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가사수당 도입 가시화되나... (농촌여성은 슈퍼우먼? : 대전광역시 A씨)

부모급여,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령연금 등등…. 우리나라는 생애주기별 대상에 맞춰 수당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사수당’은 왜 없을까. 농촌여성들이 농번기 고된 농사일에도 때맞춰 끼니 준비하고,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는 건 당연시 돼왔다. 시부모 건강을 챙기는 일과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히 할 수 없어 ‘슈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다.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9900㎡(3천평) 노지에 시아버지와 복합농을 하는 A씨는 “오후에 학원에서 귀가하는 아이 둘을 돌봐야 해서 인터뷰는 곤란하다”며 “오전까지 끝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A씨는 시집와서 시부모의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며 밑반찬 8가지를 단시간에 만들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점심을 직접 챙기고 있다.
A씨는 시집와서 시부모의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며 밑반찬 8가지를 단시간에 만들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점심을 직접 챙기고 있다.

육아 도맡으며 시부모 그늘서 벗어나
정부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우려

“농사일이 더 힘들어요”
A씨는 부산에서 대전으로 시집왔다. 시댁과 분가해 아이들을 양육한다고 했다. 농사일 말고도 시시각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줄서고 있다는 A씨. 그의 오전·오후 일과는 농사와 가사노동으로 나뉘어있다. 남편은 서비스업 종사자다. A씨가 먼저 시부모의 농업을 이었다.

“내 가사노동의 가치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집안일을 직접 안 하고 가사도우미에게 맡겼을 때 일어날 부작용이 걱정돼요.”

대전에서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 후보에 의해 가사수당 도입 필요성이 불거졌다가 해당 후보가 낙마하면서 현 시정에서 요원해졌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농업인들이 소통하는 자리에서 한마디 했습니다.  농협에서 봉사활동이 필요한 학생들과, 일손이 필요한 농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학생들과 함께하니 2~3일 일할 것을 짧으면 반나절, 길면 하루 만에 농사일을 마칠수 있었다고요. 우리 농장은 마을기업에 속해 있어 혜택을 받고 있지만, 주변의 중소농들도 이런 해택을 받을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말을 전하자 함께 있던 블루베리 농장 대표도 공감했어요.”

농업 8년차, 대전원예농협 조합원으로도 활동하는 A씨는 감자, 고추, 들깨·참깨, 완두콩, 딸기, 천혜향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어 사계절 농사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가족경영농가에 가사 분담 필요
“농산물 시세가 들쭉날쭉해서 소득도 가늠이 안 되는데, 땡볕에 일하다 쉬는 시간 없이 밥을 차려야 했어요. 그 시간에 남자들은 낮잠을 자서 불만이었죠.”

A씨는 농가소득을 높이면서 시설하우스를 지어나갔고, 기계화 자동화로 농장에 도입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겨, 아이들 돌보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결혼 11년차가 되니 여유가 생겼어요. 이제는 농사일이 힘들면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 하면서 외식하거나 배달음식을 먹기도 한다. 먼저 퇴근한 남편한테 집안일 해달라고 전화하면 반찬은 못해도 빨래라도 해놔요.”

A씨는 “가족경영농가에서 며느리이자 엄마인 여성농업인들이 가족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며 “가사노동도 분담할 줄 알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가사근로자 도입에 부작용 우려
최근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가사관리사)를 연내 시범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를 통해 동남아 국적의 외국인 100여명이 입국하게 되며, 이들의 가사수당을 최저시급 9620원으로 책정해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전에서는 더 이상 가사수당이 논의되지 않아, 정부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과 파급 효과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범사업은 농촌 현장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농촌에 가사노동에 국한된 인력은 의미가 없어요. 농가소득이 안정되고 여성으로서 시간적, 마음적으로 여유가 생겨야 농산물을 가공, 체험을 생각할 수 있고, 자기 계발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요?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은 젊은 여성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정책 같아요. 직접 여성농업인에게, 농업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펼쳐줬으면 합니다.”

그는 가사근로자를 외국인으로 고용하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국내 경력단절여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가 있는 시간만이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40~60대 여성들이 많아요. 가사근로자는 요양보호사와 중첩되는 업무들도 있고요. 1~2시간 밑반찬만 만들어줘도 여성농업인들은 가사일이 가벼워집니다. 고용주로서 인건비 부담도 줄어들어요.”

특히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들어오면 기존 농번기 인력으로 체류해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잘못된 문화에 동화될 것이라고 A씨는 내다봤다.

“임금을 더 받으려고 야반도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건 농촌의 공공연한 비밀이죠. 외국인 가사근로자들도 분명 영향을 받을 겁니다. 외국인들이 농장주에게 처음 하는 질문이 농장에 와이파이가 되냐고 물어요. 스마트폰으로 동포끼리 농장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니까요.”

그는 가정에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들이기 보단, 농가 일손에 보탬이 되는 외국인 근로자를 들여서 소득도 높일 수 있고 농사일도 일찍 마쳐 엄마가 아이양육에도 참여할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엄마의 몸이 하루 종일 힘든 농사일로 지쳐 있으면, 아이에게나, 가족, 주변에 좋은 기운이 갈수 없습니다. 일손을 도와 주면 일도 일찍 마치고,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가족들 내조도 쉬워지지 않을까요.”

저출생, 근본적 해결책은…
A씨는 여성농업인에게 실질적 보탬이 되는 것은 고된 농사일을 덜어주는 인력 수급이라고 강조했다.

“농사일하고 시댁 갔는데 집안일은 쌓여있고 시어머니 누워 계시고, 시아버지는 휴대폰 보고 있으면 화병이 나는 겁니다. 몇 날 며칠 야근하고 친구 만났는데, ‘행색이 왜 그러냐’는 말에 폭발하는 것처럼 집안일도 마찬가지예요.”

A씨는 지난 2021년 딸기 재배를 위해 시설하우스 2동을 지었다. 자본금 1억7천만원과 매년 들어가는 딸기 모종 값을 생각하면 한 해 농사가 더 걱정이라고 전했다.

“세금으로 가사수당을 주고, 가사노동을 대신 해주는 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진 않을 겁니다. 여성이 아이를 올바르게 교육하고 돌보게끔 유도하는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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