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있어 2023년이 빛났습니다 - 경기 안산 친다봉씨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농촌여성신문은 전문농업인으로 거듭나고, 각 지역에서 온기를 불어넣으며 2023년을 빛낸 여성 4인을 조명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그들의 묵묵한 노력을 알리며 다가오는 2024년의 희망을 그려본다.

친다봉씨는 안산농협의 다문화여성대학을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에 눈을 뜨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됐다며 한국살이가 100점 만점이라고 만족해했다.
친다봉씨는 안산농협의 다문화여성대학을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에 눈을 뜨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됐다며 한국살이가 100점 만점이라고 만족해했다.

스무살 라오스에서 이민 와 지금은 ‘안산의 빛과 소금’
공항·병원 등 통역봉사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고수·공심채 키우는 전문농업인 꿈꿔

한국살이 13년차 다둥이 엄마
경기 안산의 친다봉씨(33)는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지 올해로 13년차다. 고작 스무살에 한국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머나먼 타국에서 겪었을 우여곡절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과 삼남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더 어려운 처지의 고향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지난 10월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제2회 여성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결혼이민여성 리더경진대회에서 사회공헌부문 수상자로 비로소 맺게 됐다.

“라오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라오스의 고향 위치를 우리나라 강원도에 비유할 정도로 이제 뼛속까지 한국사람이 다 된 친다봉씨는 이제 매서운 겨울날씨 적응도 마쳤다. 김치며 고추장이며 못 먹는 음식도 없다. 다만 김치만 못 담글 뿐이라고. 전남 완도에서 농사를 짓는 시어머니가 김치는 밑반찬이며 죄다 올려다 주시다 보니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그에게서 또래 새댁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다봉씨가 한국살이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유창한 한국어 실력 덕분이었다. 안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정규과정을 남들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마스터했다. 삼남매 아이들도 직접 말과 글을 가르칠 정도로 배움의 속도와 의지가 남다른 그다.

“아이들도 잘 가르치고 싶었고, 한국어에 서툰 고향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빨리 배우고 싶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언제 어디든~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통역 봉사활동에 적극 나섰다. 인천공항에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상주하며 라오스어 통역을 도맡는다. 라오스어 통역이 가능한 봉사자는 인천공항에서 그가 유일하다. 그래서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이 넘는 고생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외국인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불법 체류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도 참여한다. 의사소통이 문제가 돼 혹여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으로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말을 전달한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위해 먼 길을 건너온 그들을 볼 때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한다는 친다봉씨.

통역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의 일이었다. 어느 날 새벽 1시쯤에 응급환자가 있다며 급히 와달라는 전화 한 통에 그는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응급실에 제 또래 라오스엄마가 있더라고요. 애기가 열이 나 울고 있는데 한국말을 할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어요. 아이엄마를 먼저 안심시키고 의사선생님한테 상황을 자세하게 얘기했어요. 다행히 치료를 잘 받고 집에 돌아갔죠.”

응급환자가 언제 생길지 몰라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연락이 올 때면 별도 보수 없이도 달려간다는 친다봉씨의 봉사는 여기에서 끝나질 않는다. 올해 안산소방서에서 새롭게 조직된 다문화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며 동네 이곳저곳에서 불조심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봉사에도 나서고 있다.

 

친다봉씨는 안산농협 다문화여성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친다봉씨는 안산농협 다문화여성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안산농협과 손발 ‘척척’
경기 안산시는 전국 자치단체 중 9만4천여명으로 외국인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국적도 118개국에 이를 정도로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라오스인은 드문 편이다. 고향사람 볼 기회가 없고, 결혼 직후 아들과 딸을 출산하며 육아를 하느라 거의 몇 년을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런 친다봉씨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곳이 안산농협이었다. 많은 결혼이민여성들과 인연을 맺게 됐고,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특히 조연정 안산농협 여성복지과장의 도움이 컸다.

“조연정 과장님은 다문화여성대학을 맡아 하시면서 거의 언니동생처럼 지내요. 우리를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 줄 몰라요.”

조연정 과장 역시 갓 돌이 지난 딸내미가 있음에도 다문화여성대학 문을 직접 두드릴 정도로 배움의 열망이 큰 친다봉씨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조 과장은 친다봉씨를 비롯해 다문화여성들과 함께 한 지난 여름 홀로아리랑 공연이 기억에 선명하다.

안산농협 지도업무 담당자 조연정 과장 아이디어로 시작된 합창 공연은 8·15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문화여성대학 졸업생들이 광복절을 기념해 그것도 아리랑 공연이라니. 이색적이면서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조연정 과장은 “안산농협 유튜브 채널에 조회수가 생각보다 높았어요. 친다봉씨에게 영상 내레이션을 맡길 정도로 한국어도 잘하고 톤도 좋았어요.”

 

지난달 30일 결혼이민여성 농업교육 워크숍에서 안산농협 다문화여성대학 수료생들과 참석했다.
지난달 30일 결혼이민여성 농업교육 워크숍에서 안산농협 다문화여성대학 수료생들과 참석했다.

전문농업인으로 성장하고파
친다봉씨는 아직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진 않다. 살던 집 옥상에 조그마한 텃밭으로 시작해 남편과 함께 주말농장을 일구고 있는 정도다. 고향 라오스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경험이 있었던 터라 씨 뿌리고 작물을 키우는 일에 자꾸 애착이 간다고. 그래서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농업인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라오스와 기후도 다르고 농사법도 달라 어려움이 컸던 차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의 결혼이민여성 1:1 농업교육에 도전하게 됐다. 안산에서 알아주는 농사고수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는 과정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작물을 어떻게 키우는지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어요. 멘토님이 농사에 관심도 많고 붙임성도 좋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저에겐 큰 힘이 됐어요.”

결혼이민여성 대상 교육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총괄하고, 농협중앙회가 사업계획 수립과 예산배정 등을, 지역농협이 교육생을 모집하고 진행하는 결혼이민여성 농업교육은 크게 단계별 농업교육과 1:1 맞춤형 농업교육, 다문화가정 농촌정착지원과정이 있다. 친다봉씨는 올해 580명이 수료한 1:1일 맞춤형 농업교육을 통해 농사규모도 늘렸지만 더 큰 자산은 농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라오스에서 많이 키우는 고수나 공심채, 가지를 여기에서 키워보고 싶어요. 하우스에서 여러 작물을 키워 라오스사람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당한 농협의 조합원이 되는 게 꿈입니다.”

남다른 배움의 열정과 남을 돕고자 하는 진심의 소유자인 친다봉씨는 어느덧 지역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단란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지역의 온기를 돌게 하는 통역봉사로 만점활약을 펼친 친다봉씨. 이제는 전문농업인으로 성장하겠다는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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