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치유농업, ‘반짝 특수’에 그치지 말아야...
(치유농업 현장을 가다 : 1004치유농장)

강원 춘천 최미순 1004치유농장 대표는 “작물이 경관을 이루고 꽃과 잡초, 석양, 주변의 논과 밭 등 모든 것이 귀한 환경자원”이라며 “휴식과 치유가 있 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 최미순 1004치유농장 대표는 “작물이 경관을 이루고 꽃과 잡초, 석양, 주변의 논과 밭 등 모든 것이 귀한 환경자원”이라며 “휴식과 치유가 있 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과 관계에 지친이에게 쉼·추억 제공

농작물 재배·원예치료·동물치유 참여자 큰 인기

스트레스 측정기 통해 치유 효과 현장서 확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1004번지. 그곳에 번지수와 똑같은 이름의 특별한 농장이 있다. 바로 최미순(생활개선춘천시연합회원)·임상호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1004치유농장’이다. 이곳 6611㎡(2000평) 규모의 8동 하우스와 텃밭에선 식용 허브를 비롯한 쌈채소, 옥수수, 감자, 꽃, 대추, 복숭아, 토끼, 닭, 염소 등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고 있다.

발달 장애인들의 쉼터가 되고자 농장 꾸려
“10년 전이었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사회경험을 할 수 있는 주간보호소가 부족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몇몇 부모와 아이들의 쉼과 활동 공간을 만들고자 천사농장을 운영하게 됐어요.”

천사농장은 2007년부터 장애인 시설이나 경로당을 찾아 활동했던 원예치료 봉사가 계기가 됐다. 그러다 2013년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한 치유농업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전문 과정을 거친 두 대표는 자연을 벗 삼아 꽃, 허브, 농작물 등을 가꾸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인간관계에서 받게 되는 상처가 사람들이 가장 힘들다고 해요. 관계에 지친, 혹은 상처받은 마음을 살펴주려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고향에 온 듯, 부모님 품과 같은 자연 안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어 가길 바라지요.”

천사농장 프로그램의 핵심은 ‘관계’다. 최 대표는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어떤 체험과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농장의 일년살이에 직접 참여해 보고 자연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산책하며 수확한 농산물로 즉석에서 요리해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 했다.
산책하며 수확한 농산물로 즉석에서 요리해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 했다.

꽃과 잡초, 석양까지 환경자원 이용
작물이 경관을 이루고 꽃과 잡초가 모두 프로그램의 자원으로 활용됐다. 또 농장 주변의 논이나 밭, 석양까지도 귀한 환경자원이 됐다.

“강원도는 유채재배가 어려워 토종 삼동추를 심어 나물로도 먹고 초록경관도 함께 연출합니다. 혹시 당근 꽃 보셨어요? 향기가 너무 좋아요. 이렇게 산책길에서 하나씩 수확한 재료가 맛있는 요리로, 몸에 좋은 보양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주변에 흔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자원들을 많이 활용했다. 향기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고 작품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 참가자들은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각각 다른 하우스에 사계절의 향, 꽃 촉감 등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식물을 심고 관리했다.

계절별 치유 자원을 이용한 텃밭활동은 모종심기부터 생장과정, 수확물 연계활동, 잡초를 이용한 누름꽃만들기, 자연경관을 용한 산책 등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서대로 다가간다는 것이 천사농장의 운영방침이다.

천사농장은 농촌진흥청의 치유농장 지원사업에 선정돼 스트레스 측정기(유비오맥파 4대, 옴니핏 1대)를 5대 보유하고 있다. 심박동의 미세한 변화를 파형으로 분석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인체의 자율신경반응을 확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장비다. 스트레스 측정을 통해 프로그램 활동 전과 후, 자연과 농업이 주는 치유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한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대상 치유 프로그램 참가자 36명의 스트레스 지수는 평균 3.8% 감소했고, 만족도는 3점 만점에 2.8점이었다.

참여자들은 농장을 산책하다가 오이넝쿨에 달린 오이를 따서 먹는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참여자들은 농장을 산책하다가 오이넝쿨에 달린 오이를 따서 먹는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청년농 유입과 바우처 지원 필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치유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더 커진 듯합니다. 오늘날 치유농업의 선진국이라는 네덜란드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우리나라도 국가주도 지원사업으로 치유농업활성화에 적극적이죠. 하지만 농업인의 개인적 소신과 철학을 갖고 여건에 맞는 치유농장을 계획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1년 치유농업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적으로 교육과정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치유농장으로 선정된 농가 수도 제법 늘었다. 최 대표는 “국가 지원이 많아진 요즘, 그 안에 소속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고립될지 모를 두려움에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며 우후죽순 늘어나는 농장과 마을, 기관 등을 우려했다.

최 대표는 “치유농장의 농지에서 활동이 이뤄지는 만큼 규제를 낮추고 현실적인 운영을 위한 역량강화 교육이 꾸준히 제공돼야 한다”며 “젊은 청년농과 협업해서 사회 트렌드에 맞는 수요자 맞춤 프로그램을 발굴한다면 지속가능한 치유농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외국의 치유농업 보험 적용 사례를 들며 “병원에서 약을 처방하듯 참여자들이 부담 없이 치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바우처 지원 등 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을 토끼만 안다가 가는 아이, 체한 것 같다며 쪼그려 앉아 황금들녘만 보다 가는 아이 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천사농장을 다녀간 후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이 추억이 되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휴식과 그리움이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최 대표는 어린시절부터 농업을 통해 자연을 가깝게 느끼도록 태교부터 적용하는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에게 삶의 활력과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한다. 또 무한한 치유농업의 가능성을 청년들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6611㎡(2000평) 규모 '1004치유농장'의 8동 하우스와 텃밭에선 식용 허브를 비롯한 쌈채소, 옥수수, 감자, 꽃, 대추, 복숭아, 토끼, 닭, 염소 등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고 있다.
6611㎡(2000평) 규모 '1004치유농장'의 8동 하우스와 텃밭에선 식용 허브를 비롯한 쌈채소, 옥수수, 감자, 꽃, 대추, 복숭아, 토끼, 닭, 염소 등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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