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자치분권시대, 여성의 역할(여성의 목소리 이렇게 높입니다) - 충북 보은

충북 보은 회인면주민복지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찜질방은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이용료는 80세 미만 1천원, 80세 이상 무료다. 회인면 찜질방은 회인면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해숙)에서 7년 전 어르신들의 편의를 증진하고자 한국수자원공사 K-워터나눔복지재단의 주민지원사업의 하나로 마련됐다. 밤낮으로 일교차가 커진 이때에 주민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해숙 회인면주민자치위원장은 남녀 동수 임원을 적극 권장하며 성평등한 농촌사회를 그려 나가고 있다.
이해숙 회인면주민자치위원장은 남녀 동수 임원을 적극 권장하며 성평등한 농촌사회를 그려 나가고 있다.

농촌여성, 농사·시부모 부양에 대외활동 한계
이장 적임자는 고령 돼야 주민 신뢰 얻나…

회인면주민자치위는 남녀 동수
이해숙 회인면주민자치위원장(보은군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회인면생활개선회 회원)은 지난해 남성후보와 당당히 겨뤄 올해 위원장에 선출됐다. 이 위원장은 지역사회에서 여러 단체의 임원을 두루 경험하고 봉사에 적극 나서면서 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에 밝았다고 한다.

회인면은 농촌지역에 문화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 26명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 13명, 남성 13명으로 구성된 조직은 남·녀가 공평하고, 임원 또한 위원장(여), 부위원장(남), 간사(남), 감사(남), 문화예술분과장(여), 봉사분과장(여)으로 남녀 동수다.

이해숙 위원장은 “11개 읍·면 주민자치위 구성도 남·녀 균일하게 선출할 것을 보은군주민자치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은군 관계자에 따르면 보은군주민자치위원은 270명. 이 중 여성위원은 123명이다.

맞춤프로그램으로 문화소외 탈피
주민자치프로그램이 운영되는 평일 저녁 7~9시면 회인면주민자치센터와 회인면행정복지센터에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로 마을이 활기를 띤다. 풍물, 서예, 색소폰, 난타,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실시되고 있어서다. 특히 요가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은 32명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다.

10년 이상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서예, 풍물 분야는 어느덧 걸출한 성과를 냈다. 풍물교실은 충북 주민자치프로그램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서예교실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전원 왕성한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한지공예교실을 신설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라인댄스를 하고 싶다는 주민 제안도 내년도 주민자치위 예산에 긍정적으로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 위원장은 올해 회인면주민자치프로그램 운영비 예산이 1923만원이라고 전했다. 운영비 외에 보은군에서는 매월 1회 회인면주민자치위 회의가 열리는 날에 1인당 식대비 3만원을 지원하는데, 식사하고 남은 비용을 주민자치위 기금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 푼 두 푼 모은 기금은 위원장과 간사에게 월 30만원을 보조하는 자발적 규칙을 정했다.

회인면 주민자치위원들이 지난 4월3일 새벽 5시부터 다목적회관 주변에 모여 화단꽃길조성사업을 함께하며 화합했다.
회인면 주민자치위원들이 지난 4월3일 새벽 5시부터 다목적회관 주변에 모여 화단꽃길조성사업을 함께하며 화합했다.

농촌여성은 사회활동 어려워…
이 위원장은 13년 전 연고 없는 충북 보은으로 귀농했다. 농지 3만3천㎡(1만평)에 하수오, 더덕, 도라지, 잔대, 들깨 등을 재배한다. 들깨만 9910㎡(3천평)이라, 요즘 깨 터는 작업에 한창이라고.

“약초백숙을 만드는 식당을 운영한 지도 벌써 4년째네요. 농사도 음식점도 사람을 써서 운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원장 활동이 어려워요.”

회의나 행사에 위원장은 의무적으로 꼭 참석해야 한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 보니 농사일이 많은 여성들은 바깥활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

“남성들은 아내가 내조해줘서 나서기 훨씬 수월하죠. 여성은 농사일이 많거나 시부모 부양을 하면 쉽게 집밖을 나서지 못해요. 그래서 여성주민들이 임원을 맡으려고 하지 않죠.”

