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지역특화 치매서비스 활성화 방안은... - 충남 예산군치매안심센터 사례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9월, 충남 예산 대술면 장복1리경로당. 예산군보건소 관계자들의 밝은 목소리에 맞춰 어르신들이 춘하추동 다이어리 교재에 크레파스를 색칠하며 치매예방프로그램에 열중이다.
장복1리 치매 유병률은 56가구 중 14가구로 25%나 된다. 이에 증상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수반돼야 하지만, 농촌서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마을에서 읍내 병원까지 13㎞ 떨어진 농촌에서 주민 대부분은 농사일에 집중하는 터라 치매 진척도를 면밀히 관찰하고 적기에 치료를 받기 어렵다.
예산군에선 대술면 장복1리와 덕산면 읍내1리가 보건복지부 치매안심마을로 선정, 운영된다.
치매안심마을 맞춤교육으로 주민 인식 바뀌어
치매가구에 AI로봇 보급…“위급 시 목숨 구해”
가족에 짐 지우는 돌봄
예산군치매안심센터는 2018년 11월 문을 열었다. 당시 보건소 관계자들은 마을을 가가호호 다니며 800여명 치매환자를 발굴했다. 현재 예산군은 2805명(지난 8월 기준)으로 환자가 늘었다.
농촌에서는 중증치매로 진단하는 수치 3~4등급이 나와도 요양원에 가족을 맡기는 걸 불효로 여기는 정서가 만연하다. 장복1리에도 중증치매 가구가 4가구로 집계됐지만, 가정에서 돌보는 상황이다.
유하늘 예산군 건강증진과 치매관리팀 주무관은 “올해 치매안심마을 사업비가 100만원뿐이었다”며 “예산해봄센터에서 강사료, 재료비 등을 지원받고, 호서대 애니메이션학과에 문을 두드려 사업비와 봉사단을 꾸려 치매안심마을 운영을 활성화했다”고 설명했다.
유 주무관이 주선한 호서대 학생들의 재능봉사에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장복1리 마을 입구가 밝아졌다. 흉물스럽던 폐창고가 알록달록한 색감의 벽화로 재탄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치매예방교실, 치매환자 조호물품, 치매진단등록, 치매가족지원 등 관련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자구적 노력은 올해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마을 우수 선도사업에 예산군이 선정되는 영예를 가져왔다. 예산군은 국비 2480만원을 확보하고, 이달 12일부터 인공지능(AI)로봇을 기반으로 한 ‘더 스마트한, 더 안전한 치매예방사업’을 시행한다.
특히 치매가구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가스안전장치(가스타이머쿡)를 무료 설치하고, 스마트태그가 부착된 배회인식표 보급했다. 군비를 투여해 치매치료비를 3만원 한도 지원하고, 기저귀를 평생 무상 지급한다.
홀로어르신, 중증치매 위험 가구 40곳에 우선 설치되는 AI로봇 스피커는 평소엔 적적한 홀로어르신의 말벗이 되는 반려로봇으로, 위급 시에는 ‘살려줘’를 외치면 보건소나 지자체 담당자, 보호자 등에게 인적사항 등을 발송해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보건소에서는 AI로봇을 내년 50대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치매안심마을 주민들 인식 변화
박월서 예산군 건강증진과 치매관리팀 주무관은 “마을에 찾아가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체감도를 높이려 노력했는데, ‘예산군보건소’가 쓰인 차량이 마을에 드나든다고 외부에 소문이 날까 우려한 일부 주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애로를 겪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9년째 치매 노모를 돌보고 있는 김병흠 장복1리 이장은 “56가구 중에 70대가 젊은 층에 속할 정도로 80대 주민 비율이 높다”며 “옛날부터 주민들은 가족이 치매에 걸리면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죽을병이라고 여겨 주변사람들에게 숨겼다”고 말했다.
경로당에서는 최근 문해교실을 운영했지만 그전에는 무더위쉼터 겸 마을급식 운영이 위주였다고 한다. 그는 ‘치매는 항상 배움과 인간관계’라는 소신을 밝혔다.
김 이장은 “올해 치매안심마을로 지정되면서 어르신들이 보건소에서 하는 교육을 통해 몰랐던 정보를 배우고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주말에는 4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의욕적이라 마을에 활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현장에서 - 김용재·정정자 부부
치매이웃 함께 돌보는 마을에 ‘안심’
정정자 장복1리 부녀회장이 경로당을 나와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 김용재씨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음은 정정자 부녀회장과의 일문일답.
