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농업 현장을 가다 – 충남 공주 사회적농장 ‘샘여울’

충남 공주 유구읍 여드니마을에 자리한 ‘샘여울’은 발달장애인 아들과 이숙길 대표가 단란하게 살아가는 터전이다. 공교롭게도 샘여울을 찾았을 때 이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에 제출할 내년도 사회적농장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년도 정부의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사회적농장 지원 예산도 6천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줄었다. 사업계획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 대표의 모습에서 전운마저 감돌았다.

이숙길 샘여울 대표(사진 오른쪽)는 아들 윤상현씨와 함께 사회적농업의 순기능을 전파하며 농촌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숙길 샘여울 대표(사진 오른쪽)는 아들 윤상현씨와 함께 사회적농업의 순기능을 전파하며 농촌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모성으로 낯선 땅 일궈
지난해 사회적농장에 선정된 샘여울. 이 대표는 불투명해진 미래에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사회적기업 대표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판이라고 야단이에요. 항간에는 농식품부에서 신규 사회적농장 선정을 안 할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어요. 기존 사회적농장 가운데 운영을 잘하고 있는 농가를 집중 육성한다면 내부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죠.”

정부의 예산 삭감 공표에 이 대표는 유구읍 사회복지과 주무관에게 전화해 하소연한 것이 최선이었다고 한다.

2003년 이 대표 부부가 연고 없는 충남 공주의 임야를 매입할 때만 해도 자산 운용의 일부였다고 한다. 농촌마을에서 하룻밤 묵는 일도 낯설고, 선산이 전북 정읍에 있어 일평생 산을 소유할 필요성도 모호했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윤상현(25)씨가 성인이 되면서 앞날을 걱정하는 모성이 농촌으로 이끌었다. 도시의 건물임대 수익으로 임야 주변 농지를 매입해 조금씩 넓히며, 6600㎡(2천평)에서 쌀과 연을 생산하는 농부로 거듭났다.

“아들에게 농지를 승계하면 큰돈이 되겠지만, 부모가 죽고 나면 넓은 땅에서 가족 없이 지낼 아들을 생각하면 암담했죠. 이웃이 서로 돌보는 전통마을, 공동체가 어울려 사는 세상이 농촌에 있었어요.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게 사회적농업이지요.”

‘발달장애인’ 선입견에 맞서
지난해 각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샘여울을 찾아왔다. 정부기관에서 선정한 농장이라는 믿음에 사람들은 먼 거리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데 목소리를 높인 발달장애인부모활동가로서 농장에서 전국의 발달장애인 가족과 소통하며 사회적농장 프로그램 개발에 속도를 냈다.

“발달장애인들은 지저분하고 도움만 요구하는 바보라는 인식이 주민들 기저에 깔려 있었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긴 오해였죠. 발달장애인들도 주민들이 바보라고 흉을 볼까봐 일반인과 융화하는 프로그램에 용기가 많이 필요했어요.”

이 대표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주민들에게 발달장애인들이 해가 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사회적농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장주였기에 가능했다.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면서 원주민-귀농·귀촌인 간의 갈등도 자연스레 해소했다. 올해는 마을 어른들과 인근 농업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확대하며 사회적농장의 외연을 넓혔다.

공주여성농업인센터에서 가공교육을 받은 발달장애인들이 샘여울 연잎을 수확한 뒤 연잎밥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직거래장터 판매활동에도 나선다.
공주여성농업인센터에서 가공교육을 받은 발달장애인들이 샘여울 연잎을 수확한 뒤 연잎밥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직거래장터 판매활동에도 나선다.

사회적농업 활성화 제동
“샘여울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상자텃밭프로그램을 하는 이유는 일손이 필요한 농장에 필요한 사람으로 교육하고 싶어서예요. 음악놀이도 숫자 공부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농장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가지파스타를 만드는 체험에서는 아이들에게 농업의 긍정적 측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회적농업이 치유농업과 맞닿아 있어 정체성이 우려된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이 대표는 교육과 치유 돌봄 등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적 활동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원예치료로 접근하는 치유농업에서 화분매개 활동이 주요프로그램이면, 사회적농업은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더라도 외부강사가 필요하고 농업 생산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노인이 아프면 자녀가 부양하기보다 요양보호사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것처럼 농촌도 사회적농장의 가치를 알려 농장주를 육성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 돌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공동체를 구축하는 효능이 있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죠.”

발달장애인 일자리 ‘흔들’
샘여울에는 지난해부터 지역 발달장애인이 출근하고 있다. 강사비로 그를 채용한 이 대표는 ‘인턴’이라고 불렀다. 올해 서른 살인 인턴의 형제는 모두 장애인인데, 최근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샘여울에서 농사일을 돕고, 프로그램 진행 시 포장을 하는 등 성실히 일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주 1일이던 그의 근무일수를 주 2일로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불확실해졌다.

“사업비가 500만원 삭감되면서 활동일수를 줄여야 했고, 대상자 수를 감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번기에 집중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것은 똑같고, 농산물 재배에 필요한 경영비도 만만치 않은데 벌써부터 내년이 걱정이에요.”

이숙길 대표는 사회적농업의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리더십을 인정받아 공주시여성농업인센터 이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농업 최전선에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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