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안전하고 건강한 농작업 위해선

농작업 재해예방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후대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작업 재해예방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후대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전재해 보험 위주 사후대책에만 초점

기껏 뽑은 ‘농작업안전보건기사’ 활용 못해

예방사업 농진청에 위임…농식품부 존재감 미미

중대재해처벌법에 농업인도 적극 대응해야

산업재해보상보험 통계를 보면 2018년 전체 산업재해자는 10만2305명, 농업분야는 643명으로 재해율은 각각 0.54%, 0.78%였다. 2019년 642명, 2020년 639명, 2021년 668명, 2022년 682명이었고 재해율은 0.81% 이상으로 전체 산업 0.6%대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사망만인율(1만명당 산재사망자 수)도 전체 산업이 1.10이지만 농업은 1.43명으로 발생빈도와 위험도가 높지만 안전재해 예방 인력과 지원은 다른 산업보다 뒤처져 있다.

사전예방보다 사후대책에만 급급
농작업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2022년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이하 안전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안전보험법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안전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연구·기술 개발, 교육·홍보와 전문인력 양성 등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의무규정이 아니다 보니 시행 2년째를 맞았음에도 농업인 사고율은 오히려 높아졌고 재해사망률도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 농작업으로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등을 보상하는 농업인안전보험 확대와 함께 예방이 발맞춰 가야 하지만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바로 안전에 취약한 소규모 농작업장 안전관리를 지원하고 상담·개선해줄 ‘농작업안전관리관’(농작업안전관리자로 변경 예정)을 전국 농업기술원과 농업기술센터에 1명씩 배치하기 위한 예산 47억2500만원이 묵살된 것.

노상철 단국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사고가 발생해 보험으로 보상을 아무리 잘해도 농업인이 다치지 않고 농업활동을 지속하는 것보다 좋을 수 없다”면서 “비용 대비 예방사업 효과는 1.6배로 추산된다. 국가의 대응은 사후대책보다 사전예방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육성해놓고 “갈 곳 없다”
사후대책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농작업안전관리관으로 배치하려던 전문인력 ‘농작업안전보건기사’를 활용하지 못하게 됐다.

농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재해와 농업인 건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위험요인을 제거·관리하고 교육하는 농작업안전보건기사 국가자격증이 2018년 만들어졌다. 농작업과 안전보건교육·농작업 안전관리·농작업 보건관리·농작업 안전생활 4개 분야의 이론과 실기를 거쳐 지난해까지 964명이 배출됐다.

이들은 지역단위 안전재해 예방관리체계의 핵심 전문가로 기대를 모았지만 농작업안전관리관 국비 지원이 무산되며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갈 곳이 없게 됐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 서삼석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은 832명이지만 농촌진흥청은 공무원 1명당 담당하는 근로자가 43만3200명”이라며 “최소한 63명이 필요하지만 고용노동부와 업무 협의도 하지 않았으면서 예산 핑계만 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적절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야 하는데 농작업안전보건기사라는 자격증이 있다”며 “그분들을 활용해 현장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신규로 마련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농작업안전보건기사를 농작업안전관리관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되면서 무용지물 자격증으로 전락할 처지다.

농업인 안전 365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인 안전 365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농업법인 7500개
농업은 그동안 작업장 안전에 있어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지원 역시 부족했다. 농작업 안전을 책임지는 소관부처가 고용노동부인지 농림축산식품부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안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점도 우려스럽다. 농업인 대다수가 관련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업종을 불문하고 5인 이상의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는 농업법인과 농업인도 해당된다. ‘상시 근로자’는 정규직은 물론이고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해당되며, 축산업과 시설하우스 농가 등에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외국인도 포함된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온 5인 이상 농업법인은 약 7500개나 된다”며 “안전보건공단과 농진청, 농업기술센터가 협력해 대응력이 떨어지는 농업법인을 대상으로 작업환경 측정과 환경개선, 안전보건 기술 지원사업 등을 연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재해 예방사업 업무를 농진청에 위임만 해놓고, 전담인력 1명 없는 농식품부가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것도 문제다. 개정된 안전보험법도 사업을 수행할 중앙정부와 지자체 부서의 지정과 운영, 업무분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류 이사장은 “농식품부를 컨트롤타워로 구체적으로 명시해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재해예방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인터뷰 -
김경란 농촌진흥청 농업인안전팀장

안전재해 예방에 농업인이 주체 돼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매뉴얼 마련
‘농업인안전재해예방센터’ 설치 시급

농촌진흥청은 농작업 안전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기술보급·교육홍보·전문인력 양성 등의 사업을 농식품부로부터 위임받았다. 김경란 농촌진흥청 농업인안전팀장은 농작업 사망사고율 30% 경감을 위한 예방사업으로 농업인 안전 365 캠페인, 자가점검 체크리스트 등 안전가이드 9종 발간, 보험료 할인연계 교육과정 개발, 농업인안전리더 위촉 등을 추진했다.

올해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이상 농작업장이 대상이 되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농업인을 위해 대응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는 김 팀장은 농업인이 안전재해 예방에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작업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개선할 점은.
농업은 전통적 도구부터 최신의 여러 농기계와 설비,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농업인 누구나 크고 작은 업무상 재해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는 각종 통계와 자료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그렇지만 농업인 대다수는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안전보험법이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보험법은 예방보다 보험에만 치우쳐 있다. 기존 법률을 일일이 개정하는 것보다 안전보험법에서 예방 규정을 별도로 분리해 제정하는 것이 농업인 안전사고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전체 사업장 중 50인 미만이 98%를 차지하는데 산재의 77%가 이곳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이 소규모 사업장인 농업은 산재발생 위험이 높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많은 농업인이 모르고 있어 걱정이다. 그래서 대응 매뉴얼을 작년부터 준비해 곧 내놓을 계획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고 경영책임자에 징역형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이 특징으로, 농업인은 경각심을 갖고 관련정보를 꼼꼼하게 챙겨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현재 농업인안전팀 인력 5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별도 조직 신설과 관련 예산확보가 시급하다.

-농작업안전관리관 국비 반영이 무산됐다.
모든 농업기술센터에 농작업안전관리관 배치가 실현되지 못해 아쉽다. 장기적으로 시·군에 2~3명을 배치하도록 국비 확보에 계속 힘쓸 예정이다. 농작업안전관리관을 계획대로 배치하면 농업인안전보험금 지급을 2021년 5만3천여명에서 2028년 4만7천여명으로 약 1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는 신규로 안전관리 실천역량 강화사업 추진에 도농업기술원과 농업기술센터 139곳 대상으로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8억3400만원이 배정됐다. 엄격해진 기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농업인의 역량강화에 도움이 되는 안전교육이 이뤄진다.

-안전재해 예방을 위한 농진청의 역할은.
지난해 폭염사망자 중 50%가 농업인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는 물론,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안전재해 예방 조직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농진청이 전담기관으로서 연구-지도-교육 통합 원스톱 서비스 조직으로 확대돼야 한다.

농업인안전팀을 12명의 농업인안전보건과로 정규직제화하고, 농업작업 안전재해 예방 기본계획에 포함됐지만 안전보험법 개정안에 빠진 ‘농업인안전재해예방센터’도 서둘러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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