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 - 집중호우 피해현장을 가다(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와 불어난 계곡물로 초토화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 마을 수해현장. 박살난 승용차와 트럭, 농기계, 유실된 농경지 등이 끔찍했던 그날을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와 불어난 계곡물로 초토화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 마을 수해현장. 박살난 승용차와 트럭, 농기계, 유실된 농경지 등이 끔찍했던 그날을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1973년 관측 이후 가장 많은 폭우에 속수무책
탄저병 등 병충해 우려…완전복구 장담 못해

40년 만에 처음 겪는 난리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는 뒤편에 완만한 능선의 부용봉이, 앞으론 석관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마을이다. 지난 15일 새벽녘에 일어난 산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진평2리에서 40년간 살며 과수원 4만여㎡를 일구던 함명자(감천면생활개선회원)씨는 지난 15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2시 무렵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에 잠을 깼다.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깼죠. 산에 있던 돌들이 떠내려온 소리 같은데 좀 이따 집 2층까지 물이 들이닥쳤어요. 1층 집이었으면 떠내려갔을 수도 있어요.”

집 앞 개울물은 삽시간에 3m 높이까지 차올라 간신히 옥상으로 대피했다. 동이 틀 때까지 마음을 졸이다 물이 조금씩 빠지자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해가 뜬 후 마을풍경은 전날과는 완전히 다른, 처참함 그 자체였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개울물이 집채만 한 파도로 돌변해 집은 물론이고 논과 과수원을 휩쓸고, 자동차와 대형농기계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 놨다. 그는 쓰나미가 쓸고 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13일부터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렇게 큰 피해가 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북도 발표에 따르면 6월26일부터 지난 15일 사이에 16일 정도 비가 내렸다. 이 기간에 예천지역 강수량은 627㎜로 예년 대비 3배 이상으로, 1973년 강수량을 측정한 이후 가장 많은 양이었다.

게다가 진평2리는 산사태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데다 취약지로 분류되지 않아 주민들은 미리 대처할 수 없었다. 이상기후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현장이었다.

산사태가 일어난 지 열흘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진평2리는 복구가 한창이다. 사진은 오물투성이인 사과박스를 세척하고 있는 해병대원들 모습
산사태가 일어난 지 열흘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진평2리는 복구가 한창이다. 사진은 오물투성이인 사과박스를 세척하고 있는 해병대원들 모습

언제 복구될지 ‘막막’
취재차 지난 24일 진평2리 마을을 찾았을 때, 100여명에 가까운 해병대원들이 복구활동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식수공급을 위해 수자원공사의 비상급수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전남 구례군의 중장비협회 소속 굴삭기도 지원에 나섰다. 예천에서만 감천면, 은풍면, 효자면 등이 수해를 광범위하게 입어, 얼마나 피해가 컸는지를 짐작케 했다.

마침 함명자씨의 집 앞에는 해병대원이 사과상자를 세척하느라 분주했다. 3천여개의 사과상자를 보관하던 창고가 불어난 개울물에 휩쓸렸고, 그나마 100여개 상자만 건질 수 있었다. 산사태 이후 수도와 전기마저 끊기면서 그야말로 암흑 같은 밤을 며칠이나 보낸 뒤에야 정상화됐다.

정화조가 막히면서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어 주민들은 급히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을 쓰고 있는 처지다. 전국에서 모여든 온정으로 끼니 걱정은 덜었지만 주민들은 언제 복구가 끝날지 가늠도 안 되는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농사도 막막하다. 진평2리는 사람만 살기 좋았던 동네가 아니었다. 고른 일조량과 비옥한 땅 덕분에 벼농사와 사과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았다. 떠내려간 나무 몇 그루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과나무들은 언뜻 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태풍으로 인한 낙과나 쓰러진 벼가 많았던 여타 재해와는 달리 농작물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을까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주민들은 벼는 도열병, 사과는 탄저병이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서 과수원을 일구던 주민 김모씨는 “다른 집들에 비하면 피해가 적은 편에 속하지만 올해 농사는 포기했다”고 전했다.

“농약을 못 쳤어요. 비가 오면 농약이 씻기니까, 그치면 칠 생각이었습니다. 낙과는 싸게라도 팔 수 있지만 (흙탕물에) 잠긴 것들이라 아예 팔지 못할 것 같아요.”

