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기울어진 농촌 성평등…여성 이장 현주소는?

우리나라 성불평등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영역 중 하나가 의사결정 분야다. 그중 농촌마을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이장 선출과정을 들여다보면 불편한 현실이 드러난다. 도시와 달리 농촌은 고령인구 증가, 주거 분산, 읍·면 소재지와 주거지 간 먼 거리 등의 이유로 이장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농촌 특유의 남성중심 가부장 문화와 제각각인 선출규정은 여성의 이장 진출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고 있다.

 

가부장 문화가 여전히 강한 농촌마을에서 여성 이장이 늘어나려면 성평등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부장 문화가 여전히 강한 농촌마을에서 여성 이장이 늘어나려면 성평등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적 자치영역으로 보고 마을의 관습적 선거규정에 맡겨
여성 이장 확대사업·여성 이장협의회 등 남성 반대 심해
표준화된 선출규정 제정·남성대상 성평등교육 필요

가부장 문화 여전…여성 이장 활동 평가절하
전남여성가족재단이 2019년 내놓은 ‘전남 시·군 성평등정책 환경분석’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는 여성 이장의 숫자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부분을 통해 성평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로 봤다. 연령·활동기간·지역·주민수 등을 기준으로 선발한 여성 이장 7명에 대한 심층면접 결과,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남성인 마을 유지나 연장자들로부터 그들의 역할이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이장들은 이장 업무를 봉사활동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이유로 ‘가사노동 등 무급노동에 전념해 온 여성 특유의 의식’ ‘업무에 비해 적은 활동비’를 들었다. 활동의 어려운 점으로 ‘여전한 가부장 문화’ ‘여자가 잘하겠냐는 의심’ ‘여성 이장만 지원한다는 비난’ 등을 꼽았다.

실제로 전남의 많은 시·군에서 여성 이장협의회를 설치할 움직임을 보이자 남성 이장들은 여성들이 별도로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반대했다.

여성 이장들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해 실질적으로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경험했다며, 남성 이장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전히 여성 이장을 비하하고 낮게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이장 선거, 민주주의 선거원칙 위배 
민주주의 선거원칙은 성별과 빈부, 학력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한 표씩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원칙들이 마을이장 선거에서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꽤 된다. 사적 자치영역으로 보고 여전히 많은 마을은 그동안 내려온 규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가구 1투표권이다.

부부의 경우, 남성이 세대주인 경우가 많아 여성들의 투표권 행사가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규정도 제각각이다 보니 선출과정에서 송사나 민원 등 잡음도 끊이질 않는다.

이를 개선키 위해 울산 울주군은 마을이장 선거에서 조례와 규칙에 담지 못한 부분과 문제점을 보완해 ‘이장선출 운영 요령’ 표준안을 마련했다. 명문화된 규정이 없는 마을 등에 마을자치규약 표준안도 제공했다. 마을의 갈등과 분쟁을 줄이고 공개적이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장을 선출해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울주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이장은 마을 자체 규약에 따라 선출을 했는데, 일부 주민들이 규약을 불신하는 등 갈등이 빚어졌다”며 “요령과 표준안이 마련되면 주민들이 마을의 실정에 맞게 수정·보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표준화된 선출규정이 필요한 건 이장이 사실상 공적업무를 수행하고, 세금에서 각종 수당을 지급받고 있어 공정성을 기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도농복합지역의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도시는 아파트 동대표 선거에서 기표소 등 물품지원과 함께 선거규정 문의가 꽤 있는 편”이라면서 “상대적으로 농촌지역은 그런 지원이나 문의가 거의 없고, 주민들이 선거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장 선거는 사적 자치의 영역으로 보고 마을에서 관행적으로 내려온 규칙을 적용하다 보니 1가구 1투표권처럼 선거원칙에 위배되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장기적으로 표준화된 선거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남 해남군 여성 이장 현황
전남 해남군 여성 이장 현황

자율성 부여가 여성 투표권 배제시켜
이장 선출은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81조(이장 및 통장의 임명)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실효성은 떨어진다. 각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지만 여성의 진출을 막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전남 해남군의 사례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해남군은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의 이장 임명절차는 ‘주민총회에서 선출된 사람 중 개발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읍·면장이 임명하고, 주민총회의 선거권, 정족수와 선거방법 등 운영방식은 마을 자치규약에 따른다’고 적시했다. 문제의 선거권은 세대별로 한 개의 의결권을 주며, 세대주 또는 세대원 중 1인의 과반수 참석과 참석세대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다.

1가구 1투표권 등의 규정은 남성 이장들의 독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해남군의 마을 이장 현황을 보면 2021년 남성이 94.7%인 반면, 여성은 5.2%에 불과했다. 3~4%에 머무르던 이전과 비교하면 늘어난 것이지만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전남도는 여성 이장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보고, 여성 이장 확대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지원사업을 통해 각종 교육과 별도의 예산배정을 약속했지만 남성 이장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이 사업은 이어지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

 

■미니인터뷰 - 오미란 前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장

       “여성 대표성 높아지면 여성 유입도 늘 것”

-농촌의 여성 대표성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마을사업에 여성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마을개발사업 운영위원으로 여성참여 30%를 권유하고 있지만 실제 여성들의 참여는 저조하다. ‘우리가 뭐 아느냐. 그냥 결정된 대로 따른다’는 소극적인 태도가 공통적이었다. 여성위원 30%를 하려고 해도 여성들이 참여를 회피하기도 한다. 소극적 태도는 여성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진출을 가로막는 제도 탓이 크다.

-여성 이장 비율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이장을 뽑을 때 여전히 많은 농촌의 마을은 1가구 1투표권으로 인해 여성의 의사결정 참여가 거의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다. 마을관련 사업의 추진위원장은 남성 비중은 100%에 육박한다. 추진위원장이 마을의 이장을 지명 또는 임명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여성보다는 남성이 이장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이유로 전국 여성 이장은 여전히 10% 수준에 불과하다. 꽤 오랫동안 변화가 없다. 변화의 계기가 있지 않으면 지금의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여성 이장이 필요한 이유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 농업·농촌의 근본해법으로 후계인력을 꼽는다. 여기서 핵심은 여성인구의 유입을 늘리는 것이다. 여성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제목소리를 내는 농촌마을에 여성의 진입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이장진출을 막는 선거규정을 비롯한 제도적 허점은 시급히 정비돼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여건이 만들어질 때 농촌의 마을은 미래에도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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