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공동체 활성화(노인돌봄) - 전남 완도 정희금씨·광주광역시 이주하씨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았던 친정엄마 뵈러 한 달에 두 번 청산도를 오가다 보니 차비만 15만원이 들더라고요. 그 돈이 아깝다기보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그게 제일 마음 아프죠.”
7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전남 완도군 청산면 정희금(60·청산면생활개선회장)씨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지 1년 됐다. 하루 5번, 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들어와야 하는 이곳 청산도는 23개 마을에 18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정도 이웃도 함께 돌보며 지역돌봄 앞장
정희금씨 “어르신들의 행복전도사 될 터”
거동불편한 어르신 가정 방문해 미용봉사
다양한 전문자격 갖춰 어르신 돌봐
“구례농협을 명퇴하고 생활한복 장사를 하는데 주변에서 앞으로 10년 후에 요양보호사나 웃음치료사와 같은 실버 관련 직업이 뜰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5년 전에 요양보호사, 3년 전에 미용사 자격증을 땄죠.”
그뿐만이 아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웃음치료사, 여가지도사 등 취득한 자격증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점점 자격증이 늘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요양시설에서 미용봉사를 하는데 ‘자격증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자존심 상해서 바로 미용사 자격증에 도전했죠. 요즘은 봉사도 자격증 있는 사람을 원해요. 관련 자격증을 하나하나 따다 보니 점점 많아졌네요.”
이렇게 취득한 자격증으로 19개 마을 경로당을 순회하며 마을 어르신들의 재간둥이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직접 집으로 방문해 미용 봉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용 장비도 완벽하게 갖춰놨다.
“내 차는 만물상이에요. 생전에 이발소를 운영했던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미용기구를 비롯해 손가락 난타, 마라카스 등 트렁크에 한가득 싣고 마을 곳곳의 경로당을 다니며 어르신들의 행복전도사가 되고 있죠. 여긴 섬이다 보니 외롭고 우울해하는 어르신들이 꽤 많습니다.”
정씨는 일주일에 한 번 지역 어르신의 목욕을 돕고 있다. 청산면행정복지센터 복지팀과 목욕 봉사팀을 꾸려 거동 불편한 어르신을 차량으로 관내 복지관목욕탕으로 모셔와 그들의 세신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르신들 피부가 굉장히 약해요. 손만 대도 금방 멍이 들거든요. 아이 다루듯 살살 문질러드려야 하죠. 모시고 올때 힘들었지만 탕에 들어가신 어르신 얼굴을 보면 세상 다 가진듯한 행복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럴 때 옆에서 보는 저도 너무 뿌듯합니다.”
현재 청산도에서 요양보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어르신은 7~8명.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정씨는 우려했다. 변변한 병원도 약국도 없이 보건소 하나, 어찌 보면 고립된 지역에서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의 모습은 정씨의 20년 후일 테니 말이다.
“20년 뒤의 내 모습을 미리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들이 덜 힘들고 더 즐겁게, 덜 슬프고, 덜 소외되게 옆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돼 드릴 겁니다.”
이주하씨 “마을 떠나도 돌봄 이어가”
식재료 챙겨 가서 직접 음식 만들어 대접
외지로 떠난 어르신에게도 돌봄 이어가
슬하에 남매를 둔 이주하(66·생활개선광주광역시연합회 송정지회 회원)씨는 부모로서 모범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봉사활동이 지금은 천직이 돼버렸다.
“아이들 어릴 때 광산구자원봉사센터에 내 발로 찾아가 자원봉사를 신청했죠.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곳이 장애인시설이었어요. 그 세월이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그때부터 시작된 지역봉사는 생활개선회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 빛을 발했다. 광주광역시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한식·양식조리 전문가 과정은 봉사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동네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대부분 자식은 타지로 나가고 손주들 용돈이라도 벌겠다며 허리도 못 편 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우리 집에 있는 식재료를 챙겨가서 밑반찬 몇 가지 해놓고 오죠.”
빨래와 청소는 안 할 수가 없는 상황. 빨리 끝내고 귀가해야 한다. 이씨는 치매와 중풍을 앓고 있는 91세 친정어머니를 지금 살고 있는 소촌동 집에서 5년째 돌보고 있다. 20년 전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가족요양 1시간을 인정받아 본인 부담금 9%를 제외한 월 32만원 정도를 정부로부터 요양급여로 받고 있다.
24시간 누워만 있는 어머니의 대소변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집을 비울 수가 없다고. 가족여행은 계획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했다.
몸이 힘든 건 견딜 수 있는데, 간혹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가정에 봉사하게 되면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그의 가족에게서 물건이 없어졌다는 오해를 받거나 할아버지로부터 신체적 접촉으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나랑 팔씨름 해봐요. 내가 힘이 좀 세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고 돌이켰다.
마을에서 돌보던 어르신이 외지로 나가도 그 연은 계속 이어갔다.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 가정은 남편과 함께 음식이나 필요한 물건을 손수 배달하며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지역 어르신들을 돕고 싶어요. 내 것을 기꺼이 나누면서 서로 보듬고 다독거리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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