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1111명 중 여성 13명뿐…임원은 10%도 안 돼
복수조합원·여성임원 할당제 시행됐지만 변화 더뎌
정부 바뀌면서 여성 참여 확대가 후순위로 밀렸단 주장도
임원 자격요건 문턱 낮추고 내실 있는 교육사업 필요

농협중앙회는 여성농업인 육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내놓지 못했다.
농협중앙회는 여성농업인 육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내놓지 못했다.

■여성조합원·임원 확대를 위한 제도·정책방향

여전히 바늘구멍 통과하기
농협은 농가당 한 사람으로 조합원을 제한하면서 경영주로 등록된 남성만이 가입하는 문제를 노출하며 1994년 복수조합원제도가 도입됐다. 2015년에는 농협법이 개정돼 여성이 전체 조합원의 30% 이상 조합은 이사 중 1명 이상을 여성조합원 중에서 의무적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여성 임원 의무할당제가 실시됐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3년 기준, 여성은 조합장 1.2% 이사 12.2%, 감사 1.9%로 전체 임원은 9.9%에 머물렀다. 복수조합원과 여성 임원 의무할당제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았지만 여전히 여성의 대표성 강화는 요원하다.

전국 1111개 지역농협을 컨트롤하는 중앙회 여성임원도 마찬가지다. 이는 매년 농협 국정감사에서 반복되는 단골메뉴다. 지난해 국감에서 주철현 국회의원은 “농협 조합원 211만3천여명 중 거의 40% 가까운 71만6천여명이 여성”이라면서 “(농협중앙회) 실장이나 부장 등 M급 관리직 128명 중 여성은 딱 3명이고, 경제지주는 M급 관리직 97명 중에서 여성이 1명뿐”이라고 지적했다.

농협측은 “은행지점장은 약 23%, 3급 이상 책임자도 24%, 초급 책임자는 36%로, 5년 사이 배로 늘었다”면서 “여직원 보직과 전문직 공모, 전문가 리더십 양성과정 등을 통해 능력 있는 여성에 차별 없이 평등한 인사가 될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해명했다.

전년도 국감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고, 해명 역시 유사했다. 질의한 의원조차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따지지 않고, 말뿐인 약속만 받은 채 후속조치는 묻지 않았다. 결국 개선되지 않은 채 이듬해 국감에서도 똑같은 지적을 할 뿐이다.

자율성 존중 vs 문제 방치
지역농협 조합원과 임원은 어떨까. 중앙회는 기본적으로 지역농협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성 비율을 늘리라고 독려할 순 있지만 강제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농림축산식품부에 지역농협에 여성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제도마련을 계속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회가 여성 참여 확대에 손을 놓으면서 지역농협 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역농협은 보통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하는데 남성들이 대부분이라 여성의 참여에 부정적이거나 인식이 낮아 여성 참여 확대를 제약하기도 한다. 일부는 복수조합원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앙회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중앙회도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15년부터 구성된 ‘여성농업인 육성 특별위원회’다. 중앙회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조합장과 여성농업인단체장, 여성농업인, 정·관계와 학계 인사 등 15인이 참여했다. 위원회는 여성농업인 역할이 커지고 있어, 육성과 지원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여성농업계는 더 나은 권리실현에 희망을 걸기도 했지만 위원회는 사실상 보여주기식에 그쳤다.

위원회에 참여한 한 여성농업인은 “중앙회가 지역조합에 여성 참여가 늘리도록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당시 중앙회가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은 들었지만 이후에 어떻게 추진됐는지는 내용을 아는 게 없다. 회의도 2차례 한 게 고작”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농식품부, 적극적 의지 가져야
농식품부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제5차 여성농업인 육성기본계획에 여성농업인 정책 참여 확대라는 목표 아래 농협의 여성조합원과 여성임원 목표치를 명시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빠졌다. 2014년 여성조합원(32.7%)과 여성임원(4.6%) 비율이 2020년 각각 33.0%, 8.6%로 늘었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제4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과 비교해 오히려 후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6년에는 여성조합원과 임원 비율을 40%·20%로 늘리겠다며 정관례를 개정해 전체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는 이사와 여성조합원 중 선출하는 이사로 나눠 선출할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하고, 농협중앙회가 조합 업적평가 지표에도 이를 반영하도록 했다. 물론 평가지표 점수가 기껏해야 1~2점에 그치면서 변화를 이끌기엔 한계를 보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는 건 농식품부의 확고한 정책방향”이라면서 “큰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여성이라고 무조건 임원을 맡기는 건 농협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라 먼저 역량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참여를 늘리자는 명분에 공감하면서도 중앙회와 농식품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포함해 젠더 갈등을 부추기면서 여성 참여 확대가 후순위로 밀리며 농협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박진도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농협법과 여성농업인 육성을 소관하는 농식품부가 여성임원 할당제가 활성화되도록 관리·감독해야 한다. 농협법 제45조에 여성조합원 조항이 있는데, 각 지역농협 정관에 대의원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 제언-오순이 광주전남여성농민회총연합
                      조직교육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 정책위원장)

농지·생산설비 등은 부부 ‘공동자산’
선도 지역농협에 획기적인 인센티브 줘야

오순이 광주전남여성농민회총연합 조직교육위원장은 여성의 참여를 늘리는 것이 협동조합의 원래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농협이 성인지적 관점에서 모든 사업을 바라보고, 여성농업인의 권리보장을 통한 성평등한 농촌문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농협에 여성 참여가 왜 힘든가.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적 농촌사회 문화가 아직도 팽배하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남성들이 여성의 참여에 부정적 인식은 입 밖으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가입을 위한 출자금, 구매와 판매실적 등 이용실적 문턱이 높다. 대개 여성은 본인 이름으로 농지를 갖지 못하고, 출하나 구매도 남편 이름으로 하면서 실적을 충족하기 힘들다. 대의원도 마을당 1명만 배정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남성이 차지한다. 지역농협에만 맡겨둬선 변화는 너무 더디다. 법을 개정해 대의원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의무화하고, 중앙회는 선도하는 지역농협에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제도적 허점은 없나.
‘농업협동조합법’ 시행령과 ‘조합원의 자격요건인 농업인의 확인 방법과 기준’ 고시에 따르면 농업인의 가족원으로서 농업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반면 지역축협과 품목별·업종별 조합은 가족원으로 복수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없다. 이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지역축협과 품목별·업종별 조합이 여성조합원 비율이 다른 지역농협보다 낮은 원인이다.

출자금이 부담돼 남편이 사망하고 나서, 승계를 받아 조합원 자격을 얻는 여성이 많다. 대의원이나 이사로 참여하려면 조건은 더 까다롭다. 독립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출자금 조건은 여성 참여를 막는 유리천장이 되고 있다. 농지와 생산설비, 농자재 구매실적은 부부의 공동자산이다. 따라서 농가단위 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개선점은.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농업인이라면 가입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 지역조합은 각종 봉사와 마을행사, 판매사업에서 여성에게 많은 걸 맡긴다. 하지만 그에 대한 권리보장은 미약하다. 본인 생산 농산물을 본인 이름으로 출하하고, 농업경영 주체가 되는 기회를 주는 게 여성농업인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길이다.

여성조합원 교육사업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 교육사업은 노래교실이나 취미활동이 일반적으로, 생산자 지위에 맞는 영농교육이나 협동조합의 이해와 실무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대상이나 단체 소속 회원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이사나 대의원이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것도, 제대로 된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다. 체계적 교육이 이뤄진다면 농협발전에 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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