님은 고령에도 논과 밭을 오가며 그가 농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김수연 대표는 충청북도농업기술원에서 실용적인 교육을 받고 농기계 운전이 숙달됐고, 굴삭기 운전과 용접도 배우게 됐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또한 충북농업마이스터대학 축산학과 한우과정을 배워 축산업도 이어가고 있다. 남편과 한우 70두를 키우다가 달랑 2두만 남았는데, 현재는 혼자 힘으로 축산기술을 접목해 개체수를 37두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가축인공수정사가 교배하러 축사를 방문하면 옆에서 지켜봅니다. 떡잎부터 다르다고 좋은 유전자를 얻어야 소 품질을 높일 수 있어요. 가축시장에서 소 1두당 250만원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출하 시 DNA까지 데이터로 확인하는 세상이거든요. 저는 453만원까지 받아봤습니다.”

청주농협 오근장지점 관계자들은 김수연 대표의 수상 소식에 마음을 담은 현수막을 선물하며 축하했다. 김 대표의 집 거실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청주농협 오근장지점 관계자들은 김수연 대표의 수상 소식에 마음을 담은 현수막을 선물하며 축하했다. 김 대표의 집 거실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국-북한 통역한 소통왕
김 대표는 고향에서의 삶도 진취적이었다. 중국동포인 김 대표는 만주 용정시에서 태어났다. 용정은 만주족이나 한족이 아닌 우리 민족이 개척한 곳으로, 항일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의 활동 중심지였다.

그는 시집오기 전 중국 연길에서 백두산천지 여행가이드, 무역회사에 다니며 중국과 북한의 통역을 했다. 열악한 환경의 북한에 파견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자야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한국 농촌도 낯설었지만 적응력이 높은 편이라고 자신했다.

“첫 만남에서 남편이 청주공항 근처에서 농사짓는다길래 산간벽지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어요.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죠.”

청주에 살면서 2011~2012년 충북보건과학대 중국비즈니스과를 졸업하고 2012년 학습지 교사로 2년 정도 일했다. 그 경력을 살려 2014년 중국어학원을 개원, 지난 5월까지 운영했다.

그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방송통신대학 사회복지과에 편입해 사회복지사1급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있다.

“주민들은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할 거냐고 묻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치유농업에 관심이 많아요. 농대에 진학하는 딸이 꿈을 함께할 든든한 지원군이죠.”

김수연 대표는 치유농업으로 도시민과 어르신들이 농촌에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며, 오늘도 꿈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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