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공동체 활성화(강원도 영월 청년마을 김지현 ‘밭멍’ 대표)

인구 1천명 영월 상동읍에 둥지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터를
좋은 한숨을 편히 내쉬는 밭
멍 때릴 정도로 아름다운 밭으로 가꿔
도시청년 ‘북적’ 원주민과 ‘화합’

김지현 ‘밭멍’ 대표(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는 나뭇잎밭 9910㎡(3천평)에서 70여 가지 동반작물을 재배하며 청년들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전국 읍 단위 최소인구 ‘상동읍’
청년마을 ‘밭멍’이 위치한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은 지방소멸의 최전선이다. 주민 수는 1007명, 전국 읍단위 중 최소인구다. 영월군에는 영월읍과 상동읍 등 2개 읍이 있다. 영월군 전체인구 3만명 중 2만명이 영월읍에 산다. 인구수로 보면 절대 읍이라고 불릴 것 같지 않은 상동읍이 면에서 읍으로 승격한 건 성황을 이뤘던 과거 ‘광산’ 때문이었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텅스텐 광산인 ‘상동광산’이 상동읍에 있어서 인구가 늘었다. 1960년대 전 세계 텅스텐 생산량의 15%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국내 총수출의 70% 이상을 담당한 곳이라 최고 호황기였던 1971년, 상동읍 인구는 2만2600여명에 달했다. 한때 동네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부유했다고. 1993년 중국산에 밀려 폐광된 뒤 상동읍은 빠르게 쇠락했다.

김지현 ‘밭멍’ 대표는 이곳 상동읍에서 나고 자랐다. 도시 호텔에서 셰프로 일하던 김 대표는 고향에서 절임배추공장을 운영하다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신 부친의 꿈터를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에 최소인구 상동읍에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를 실천하고 있다.

청년들 생활인구·농촌정착 이끌어
‘밭멍’은 2022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첫해 사업비 2억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사업성과 평가를 통해 향후 2년간 연 2억원씩 추가 지원받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배추밭을 나뭇잎 모양의 정원식 농장으로 바꾸는 작업은 ‘밭멍’의 첫 프로젝트였어요. 나뭇잎의 모양을 따라 구획을 나눠 먹거리 위주의 토마토와 바질, 배추와 메리골드 등 70여 가지 동반작물을 고루 심었습니다.”

나뭇잎밭은 9910㎡(3천평) 규모. 김지현 대표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고민하며 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하고, 영국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 사례를 연구했다. 퍼머컬처는 영구적이라는 뜻의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문화라는 개념이다. 땅을 갈지 않고, 화학비료가 아닌 퇴비로 땅심을 기르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작물을 재배해 농약을 쓰지 않는 농법을 말한다.

“퍼머컬처란 말이 생소하죠? 타 지역 농업인들이 해 온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시도한 적 없는 해외사례를 참고해 겹치지 않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싶었어요.”

밭 주변에 있던 크고 작은 축사는 ‘밭멍’을 찾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자 자연과 교감하며 쉴 수 있는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밭멍’은 ‘멍 때릴 정도로 아름다워서 자꾸 오고 싶어지는 밭, 퍼머컬처를 알고 싶다면 한 번 말고 두 번 와야 하는 밭, 좋은 한숨을 편하게 내쉴 수 있는 밭, 일회용 체험이 아닌 경험할 수 있는 밭, 푸근한 고향 같은 밭, 그냥 모든 것이 좋은 그런 밭’을 지향한다.

2022년부터 아버지의 땅을 화학비료 한 톨 없이 가꿔온 김지현 대표는 이제 도시청년들을 생활인구로 유입해 농촌 정착에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길잡이로 나섰다.

지난해 청년마을만들기사업으로 모인 청년들은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닭장을 지었다. 닭장은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고 과수의 자연순환 농법으로 재배를 가능케 해준다.
지난해 청년마을만들기사업으로 모인 청년들은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닭장을 지었다. 닭장은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고 과수의 자연순환 농법으로 재배를 가능케 해준다.

‘밭멍’ 프로젝트에 청년들 호응
‘밭멍’은 본격적으로 7월부터 11월까지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사업의 하나로 청년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김 대표는 청년들에게 ‘잘먹고 잘살기 위한 자급자족라이프실험소’라는 경험을 제공했다. 자연을 좋아하고 궁금해 하는 청년 33명과 재참여 청년 66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들은 밭멍프렌즈가 돼 마을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느리게느리게 걷기’, 마을정원을 만드는 ‘가드닝프로그램’, 퍼머컬처 디자이너가 되는 72시간 과정의 디자인코스(PDC) 등 체계적인 교육과 농활체험을 통해 농촌살이 노하우를 익혔다.

한 참여자는 “기대를 갖고 영월에 왔는데 퍼머컬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과 예술 공연을 보고, 또 건강한 농산물로 팜파티를 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청년 참여자는 “살아가는 공간과 미래가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며 “텃밭을 가꾸고 캠핑을 해볼 수 있는 체험이 유익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5명의 ‘밭멍’ 팀원들은 프렌즈들과 지속 교류하며 숙식을 제공했다. 이들은 김 대표의 막내 여동생과 밭멍프렌즈였던 이들로, 팀에 합류하며 지역에 정착하게 됐다.

‘밭멍’은 원주민들과 소통에도 나섰다. 상동읍은 김 대표의 고향이지만 적지 않은 수의 청년인구 유입에 다양한 시선이 공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간혹 있었어요. 마을 어르신들은 잠깐 있다가 떠날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집집마다 이사떡을 돌리고 말복에 삼계탕도 전하며 얼굴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장님들과 협업해 마을정원을 만들기도 했죠. 중·고등학생들과 ‘느리게느리게’ 트레킹 행사도 같이 준비했어요.”

마을주민들은 ‘밭멍’ 응원군
이제는 주민들이 ‘밭멍’을 먼저 챙겨주는 따뜻한 이웃이 됐다고 한다.

김재숙 상동읍생활개선회장은 “마을어르신들은 ‘밭멍’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졌지만, 부담이 될까봐 다가가진 않았다”며 “‘밭멍’에 참여한 청년들이 종종 마을에 찾아와서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줘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고 과일도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밭멍’에서 작은 음악회와 영화상영 등을 해줘 주민 몇몇이 참여해 상호 교류하기도 한다”며 “이전에는 없던 일상에 마을에 활기가 돌아 긍정적인 변화 같다”며 청년들을 반겼다.

김지현 대표는 새해에도 상동읍에 활력을 더할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설렘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밭멍프렌즈들과 낡은 닭장을 리모델링하는 데 성공했어요.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을 수 있게 설계했고, 닭들과 과수가 서로 유기적으로 잘 자랄 수 있게 됐죠. 닭장 앞 울타리 안에 심은 과일나무들은 매일 닭들이 산책하며 땅으로 돌려주는 배설물과 수시로 잡아먹는 벌레들 덕분에 농약을 치지 않고도 자랄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밭멍’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나뭇잎밭이 식물도서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먹거리 위주의 동반작물을 키우다보니 미처 소비하지 못하는 잉여작물들이 많았어요. 올해는 퍼머컬처에 특화된 다년생 식물을 재배해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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