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17주년 특집 - 지속가능한 행복 농업·농촌, 여성의 힘으로
여성의 사회참여 활성화(경북 구미 ‘소소리 가온’)

경북 구미 소소리 가온은 그림책과 마술을 통해 친근하면서 재미있는 양성평등 교육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경북 구미 소소리 가온은 그림책과 마술을 통해 친근하면서 재미있는 양성평등 교육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농촌보육정보센터·학교 등에서 쉽게 양성평등 풀어가
행정 주도는 한계…지역밀착형 전문가가 주민과 가교역할
복잡한 행정절차·열악한 지원으로 활동에 고충

지역밀착형 전문가 키운다
경상북도의 성평등 수준은 여성가족부에서 지역성평등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줄곧 전국 광역지자체 중 하위권에 맴돌았다. 성평등 수준을 높이기 위해 양성평등 인식 개선과 문화확산이 중요하지만 경북지역은 농촌, 도시, 도농복합 등 지역편차가 커 관(官) 중심의 정책과 행정만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민·관 거버넌스 중요성이 주목받으며, 나온 해법이 지역에 상주하며 자발적으로 양성평등 활동에 나서고 있는 젠더전문가들로 구성된 풀뿌리단체다. 양성평등 목적의 풀뿌리단체는 생활 속 성불평등 문제를 개선해 변화를 이뤄가는 이들로 지역 양성평등 문화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풀뿌리단체와 같은 민간단체 양성평등 활동 지원은 양성평등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 제51조에는 ‘국가와 지자체는 양성평등 참여 확대, 양성평등 문화확산, 양성평등 촉진과 여성 인권보호 및 복지증진 등을 위해 비영리법인 및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하여 그 활동에 필요한 행정적 지원 및 필요한 경비를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의거해 5년마다 수립하는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2019년부터 지역밀착형 양성평등 문화확산을 주도해갈 풀뿌리단체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재미있게 다가가는 양성평등
경북 구미의 소소리 가온은 2020년 발족한 풀뿌리단체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세상의 중심이 되자’는 포부로 출발한 소소리 가온은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양성평등 풀뿌리단체 공모사업을 지난해부터 수행하고 있다.

이경임 소소리 가온 실장은 “회원들은 구미의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하면서 인연을 처음 맺게 됐다”면서 “강사분들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노인과 장애인, 학생 등 다양한 대상자들에게 잘못된 성인식을 고쳐주고, 생각을 바꿔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각자 특기를 지닌 전문가로 구성됐다. 남화영 소소리 가온 대표는 환경부 소속 전문강사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폐기물 배출 최소화 방법을 가르친다. 그는 “농촌지역은 분리배출이 잘 안 되고 소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촌주민을 대상으로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술학원을 운영하는 신애란 강사는 마술을 활용해 차별화된 양성평등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신 강사는 “마술은 단순히 호기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술을 활용하면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로 등록된 박연옥 강사는 그림책을 활용한 양성평등 이야기로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고 있다.

그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양성평등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똑같이 대하는 것’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다”며 “어른들이 오히려 편견에 사로잡혀 잘못된 정보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연옥 강사는 양성평등 교육의 핵심은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다움’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양성이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제공자료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제공자료

소액 지원인데 행정절차는 복잡
소소리 가온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20년 출범 당시는 코로나19가 가장 심했을 무렵이다. 대면교육을 진행할 수 없어 활동자체를 접어야 하나 고민도 컸다.

남화영 대표는 “2년간 거의 모든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회원들과 강사들은 각자도생식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활동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지역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는 자긍심 때문이었다.

신애란 강사는 “농촌의 마을회관에서 양성평등 교육할 때 연령대가 70대 어르신이 대부분인데 그분들이 ‘진작에 이런 교육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 덕분에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돈벌이를 떠나 재능기부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만 더 큰 고충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열악한 지원규모와 복잡한 행정절차다.

소소리 가온은 2년째 공모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연간 지원금액은 200만원이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지만 경북 곳곳을 찾아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사업을 수행하는 것보다 소모임이기 때문에 행정절차를 밟는 것도 큰 숙제다.

남화영 대표는 “공모절차나 지원금 정산이 부담돼 단체들이 지원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소모임인 점을 살펴 행정절차를 간편하게 밟을 수 있도록 좀 유연하게 진행하면 풀뿌리단체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손제희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은 “경북지역이 23개 시·군인데 도비로만 지원되다 보니 예산을 단체마다 충분하게 할애할 수 없다”면서 “최소한 3년 이상 지원하고,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와 연계해 자립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니인터뷰 - 손제희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풀뿌리단체 가치, 도시보다 농촌이 더 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소소리 가온처럼 지역에 풀뿌리처럼 스며들어 자생력을 갖춘 단체 육성 지원에 나서고 있다. 손제희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사진)은 경북지역에서 성평등 이슈가 부각되지 못함에 따라 활동가도 부족하다면서 성인지 역량을 갖춘 활동가를 발굴하고 양성해 실력 있는 단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풀뿌리단체의 가치는.
지역밀착형 전문가로 구성된 풀뿌리단체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소리 가온만 봐도 농촌보육정보센터와 학교,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에서 양성평등을 교육하고 있다. 연령과 지적수준, 남녀 비율 등이 천차만별이지만 오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만족도 높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2년 연속으로 공모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풀뿌리단체는 회원 수가 적고 활동기간이 짧은 편임에도 다양한 주민을 만나 지역의 양성평등 어젠다를 발굴함으로써 행정과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교육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풀뿌리단체의 존재가치는 도시보다 더 크다.

-풀뿌리단체가 지속하려면.
신생 풀뿌리단체가 해산 또는 등록단체의 기로에 서는 게 대략 5년 전후쯤이다. 활동을 지속하려면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하거나 다른 단체와 협력해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 소소리 가온의 강사진들은 농촌의 돌봄기관 등에서 경북 한 바퀴 찾아가는 교육을 통해 활약하고 있다.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거나 준비하는 농촌지자체에서는 자체예산을 마련해 풀뿌리단체 양성을 지원한다면 큰 효과를 기대해도 좋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도 23개 모든 시·군에 양성평등 문화확산에 활약할 풀뿌리단체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중장기적 지원방향은.
풀뿌리단체들이 요구하는 양성평등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다른 단체와의 정기적인 교류기회 제공, 지자체와 협력강화체계 구축, 활동가 역량강화 교육과 연수, 예산 확대 등의 순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풀뿌리단체 육성 4단계 방안을 마련했다.

소소리 가온과 같은 풀뿌리단체 발굴이 1단계로, 이후 활동할 수 있는 기반 구축과 사회적협동조합 등의 단체로 자생력을 갖춘 이후,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모사업 참여,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다른 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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