김씨의 입에서는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미 일부 사과에서는 표면에 갈색 반점이 생기며 구멍이 뚫리는 탄저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김씨는 내년에 나올 사과들이라도 예전만큼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새벽녘에 파도처럼 불어난 개울물은 삽시간에 마을을 덮쳐 모든 집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새벽녘에 파도처럼 불어난 개울물은 삽시간에 마을을 덮쳐 모든 집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수도·전기 끊기기도
“집 지을 땐 배산임수는 피해야” 한탄도
처음 겪는 재난에 주민들 집단 트라우마 위기

밝게 인사하던 이웃이었는데…
예천에서만 이번 극한호우로 사망자가 15명 발생했고, 감천면 벌방리 주민 2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27일 기준). 예천지역에서 일어난 이번 피해양상은 이전과는 달랐고 매우 심각했다. 산간지역에 물폭탄이 쏟아지며 계곡과 개울마다 엄청난 급류가 발생했고, 저지대 농경지와 가구들을 덮쳤다. 새벽녘에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들이 피할 시간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진평2리 마을에서 몇 년 전 귀농한 부부가 목숨을 잃었다. 엊그제 인사하던 이웃을 잃은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계속 진행형이다. 함명자씨에게도 큰 충격이다.

“귀농한 부부가 마을 꼭대기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거기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어요. 산사태가 그 집부터 덮쳐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안타깝죠.”

숨진 부부 중 남편 권모씨는 15일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다. 주민들은 일찍 발견된 남편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종된 아내 강모씨가 지난 18일에서야 마을회관 근처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 모습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의 사망유형은 ‘산림 토사유출’로 분류됐다. 이전에 없었던 재난상황인 탓에 경북도는 산림 등 관련 전문가 확인 후 정확한 사망유형을 수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명조 감천면생활개선회장은 “앞으로 집을 지을 땐 산 밑이나 물 근처는 피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급작스러운 산사태 발생으로 더는 배산임수가 사람이 살기 좋은 입지가 아니란 뜻이다.

경북도는 큰 재난으로 이재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보고 예천국제양궁장에 마음안심버스를 파견해 심리적 안정을 도왔다.
경북도는 큰 재난으로 이재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보고 예천국제양궁장에 마음안심버스를 파견해 심리적 안정을 도왔다.

엎친 데 덮쳤다
전례 없는 호우로 예천에서만 5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대다수는 마을회관으로 피신했고, 일부는 예천국제양궁장에 텐트형 임시거주시설에 머물렀다. 이 와중에 이재민 중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발생했다. 감천면 벌방리의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있던 이재민 4명이 확진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 방역당국은 재난으로 위생상황이 나빠졌고, 면역력이 약해진 고령자들이 확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벌방리 마을회관에 머물던 이재민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임시조립주택 9동을 우선 마련하고, 주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평2리 주민 중 일부도 예천국제양궁장에 머물렀다.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을 간직한 채 열흘가량 이곳에서 지냈다. 고령의 어르신들 대부분인 이재민들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이 컸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이곳 이재민들 모두는 경북도립대학교 신축 기숙사로 이동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경북도는 처음 겪는 재난상황에 이재민들이 장기간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재난심리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천국제양궁장에 보건복지부 소속 국립부곡병원의 영남권트라우마센터가 마음안심버스를 파견한 것도 그 일환이다. 앞으로도 불면증과 우울증 등에 시달리는 이재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힘내세요 - 이순자 한국생활개선예천군연합회장

                 “도움 필요한 곳 어디든 갈 것”

담배농사를 짓고 있는 이순자 회장은 예년 같으면 한창 수확에 바빠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다. 하지만 모든 농사일은 뒷전으로 미룬 지 오래다. 워낙 피해가 컸던 터라 이재민들을 돕고 복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봉사자 지원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분 중에 몇 분은 건너건너 아는 사이예요. 아직도 실종된 두 분도 있잖아요. 내 농사가 급한 게 아니라 집 잃으신 분들, 논이고 밭이고 떠내려가신 분들이 걱정이죠.”

이 회장은 피해가 컸던 감천면 진평2리를 취재차 동행한 지난 24일 이전에 이미 찾은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을 초입에서 발길을 돌렸다. 잔해를 수거하기 위한 대형트럭과 중장비가 수시로 오가고 있어 오히려 민폐를 끼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보다 장비가 필요하대요. 진평2리에 살고 있는 회원들 안부만 묻고 나중에 찾아오기로 했죠.”

대신 이 회장은 회원들과 복구활동에 힘쓰고 있는 분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연로하신 어르신이 홀로 사시는 집을 찾아 흙탕물투성이인 가재도구를 청소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그분들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회원들의 안전도 확보된 후 본격적인 봉사에 나설 계획이다.

“회원들과 수시로 모여 의논한 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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