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자치분권시대, 여성의 역할/농업인 대의기구에서 여성의 목소리 높이려면…

지난 9월21일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주최로 열린 정책포럼에서는 농업인과 현장의 요구사항이 가감 없이 전달됐다.
지난 9월21일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주최로 열린 정책포럼에서는 농업인과 현장의 요구사항이 가감 없이 전달됐다.

변옥철 전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출범부추진단장은 농어업회의소가 지방자치단체와 정책을 협의하고 농정예산에 의견을 내는 진정한 대의기구로 평가했다. 그는 농어업회의소가 농정파트너로서 편이장비부터 농민수당 등 크고 작은 정책에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밀려있던 여성들이 제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면서 성별을 떠나 능력에 따라 자리를 맡기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농어업회의소 논의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제화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여성농업인의 위치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농어업회의소가 이들에게 확실한 소통창이자 대의기구로의 역할을 확신했다. 참여 확대를 위해 비율 명시도 제안했다.

 

■변옥철 전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출범부추진단장
(전 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장)

성별 떠나 능력으로…별도 여성이사 몫은 도움 안 돼
여성농업인 편이장비 품목 추가 건의 등 소기 성과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출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제11대 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장과 춘천시농어업회의소 출범부추진단장을 역임했다. 특히 남성농업인이 주로 맡던 농업인단체협의회장은 큰 의미가 있다. 덕분에 출범부추진단장을 맡아 회장과 손발을 맞춰 비교적 빨리 농어업회의소가 문을 열 수 있었다.

출범 전부터 농어업회의소가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출범한 지 2년 정도 지났는데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어 뿌듯하다.

-농어업회의소 구성은 어떻게 되나.
춘천 농업인이 1만5천명 정돈데 원래 가입목표치는 1천명으로 잡았다. 개인회원은 연간회비 3만원이 100% 자부담이라 다 모집할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농업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가입하면 여러 혜택이 있다는 게 알려지며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현재 농어업회의소에는 농업인단체와 생산자단체가 주축인 단체이사 13명, 11명의 지역이사, 농협과 산림조합 관계자 9명이 특별이사로 구성돼 있다. 생활개선회장으로서 지난해까지 단체이사를 맡았고, 올해부터 김성자 생활개선회장이 이사로 있다.

-정책에 반영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읍면 순회간담회를 시작으로 분과토론회, 정책협의회를 거쳐 정책에 반영되는 식이다. 모두 반영되는 건 아니지만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전보다 많이 들어갔다.

지난달 정책포럼이 열렸는데 여성농업인의 건강권을 보장해달라는 의견이 나왔다. 여성농업인 관련예산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시에서 여성농업인 노동경감에 2억8천만원을 지난해 썼더라. 복지바우처에 5억1천만원을 포함해 총 8억원이 안 됐다. 여성농업인 숫자가 얼만데 예산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해가 안 됐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이 나왔다. 농업기술센터, 시의원, 시청 공무원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얘기라 영향이 있을 거다. 얼마나 예산이 반영될지 모르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자주 건의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여성농업인이 체감하는 효과는.
농업정책 38건, 식량분야 10건, 친환경분야 6건, 가공유통분야 2건, 원예분야 14건, 축산분야 6건, 기타 17건을 모아 지난 9월에 정책협의회에 전달했다. 그중 하나가 여성농업인 농작업 편이장비 지원사업이었다. 원래 도비지원을 통해 다용도 작업대, 충전식 분무기를 지원받았다. 내년에는 여성들이 많이 쓰는 소형 예초기를 추가해 달라고 건의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성농업인의 노동을 줄여주는 데 공감대는 갖게 됐다.

