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17주년 특집 : 지속가능한 행복 농업·농촌, 여성의 힘으로... - 여성이 살기 좋아야 농촌 삶이 행복합니다~(충청남도 우수 여성정책 : 마을단위 여성농업인 프로그램 지원사업)

미국에서 ‘국민화가’로 불렸던 모지스 할머니는 놀랍게도 76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평범한 시골 주부였던 모지스 할머니는 10명의 자녀를 낳고 어린 시절 그림 그리던 기억을 떠올리며 붓을 들었고 숱한 걸작을 남겼다. 충남 예산 옥전리마을 어르신들은 올해 화가로 데뷔했다. 지난해 충남도에서 시범사업으로 ‘마을단위 여성농업인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시니어미술이 선정돼 36회에 걸쳐 교육을 받게 되면서다. 오후 5시, 꽈리고추밭에서 일하던 어르신 16명이 마을회관 책상에 둘러앉았다.

“크레파스는 생전 처음 잡아봐. 추석을 앞두고 송편을 그렸는데 어때? 먹음직스러워 보이남?”
“농사일에 바빠서 손이 미워졌는데, 그림에서나마 내 손가락에 꽃반지, 매니큐어를 해줬어.”

아마추어 작가들의 예술혼이 숨 쉬는 마을, 충남 예산 봉산면 옥전리마을을 찾았다.

오는 27일 추석연휴에 맞춰 열리는 ‘제2회 옥전리 마을주민 그림 전시회’를 앞두고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하나의 주제, 개성 있는 그림 줄줄이 선봬
연2회 전시회 열고 지속가능한 미술교육 추진

자신만의 작품세계 담아
예산군은 충남혁신도시지만, 12개 읍·면 중 봉산면은 변두리에 속한다. 마트가 없고 마을버스 운영횟수는 하루 2번 있어 오지로 꼽힌다. 평균연령 85세, 40가구로 이뤄진 옥전리에서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색연필 등을 처음 접한 어르신들이 많았다.

옥전리에 귀농한 명정숙 작가는 “농촌여성들은 직접 농사짓고 손바느질을 했기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에 그림 그리기가 특화돼 있다”며 “20명 모두 여성 어르신이고 참여율이 높아 출석부가 빽빽한데,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어르신은 집에서 숙제를 해올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어르신들이 대기만성형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번 사업에 선정되면서 사업비 936만원(도비 270만원, 군비 630만원)을 지원받았다. 마을 임원들은 적은 비용으로 오랜 기간 진행할 수 있는 교육에 주안점을 뒀다. ‘그림’과 ‘원예치유’ 프로그램이 선정돼 36회 중 10회차 진행되고 있다. 매번 시기에 맞춘 주제를 선정해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물감을 이용한 데칼코마니, 면봉에 물감을 찍은 점묘화 등 작업방식도 다양하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는 시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많이 그렸어요. 첫사랑 소년은 그려도 남편은 안 그리시더라고요.(웃음) 어렸을 때 살던 고향 풍경, 자신이 재배하는 농작물, 오색이불 덮은 육남매 등 그림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어요.”

명 작가는 어르신 5명에게서 수준급의 재능을 발견했다면서, 어르신 몇몇은 주변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고 뿌듯해했다.

마을회관을 찾은 김형애 봉산면생활개선회장은 “예산군에서 문화프로그램을 지원하지만, 일회성이 많아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마을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기획하는 선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옥전리 어르신들이 미술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는데, 금치리 부녀회장과도 의논해 우리 마을에 도입하고 싶다”고 전하며 어르신들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어르신이 그린 그림에 관심 갖고 소통하고 있는 김형애 봉산면생활개선회장(사진 오른쪽)

고향 찾은 자녀와 그림으로 소통
이번 수업에서 어르신들은 추석음식을 그렸다. 같은 송편이어도 구도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달라 개성이 엿보였다. 12색 크레파스를 이용하면서 밝은 색을 많이 사용해 그림의 빛깔도 고왔다.

“올해 초 ‘옥전리 마을주민 그림 전시회’를 열었는데, 자녀가 어머니의 그림을 구매해가기도 했어요. 어르신들은 직접 면장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죠. 이번 추석에 여는 전시회에서는 커피와 다과를 준비한 무인판매대를 운영할 계획이에요. 그림을 매개로 소통의 공간이 되길 바라요.”

