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가정의 달, 농촌가정의 빛과 그림자
■ 우린 행복합니다~ : 경기 양주

김진숙 ‘아름담’ 대표(사진 오른쪽)는 “농업의 뿌리를 후손이 이어받아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왼쪽부터 남편 이인학씨, 아들 이정민씨, 시아버지 이영기씨)
김진숙 ‘아름담’ 대표(사진 오른쪽)는 “농업의 뿌리를 후손이 이어받아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왼쪽부터 남편 이인학씨, 아들 이정민씨, 시아버지 이영기씨)

10년 전 여주·도라지로 3대가 농장경영에 참여

힘들때 함께한 가족 … “책임감이 곧 원동력”

봄 햇살이 내리쬐는 4월에 끝자락,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로에서는 여주와 도라지로 소비자의 건강함을 지키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중심에 ‘아름담’ 김진숙 대표와 그의 가족이 있다. ‘자연을 아름담아 드립니다’라는 뜻의 ‘아름담’은 ‘우리 농산물을 순수하게 담아내다’란 농장주의 철학이 담겨 있다. 유기농 재배를 원칙으로 3대가 함께 자연 그대로의 좋은 원료로 마음을 담아 소비자에게 전한다는 신념이 눈에 띈다.

시어머니 작고한 이듬해 합가 결심
시아버지와 남편, 슬하에 남매와 함께 3대가 한집에 살고 있는 김 대표의 가족은 인근 지역에서 유일한 3대 가족이다.

서울과 자동차로 20~30분 거리지만 동네에서는 홀로 지내는 어르신이 다반사라고. 그는 1998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에 다니던 서울의 한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양주로 귀촌했다. 그때 나이 28세.

“양주 오기 전 20~30대에는 서울의 네온사인을 보면 가슴이 뻥 뚫렸었는데 마흔 넘으니 이곳 자연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데 딱 20년 걸렸어요. 하하하.”

한창 네온사인에 가슴 뛰던 청춘을 접어두고 고즈넉한 농촌생활이 반가웠을 리가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에 참 어른스러웠던 결정이었다고.

그러나 부모를 부양하는 세대는 지금 50~60대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크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졸졸 흐르는 개울까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게 큰 행복이란다.

3대가 함께 자연 그대로의 좋은 원료로 마음을 담아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다.(사진은 수제차 선물센트)
3대가 함께 자연 그대로의 좋은 원료로 마음을 담아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다.(사진은 수제차 선물셋트)

소비자의 건강을 함께 고민한 ‘아름담’
김 대표는 귀촌하면서 관행농이었던 시아버지의 1만4876㎡(4500평)의 벼와 오이농사를 자연스럽게 돕기 시작했다.

인건비에 부자재 비용을 제하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 맞닥뜨린 그는 큰 욕심 없이 벼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키워온 시아버지의 건강과 여유로운 노후를 위해 날마다 고민했다. 그래서 건강에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주와 도라지 같은 특용작물 재배에 도전했다,

“며느라~ 네가 어찌 여주를 키울 수 있겠나~ 아서라 아서~”

시아버지의 우려에도 논 절반을 뚝 떼어 여주를 심었다. 그래도 여주를 재배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시아버지였다. 가족의 걱정과는 달리 첫 수확을 하던 그해는 정말 대박이었다. 공교롭게 언론을 통해 여주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소비자는 건강에 관심이 높아졌고, 그로 인해 2~3년 만에 안정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시아버지가 전수해준 농사기술은 성공적인 여주 재배에 큰 밑거름이 됐다. 그때부터 서서히 벼농사에서 여주와 도라지로 작물을 바꿔 심었다. 25년째 양봉업을 하는 시아버지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사업 파트너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상기후로 현저하게 줄어든 꿀벌은 시아버지의 근심 거리가 되고 있다고.

1만4876㎡(4500평) 규모 농지에 여주넝쿨이 탐스럽게 뻗어있다.
1만4876㎡(4500평) 규모 농지에 여주넝쿨이 탐스럽게 뻗어있다.

책임감, 가족이라서 가능한 삶의 원동력
3대가 운영하는 가족농이라도 작은 부분까지 섣불리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총괄 진두지휘 아래 실질적인 농장과 7명의 직원 관리는 남편이, 온·오프라인 판매와 홍보마케팅은 아들과 김 대표의 몫이었다.

종종 지인들이 김 대표에게 오랫동안 가족농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을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늘 ‘기다림’이었다고 답을 내놓는다. 가족 모두가 각자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믿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농업으로 성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1차 생산물부터 6차 융복합산업 인증을 받기까지 모든 판로를 개척해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기에도 가족과 함께했기에 극복할 수 있었고 현재 연 10억원 매출을 넘어서 해외시장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제가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자식에게 남겨줄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뿌리와 날개’라고 하더라고요. 아버님이 우리한테 뿌리와 날개를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저도 아들한테 그대로 물려줘야죠.”

한편으론 시아버지가 일궈온 오랜 농업의 뿌리를 후손이 이어받아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책임감은 가족농을 이어가는 데 큰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김 대표는 아버님이 채취한 꿀로 도라지와 곁들인 도라지꿀차 가공을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다. 또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홍도라지 가공기술을 이전받아 올가을쯤에 시제품 출시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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