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이장 애로 : 강원 양양 현남면 송경례 입암리 이장

강원 양양군 현남면 입암리 송경례 이장은 12년째 마을 주민을 위해 진정성 있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입암리 송경례 이장은 12년째 마을 주민을 위해 진정성 있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진정성 있는 실천만이 오랜 이장직의 버팀목

마을 공동목욕탕·체력단련실 등 노인복지에 초점

“저 여자가 뭐하던 사람인 줄 알고 동네일을 맡기나?”

12년 전 마을 이장 선거에 나선 송경례(61) 이장이 들은 한마디.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볼멘소리만 늘어놨다. 그때 그 말은 아직도 가슴속 깊은 상처로 자리하고 있다고. 그래서 말수를 줄이게 됐다.

귀촌 뒤 도시와 다른 생활에 우울증
23년 전 건축업을 하는 남편과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입암리로 귀촌한 송 이장. 초등학교 2학년, 1학년 형제를 데리고 가족 모두가 내려왔지만 시골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 연희동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이곳이 갑갑하기만 했다. 피자 배달도 안되는, 여러 학년이 함께 받는 수업도,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골살이는 아이들에게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들만 다시 서울 외갓집으로 돌려보내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

“농촌에선 둘이 살면 차도 두 대가 필요해요. 버스가 하루에 5번 들어오는데 은행 한 번 가려면 반나절이 걸리니…. 여가생활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적응되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힘들어요.”

연고 없는 농촌생활에 곧 우울증이 찾아왔다. 서울로 보낸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을 주민들과 융화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도시에서는 주변인들에게 관심이 없지만 농촌에서는 “옆집에 누가 왔고, 직업이 무엇이며, 뭘 했길래 돈을 벌었고, 오늘은 무엇을 한다더라”와 같은 사생활까지도 궁금해 하는 마을 주민들의 관심이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송 이장은 말한다.

입암리 마을은 106가구 174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60%를 차지한다. 이래저래 구설수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송 이장이 선택한 길은 ‘말수’를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신념이 12년간 이장활동을 이어온 근간이 됐다.

강원도의원 제안에 이장직 관심
마을 일에 크게 관심 없던 송 이장은 시끄러운 마을 분위기가 은근 신경이 쓰였다. 전 이장들의 탄핵과 공금횡령 등으로 소송과 재판이 이어지며 줄줄이 사퇴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들로 마을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입암리 이장 출신 임용식 강원도의회 의원이 제안했다. 자신이 마을에서 손을 놓으니 마을이 시끄러워졌다면서, 여성이 이장을 맡으면 조용하게 이끌고 가지 않겠냐는 것.

고민 끝에 송 이장은 임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0년 마을 연말총회에서 이장이 됐다. 처음 단독후보라서 추대될 줄 알았지만, 다른 후보가 나서면서 결국 투표를 통해 이장에 당선됐다.

그는 2년마다 연임이 가능한 입암리 마을에서 12년째 이장직을 이어오고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믿고 신뢰하는 주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던 터다.

처음 이장직을 맡고 86만원의 운영자금을 건네받았다. 임기 첫해인 2011년 장수마을사업으로 선정돼 3천만원을 지원받아 표고버섯 하우스를 지었다. 마을 수익사업으로 기대가 컸지만, 고령 인구가 많은 마을 특성상 참여 주민이 적었다. 임차료만 1년에 200만원, 계약기간이었던 5년간 모두 1천만원의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이장 통장에 사심 있는 돈이 1원이라도 있으면 안 돼요. 바른 마음가짐으로만 간다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워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온갖 비방에 마음은 상처를 받지만 모두가 항상 이장을 지지하길 바랄 수는 없으니 이해해야죠.”

“우선순위는 주민 위한 일”
이장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간에 인근 산림조합 사방사업에 임도작업 감시원 일을 하고 있다. 대개 깊은 산 속에서 근무하다 보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마을 인근으로 내려와 부재중 연락을 확인한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건은 조퇴를, 업무 진행 상황에 따라 결근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일당제로 일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입암리에서 현남면행정복지센터까지 7㎞.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반나절이다. 송 이장 퇴근길에 마을 어른들의 마트, 은행 관련 심부름을 도맡는 까닭이다. 이장 월급 30만원은 주유비로 끝난다.

송 이장은 고령의 어른들을 위해 노인복지로 방향을 설정하고 서서히 마을을 변화시켰다. 2013년 상수도보호구역 내에 있는 연 5천만원 상수도 사업비 2년치를 미리 받아 1억원을 들여 마을회관에 태양광, 태양열 설비를 설치했다.

입암리는 양양군 유일하게 마을 공동목욕탕 시설을 갖춘 마을이다.
입암리는 양양군 유일하게 마을 공동목욕탕 시설을 갖춘 마을이다.

“읍내 목욕탕에 한 번 가는 게 쉽지 않았는데, 너무 좋아하시죠. 인근 마을 어른들이 부러워합니다. 관련 사업에 사용하지 못하면 다시 반납해야 해서 지원금을 많이 받아도 머리가 아파요.”

입암리는 양양군 최초로 33㎡(10평) 규모의 공동목욕탕 시설을 갖춘 마을이 됐고,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해 이용하고 있다.

또 남편이 건축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구를 갈거나 차단기 고장, 심지어 막힌 변기까지 뚫어주는 봉사를 한다.

“이 마을 대다수가 위성안테나로 TV를 시청하고 있어요. 그런데 채널 변경을 잘못하면 TV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죠. 일주일에 2번 정도 꼭 어른들에게 전화가 와요. 민원처리 단골이죠.”

게다가 마을 어르신의 농업직불금이나 고령 농업인 농작업비 등 서류도 대리 신청할 정도로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현남면에서 유일하게 공문을 이메일로 받는 이장으로서 신청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다. 그는 빠른 처리를 위해 어른들의 기본적인 개인정보를 메모해 둘 정도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늘 고민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어른들이 믿어준다는 작은 보람 하나로 버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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