그는 “요즘은 옛날처럼 농사일만 하라는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이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짬을 내 주민자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13년 전 도시에서 살 때보다 농촌서 자리 잡은 지금이 더 좋아요. 농한기를 이용해 자기개발하는 농업인들도 많은데, 여성들도 하고 싶은 일, 다니고 싶은 곳을 막힘없이 해보면 좋겠어요.”

■ 우리마을은 여인천하 – 유화순 눌곡리 이장
“이장님은 눌곡리 발전시킨 인물”

여성이장이라서 소통 수월하고 더 섬세

보은 회인면 눌곡리, 건천리는 여성이장이 이끌고 있다. 눌곡리는 영해박씨 집성촌으로 500여년 역사와, 73가구로 이뤄진 큰 마을이다. 지난 2020년 유화순(72) 이장은 500년 역사 최초의 여성이장으로 추대돼 주민들의 실익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올해 4년차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유 이장의 소회를 들어봤다.

유화순 눌곡리 이장
유화순 눌곡리 이장

500년 역사 최초의 여성이장
“다른 지역 가서도 우리 마을 자랑하고 다녀요. 눌곡리는 서울의 강남이라고요. 회인면 25개 리에서 가장 고속도로 접근성 좋고 악취 나는 축사도 없고, 문화재가 있어서 인구가 유입되는 마을이에요.”

눌곡리 입구에는 옛 경로당이었던 돌담카페가 외지인을 반겨준다. 마을에서 300m 떨어진 자리에는 조선 말기 성리학자 박문호가 고향 눌곡에서 성리학을 연구·저술하며 후학을 길러낸 충청북도 기념물 제28호 ‘풍림정사’가 관광객을 맞는다.

유 이장은 마을회관 부엌을 입식으로 개선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현대화하며 주민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2020년 말 완공한 마을회관 내부는 상아색 편백나무에 둘러져 신축된 펜션처럼 아늑하면서 깨끗하다. 눌곡리는 유화순 이장과 부녀회장, 5개 반 가운데 여성반장이 1명이다.

“집성촌이어서 친척이고 가족이라서 처음에는 ‘어떻게 여자가 이장을 하냐’는 소리도 들었죠. 이제는 기둥 같은 주민들이 내 일처럼 손을 더해주고, 마을임원들이 모든 일을 같이 추진해준 덕분에 자신감도 붙고 4년 동안 참 행복했어요.”

보은 눌곡리 마을주민들이 마을 발전에 애써준 유화순 이장(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과 화합하며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보은 눌곡리 마을주민들이 마을 발전에 애써준 유화순 이장(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과 화합하며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주민들은 여성이장을 얻어 소통이 수월했다고 이구동성이다.

박삼례 주민은 “여성이라서 더 부드럽게 대화하기 좋다”고 말했다.

박순자 주민은 “여성이 이장하면 더 섬세하고 잘할 것 같아서 추천했다”며 “평소 유 이장이 봉사도 많이 하고, 남성만큼 활동적으로 앞서 나갔다”고 호평했다.

이채화 3반 반장은 “이장이 앞서서 잘하니까 뒤에서 협조해주기 편하고, 남자 못지않게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활성화를 더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하며, “올해가 이장 임기 만기인데 주민으로서 생각에는 이렇게 마을을 발전시켜줄 인물이 또 나올까 싶다”고 염려했다.

남성들은 이장 경력을 발판 삼아 지역농협에서 임원과 조합장에 출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화순 이장은 고령인 까닭에 이장 경력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눌곡리만 봐도 홀로여성어르신 가구가 많고, 농촌마을이 고령화되고 있어요. 여성들도 용기를 내서 마을과 면, 시·군을 위해 나서주길 바라요. 진심을 다해 주어진 일에 임한다면 주민들도 그 노력을 인정해줍니다. 겁내지 말고 이장에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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