자녀들이 옥전리를 찾아와도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성묘만 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명절마다 전시회를 연다는 목표는 어르신들 열정에 연료가 되고 있다.

이번 사업을 신청한 심홍식 옥전리마을협의회 사무국장은 시니어미술교육의 현실적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미술교육을 연계한 돌봄을 마을에서 운영하고 싶은데, 마을회관 공간이 협소해요. 완성한 작품을 보관할 공간조차 부족합니다. 최소 2년은 미술교육을 지속 추진해 어르신들의 작품집과 갤러리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예요.”

옥전리마을은 지원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수익사업을 연계하는 ‘오전재미만들기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에서는 시니어미술교육 후속으로 가가호호캠핑도 계획하고 있어요. 수익금으로 미술교육이 끊이지 않게 운영해야죠. 이장님이 도예가인데,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등 미술교육을 다양하게 응용해볼 겁니다.”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대기만성’은 충남 예산 옥전리마을 어르신들에게 행복한 노후를 이끌어 갈 힘이 된다.

■ 담당자의 말 – 송요권 충청남도 농업정책과 청년여성농업인팀장
“사업신청 2배 늘어 내년엔 예산 증액 예정”

송요권 충남도 농업정책과 청년여성농업인팀장

-마을단위 여성농업인 프로그램은.
충청남도는 7개 시·군에서 여성농업인센터가 9곳 운영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읍내에 위치하고 있어 오지 마을의 경우 교통수단이나 시간적 제약으로 사업에서 소외돼 왔다.

마을단위 여성농업인프로그램 지원사업은 농촌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찾아가는 현장 중심의 맟춤프로그램을 지원해 여성농업인의 자립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은 운영주체가 마을부녀회나 여성농업인단체, 주민자치회 등 주민주도형 공모사업으로서 마을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받아 심사한다.

-심사에 중요하게 평가하는 부분은.
심사위원회에서는 사업의 필요성, 적절성, 운영주체의 추진역량을 보고, 특히 사업의 독창성, 차별성, 사업의 파급효과, 사업추진 공간의 적절성 등을 종합 평가해 선정한다. 마을 자부담이 있는 경우에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번에 신청이 많았던 시·군은.
공모사업에 6개 시·군, 14개 마을이 신청했다. 부여(4), 홍성(3), 예산(3), 청양(2), 서천·계룡(각 1)이었다. 최종은 6개 시·군 8개 마을을 선정했다. 부여(2), 청양(2), 홍성·예산·서천·계룡(각 1) 등이다.

8개 마을 사업비는 9800만원으로 도비 2940만원, 시·군비 6800만원으로 마을당 평균 1200만원이었다.

올해 사업 예산은 지난해와 동일했지만, 2024년에는 1500만원 상향될 예정이다. 이에 내년에는 15개 시·군에 20여(시·군당 1∼2개)마을을 지원해 더 많은 마을에 혜택이 가도록 노력하겠다.

-농촌 오지마을에 사업을 추진한 성과는.
고령농촌여성은 마을 밖으로 이동이 어려운데, 마을 내에서 여성농업인들이 희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참여율이 높다.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활용교육을 통해 인터넷 판로 개척과 수납정리 전문가 자격증 취득,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등으로 취업 역량을 높였다.

특히 30∼80대 여성농업인들은 관절에 무리 없는 도구를 활용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이 호응이 좋았고, 비폭력 대화를 배워 가족과 이웃 간 따뜻한 소통과 공감능력을 배양하는 등 농촌마을에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주민들이 호평했다.

-사업을 기획·추진하면서 애로사항은.
예산이 한정돼 있어 신청은 많은데 많이 지원하지 못한 게 아쉽다.

사업이 올해 2년차로 지난해보다 신청이 2배 많아 사업계획과 프로그램이 좋은데 탈락하는 부분은 심사 과정에 어려움을 줬다.

도에서 공모와 선정에 시일이 소요되고, 이후 시·군에서 추경 예산 편성에 시일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마을에 사업을 추진이 지연되고 있어 내년부터 적극 개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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