이외에도 농가당 지급하는 농민수당을 개개인에 지급하는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농가당으로 지급하면 아무래도 여성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거라 당장은 힘들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농업·농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키우려면.
농어업회의소에 여성이사를 의무화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여성농업인 참여를 막을 수 있는데, 1~2명만 여성 몫으로 주면 된다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사를 따로 만드는 것보다 능력 있는 여성농업인을 단체이사나 지역이사에 점점 늘려가는 게 좋을 것이다. 대신 대의원은 여성농업인 숫자만큼 배정하는 건 좋다.

농업인단체협의회장을 맡았을 때도 느꼈지만 남자 여자를 떠나 적극적으로 일할 의지가 있고 능력만 갖췄다면 자리를 맡기는 게 순리다. ‘남자니까 맡아야지’ ‘원래부터 남자 자리다’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김기현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연합회 전무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사업 교육 많아져야
참여 늘리려면 40% 규정도 논의 필요

-농어업회의소 논의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법제화는 지지부진하다.
1998년 범농업인 21세기 농업개혁위원회에서 농어업회의소 설립이 논의됐고 35개 단체가 참여하는 준비위원회도 출범했다. 하지만 초기에 중앙이 내려주는 하향식 모델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10년 넘게 논의가 중단됐다. 201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시범사업 형태로 여러 지역에서 농어업회의소가 설립되거나 준비 중인 건 고무적이지만 법제화가 이뤄지지 못해 한계가 있다.

정부가 바뀌면서 법제화가 무산되는 분위기가 고조돼 걱정이다. 벌써 재정자립을 이루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사무국 운영에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농어업회의소가 있는 지역에는 성과도 많이 있지 않았나.
성과는 크게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순회간담회를 통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농정참여 보장, PLS·공익직불제 의무사항 등 농업인 교육훈련 범위 확대, 농정이슈 정책연구와 농지가격·외국인 근로자 등 실태조사 등의 조사연구사업 활발, 조례 제·개정과 각종 법정계획에 자문기구 확대, 귀농귀촌지원센터·인력지원센터 등 중간지원조직 역할 수행, 농촌협약·농특산물 축제 등 지역특색사업 발굴과 운영모델 확산 등이다.

-여성의 참여가 왜 중요한가.
농어업회의소를 비롯해 농정참여기구에 여성의 참여가 없다면 농업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여성농업인 수가 남성을 넘어선 지 꽤 됐지만 그에 걸맞은 권익은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다. 농어업회의소에 부부가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회비 부담 때문에 여성이 빠지는 사례도 있다. 여성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의지를 확실히 가져야 한다.

여성농업인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농촌체험, 6차산업, 마을만들기 등의 사업이나 교육을 확대하고 육아··가사일·교육 등 생활이슈들을 다루는 역할도 농어업회의소가 한다면 여성의 활동영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는 대의기구다. 여성의 참여를 늘리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 참여를 확보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 위원은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어업회의소는 농정에 관한 심의와 자문, 의결을 수행하는 대의기구로 여성 참여를 확보하려면 양성평등기본법을 준용하거나 아예 남녀 동수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어업회의소가 설치된 지역은 대의원과 이사, 추진단계인 경우에도 여성 비중이 매우 저조한데 비율을 명시하는 규정이 있어야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분과위원장의 공동위원장제, 지역이사는 남녀 공동회장 제도를 둔다면 성별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농식품부가 선정 시 여성의 참여비율이 높은 곳에 가점을 주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이 되려면 여성의 참여 비중이 중요하다.
농촌의 소외계층은 소농과 고령농, 귀농·귀촌인, 이주여성, 청년, 그리고 여성이다. 이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기구로 농어업회의소가 해법이 될 수 있다. 산하에 청년위원회나 귀농·귀촌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남성과 여성위원회를 구별해 설치·운영도 검토해 보자. 성별에 따라 요구하는 게 다를 수 있고 합의된 의사결정을 할 때 여성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장치가 될 수 있다.

분명 앞서가는 지역이 있을 건데 이를 벤치마킹할 수 있게 기초·광역농어업회의소와 여성정책기관이 공동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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