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여성 무급노동 76%…한국 여성 82.8%
정신·육체·감정노동 수반 가사노동 ‘무가치·저가치화’
공적 노동시장 가사근로자들의 저임금화로 이어져
■주간Focus- 가사노동의 가치, 금전보상 가능한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돌봄을 포함한 가사노동의 사회화 정책이 확대됐다. 무상급식, 보육, 방과후 교실, 장애인 돌봄, 노인 요양 관련 제도, 저소득층과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가사서비스 지원 등과 같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사업이 쏟아지면서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수행하던 무급 돌봄을 포함한 가사노동의 상당 부분이 공적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계속 창출되고 있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시각처럼 여성 대부분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이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져보고, 금전보상이 가능한가에 대해 짚어본다.
경제적 평가로 환산 불가능한 가치
2019년 기준 통계청이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490조9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 대비 25.5% 수준이다. 1인당 949만원, 여성이 1380만원으로 남성(521만원)보다 2.6배가량 많다.
가사노동은 가족구성원의 일상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노동이다. 의식주, 가정관리, 가정생활, 가족돌봄 등 가사노동이 누군가에 의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수행돼야만 가족구성원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이 같은 가사노동은 대부분 육체노동은 물론 기획이나 정신노동을 요구한다. 또 구성원 간 관계나 감정노동 등 다차원적 노동이 수반된다. 정신적·육체적·감정적 능력을 요구하는 가사노동이 제대로 지탱되지 않는다면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이 무너진다.
이에 경제적 가치평가로 환산할 수 없는 가사노동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사노동은 여성의 ‘본능 활동’(?)
그럼에도 그간 가사노동은 공적 영역의 임금노동과 달리 무보수(무급) 활동이었으며, 주로 여성이 ‘본능’이나 ‘사랑’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본연의 활동으로 여겨져 왔다.
임금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높게 평가됐으나, 가정 내에서 수행하는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무가치화되거나 저가치화된 것이다.
이러한 가사노동의 저가치화는 공적 노동시장 가사근로자들의 저임금화로 이어진다.
올해 하반기 서울시에 도입되는 동남아 국적 가사관리사들에겐 최저임금이 적용되는데, 낮은 비용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쓸 수 있으면 맞벌이 가정의 육아 부담과 출산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내국인 가사관리사보다 저렴한 인건비로 가사·육아 부담을 나눠 맞벌이 가정에서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최저임금이라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이 소수인 데다 기존 중·고령층 내국인 가사관리사들의 일자리 소외를 우려하며 해당 시범사업을 반대하는 시각이 많다.
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주형 가사도우미의 경우 남성이 가사와 돌봄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일·가족 양립의 흐름으로부터 이탈을 촉진한다”면서 “남성의 돌봄 무임승차라는 문제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맞벌이 남편 54·아내 3시간
실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맞벌이 가구 남편은 하루 평균 54분간 가사노동을 한 반면, 아내는 3시간7분이나 했다.
무급 가사노동의 성별 불균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지만 한국 사회의 불균등은 좀 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무급노동의 76%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 여성은 82.8%를 수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의 여성은 평균 84살이 돼서야 자신이 하는 가사노동보다 가족 내 다른 구성원이 해주는 가사노동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47살부터 다른 가족 구성원의 가사노동에 의존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유엔(UN)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성평등이 실현돼야 하고, 성평등의 실현을 위한 실천과제 중 하나로 가사와 돌봄노동의 가치 제고를 제안한 바 있다.
이는 가사수당제도를 도입, 가사노동의 공익적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상징적인 현금성 지원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결혼 11년만에 집안일 분담했어요”
부모급여,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령연금 등등…. 우리나라는 생애주기별 대상에 맞춰 수당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사수당’은 왜 없을까. 농촌여성들이 농번기 고된 농사일에도 때맞춰 끼니 준비하고,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는 건 당연시 돼왔다. 시부모 건강을 챙기는 일과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히 할 수 없어 ‘슈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다.대전광역시 중구에서 9900㎡(3천평) 노지에 시아버지와 복합농을 하는 A씨는 “오후에 학원에서 귀가하는 아이 둘을 돌봐야 해서 인터뷰는 곤란하다”며 “오전까지 끝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육
-
농촌여성 가사노동 과부하…여든 넘어도 현직
무일푼·저평가 가사일, 노동가치로 인정받아야매달 10만원이라도 ‘나’를 위해 가치소비할 터“어머님, 식사하세요.”“여보, 밥 차려 놨으니 어서 앉아요.”새벽 4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조점님(59·생활개선광주광역시연합회 대촌지회 회원)씨는 일어나자마자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1만1900㎡(3600평) 규모 비닐하우스 9동의 샤인머스캣 농작업은 오전 10시 안에 마쳐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선 낮에 뜨거운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기 때문. 하루 전날 국과 반찬을 해놓고 이튿날 새벽에 밥만 해서 먹어야 식사 준비시간을 단축할
-
가사수당, ‘보편적 복지’로 시동…전국화는 미지수
■기획특집-가사수당 도입 가시화되나…지방선거에서 수면 위로 부상490조9천억원.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다. 그동안 ‘아무나 하는 일’ ‘허드렛일’로 여겨지던 가사노동은 가정의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를 지닌 노동으로 재평가받으며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가사수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허태정 대전광역시장 후보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후보가 가사수당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것.허태정 당시 후보는 1번 공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