-남편의 치매 증세를 언제 인지했나.
4~5년 전, 남편은 아니라는데 엉뚱한 말을 내뱉어 치매가 아닌가 싶었다. 4남매를 낳아 젖소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공무원, 교사 자녀를 뒀다. 통장에 무조건 저축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3년차 부녀회장으로 주민들에게 봉사하며 사는데, 남편 돌보느라 힘들어서 임기 6년을 못 채우고 내려놓게 될 것 같다.
-힘에 부칠 때는 언제인가.
정신적인 고통이 힘들다. 2년 동안 요양원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도록 했다. 증상이 심했는데 완화돼서 지난해 5월부터 집에서 돌보고 있다.
남편에게 감정기복이 생겼다. 기분 좋을 때는 괜찮은데, 어떤 때는 마음이 달라진다. 의처증이 생겼다. 마을일을 보느라 집을 비우면 어디서 뭐하느라 집에 안 오냐며 전화를 건다.
남편이 40대부터 혈압약, 심근경색약 등을 복용해 왔다. 병원 내원은 잘 안 하고 처방만 받은 치매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농사를 짓고 있어서 경제적 부담은 덜하지만, 주민들과 소통에 제약이 따른다.
-치매를 간접 경험하고 있는데.
남편을 보면서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뇌 혈류를 원활하게 하는 약은 치매진단을 받기 전에 병원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앞날을 대비해야겠다.
치매 증상도 공부했다. 음식을 자꾸 먹는 치매, 밖을 나가려고 하는 치매, 잠만 자려고 하는 치매, 남한테 시비를 거는 치매, 남의 밭을 매는 치매 등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증상과 종류를 공유했다.
-치매안심마을로 선정됐는데.
치매안심마을로 지정돼 ‘치매이웃’을 서로 돌보자는 마음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마을 현황에 맞춰 치매교육을 받으니까 만족스럽고 주민들 인식이 개선돼 안심이 된다. 마을에 꼭 필요한 교육을 운영하는 예산군보건소 관계자들과 주민들을 위해 안팎으로 왕성한 활동에 나서주는 김병흠 이장께 감사하다.
관련기사
-
“연명 아닌 삶 즐기도록” 지역이 돌보며 치매친화사회로~
윤석열 정부, ‘치매안심마을’ 중심 친화적 환경 조성인식개선에만 치중…인프라 확충에 눈 돌려야도시형·농촌형으로 구분하고 치유농업에도 주목해야지역이 함께 환자·가족 돌본다이제 치매는 일부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질환이 아니라 누구나 맞닥뜨려야 할 삶의 마지막 단계다. 치매환자는 올해 97만7천명에서 2070년 338만명, 관리비용은 2050년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되며 더 이상 가족에게만 돌봄을 맡길 수만은 없다. 초저출생 문제와 함께 대한민국 미래를 옥죄는 시한폭탄인 치매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내세운 문재인
-
노인 10명 중 1명 치매…환자 33% 사각지대
■ 주간Focus - 증가하는 치매환자, 돌봄 대책은…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 97만7천여명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112만원‘○○시에서 실종된 김모(여·91세)씨를 찾습니다. 150㎝, 흰색모자, 검정반발티, 검정긴바지, 밤색구두….’치매노인을 찾는 긴급문자 수신 진동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휴대폰을 울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의료·복지서비스를 연결해 질 높은 국가 돌봄을 제공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9월21일, ‘세계 치매의 날’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치매정책과 돌봄체계 문제를 들
-
치매 어르신 맞춤 돌봄…“영광이라 안심입니다”
“부끄러운 질병 아냐”...지역사회 인식 개선 앞장치매 어르신 조기 진단해 증상·단계별 맞춤 관리단계별 맞춤관리로 보호자도 ‘안심’“평생 농사만 짓던 엄마가 3개월 전 치매 진단을 받았어요. 갑자기 엄마를 보살펴야 하니 집으로 모셨죠. 그런데 집에 있으면 자꾸 밭으로 김매러 나간다고 해요. 우리 집은 아파트인데 시골집이 그리운가 봐요.”전남 영광군치매안심센터 쉼터프로그램에 참여해 치매환자를 돌보는 정성자(60)씨의 말이다. 어머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재밌게 구경하기도 했다.그때마다 정씨는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