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가사수당 도입 가시화되나... 농촌여성은 슈퍼우먼? (광주광역시 조점님씨)

조점님씨는 결혼 35년차 주부이자 베테랑 여성농업인이다. 틈날 때마다 정원도 가꾸며 가사에 들이는 시간이 노동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일푼·저평가 가사일, 노동가치로 인정받아야

매달 10만원이라도 ‘나’를 위해 가치소비할 터

“어머님, 식사하세요.”
“여보, 밥 차려 놨으니 어서 앉아요.”

새벽 4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조점님(59·생활개선광주광역시연합회 대촌지회 회원)씨는 일어나자마자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1만1900㎡(3600평) 규모 비닐하우스 9동의 샤인머스캣 농작업은 오전 10시 안에 마쳐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선 낮에 뜨거운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기 때문. 하루 전날 국과 반찬을 해놓고 이튿날 새벽에 밥만 해서 먹어야 식사 준비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삼시세끼, 하루도 맘 편히 집 못 비워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안팎살림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조점님씨. 광주로 시집온 지 35년째다. 이 마을 관행이 집안일은 고사하고 여성이 농사까지 도맡는다는 것. 부산에서 나고 자라 농사경험이 없던 그는 시집와서 농사를 처음 접하고 5년 전부터 샤인머스캣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우스 재배는 여성이 할 일이 더 많아요. 남자들은 방제나 거름 주는 정도죠. 작목을 샤인머스캣으로 바꾸면서 서서 일할 수 있어 조금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순치고 봉지 싸고 잔일이 엄청 많아요. 그건 다 제 몫이죠.”

고추, 수박 등 과채류 재배로 시작했다가 엽채류로 바꾼 뒤 쪼그려 앉아 일하는 시간이 늘다 보니 결국 양쪽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그래서 4년 전 줄기세포를 넣는 수술을 해야 했고, 최근에는 어깨 수술까지 받았다.

몸이 성할 날이 없던 이유가 있었다. 금이야 옥이야 아들 사랑이 대단했던 시어머니는 농사도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선을 그었다.

오전에 하우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집안일은 산더미. 잠깐이라도 쉴 법 하지만 청소와 빨래, 못다한 아침밥 설거지로 결국 주방으로 향한다. 작업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점심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남편은 오전 일 끝나고 돌아오면 바로 씻으러 들어가요. 밥상 다 차려놓고 불러야 그때 나와 같이 식사를 합니다. 숟가락이라도 놔주면 좋으련만 그것도 제가 해야 해요.”

고령의 시어머니와 남편의 삼시세끼를 챙기기 위해 하루라도 집을 비울 수 없었던 조씨. 그래도 유일한 낙이 있다고.

1만1900㎡(3600평) 규모 비닐하우스 9동의 샤인머스캣 재배 농장에선 오전 일이 한장이다.
1만1900㎡(3600평) 규모 비닐하우스 9동의 샤인머스캣 재배 농장에선 오전 일이 한장이다.

고된 일과에 민화 그리며 힐링
“학교 다닐 때 미술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민화를 그리죠. 제겐 이 시간이 힐링입니다. 그럼 뭐해요. 유학 보내준다고 해서 남편따라 왔더니 유학은커녕 일만 시키네요. 하하하.”

얼마 전 옆집으로 형님네가 이사를 왔다. 형님 가족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 또한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다.

“같이 바깥일 하고 돌아오면 남편이 청소기라도 돌려주면 좋은데, 아직 농촌은 여성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혀 있어요. 게다가 어머님 뵈러 오는 친인척도 제가 다 대접을 해야 하니 힘들고 부담이 됩니다. 저 아니면 다들 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녀가 성인이 돼도 60세를 훌쩍 넘긴 어머니들은 가사 일을 내려놓기 어렵다. 특히 고령화가 되어 있는 농촌에서는 80세가 넘어서도 가사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성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라는 식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정이 상당하다. 무일푼, 저평가되는 가사 일을 이젠 여성의 정당한 노동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제가 하는 일들을 노동가치로 따지면 한 달에 500만~600만원은 받아야 할 걸요. 그만큼 가족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어요. 만약 가사수당이 생긴다면 단돈 10만원이라도 하루 정도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조점님씨는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꿈이 있다. 하우스 한 동의 포도밭 사이에 민화를 전시하고 체험학습 공간으로 만드는 것. 그 안에서 그동안의 삶을 보상받으리라 다짐한다.

가사도 하나의 노동가치로 평가됐으면
양일영(50·생활개선광주광역시연합회 송정지회 회원)씨는 지난 4월 시어머니와 합가하고 3대가 모여 살고 있다. 그는 9900㎡(3000평) 규모 하우스 6동에 후지노카가야키 등 4가지 포도를 재배하고 있으며 남편은 농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오전 농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2년간 반찬가게를 운영했던 시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꺼내 한 끼를 먹는다. 그 시간에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어 나름 여유롭다.

음식을 만드는 시어머니 덕분에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어 한결 수월하다는 양일영 씨

비수기에는 농장을 남편에게 맡기고 양봉영농조합법인에서 아르바이트로 시급 1만2천원을 받고 일을 한다. 진정 자신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가끔 취업까지도 고려해 볼 정도로 귀가 솔깃하다.

합가 이후 할 일이 많아진 것은 당연지사. 시어머니를 마을 노인정에 모시고 가는 것은 물론, 이젠 자녀들도 제 할 일을 할머니 눈치보며 은근슬쩍 떠넘기기도 한다. 게다가 종종 행동에 규제까지. 마이스터대학에 재학 중인 양씨는 6차산업 교육이나 단체활동에 필요한 교육에도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하니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시어머니가 반찬가게를 10년 넘게 하셨어요. 그동안 자연스럽게 반찬을 가져다 먹었죠. 합가 이후 제가 음식 만들 때는 엄청나게 긴장돼요. 시어머니가 요리를 너무 잘하시니까. 전 설거지 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79세 시어머니는 아직도 손주들을 위해 직접 국을 끓이고 요리도 해주신다고. 여든이 돼서도 가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가사수당 도입을 전적으로 환영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중장년층을 우선 대상으로 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 그래도 시어머니와 남편이 가사에 많은 도움을 주죠. 허드렛일 같아도 꼭 필요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요. 꼭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값진 일이란 걸.”

양일영씨는 가사수당이 도입되면 자존감 상승은 물론, 오롯이 ‘나’를 위한 휴가를 보내 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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