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르포: 집중호우 농가피해 현장을 가다(전북 익산)

지난 21일 전북 익산시 용동면 구산리 일대. 군데군데 쌓인 비닐과 폐가구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수해 입은 농작물이 썩기 시작하면서 악취가 진동했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땅은 질퍽했다. 금강 하류지역인 이곳 용동면 일대는 지난 집중호우로 어른 어깨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온전한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13일 시작된 비는 최대 499㎜까지 쏟아지더니 용동면과 망성면 일대 논과 축사·비닐하우스는 물론 마을까지 모두 삼켜버렸다.

김정매 망성면생활개선회장은 이번 집중호우에 애호박 하우스가 침수돼 넝쿨째 흙탕물로 뒤덮여 형체조차 알 수 없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김정매 망성면생활개선회장은 이번 집중호우에 애호박 하우스가 침수돼 넝쿨째 흙탕물로 뒤덮여 형체조차 알 수 없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계약재배 출하 앞뒀는데 계약금 도로 내줄 판

“한 해 농사 허탕 … 막막한 생계 지원 바랄 뿐”

“이틀 뒤 출하였는데”… 한순간 8천만원 빚더미
“여기는 원래 상추 심었던 하우스인데 다 녹아 없어졌어요. 그냥 비닐을 깔다가 말은 것 같죠. 비 그치면 수확하려고 했는데... 여긴 아무것도 아녜요. 저기 12동 수박밭은 이틀 뒤면 출하였는데 하나도 못쓰게 생겼어요. 그 하우스는 가지도 못해요. 수박 썩는 냄새가 코끝을 때려서요.”

60대 여성농업인 A씨는 상추와 수박 재배만 해도 하우스 26동에 달한다. 그는 각 하우스마다 물빠짐이 수월해 땅이 빨리 마를 수 있게끔 고랑을 파놨다.

A씨는 대피명령에 인근 학교에서 2~3일 머물다 어느 정도 물이 빠지고 현장에 나와 피해 상황을 확인했지만,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동에 500만원, 총 12동에 6천만원의 계약재배를 하고 있었다. 그중 20%를 계약금으로 미리 받았고 곧 수박 출하만 남겨둔 상태였다.

“한순간에 8천만원이 물에 떠내려갔어요. 계약금으로 받은 2천만원도 내줘야 하는데... 가진 것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당장 물이 빠지더라도 바로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돼 있어 한 동당 150만원 정도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농촌에 젊은 인력 도움 절실
이날 800여명의 군경은 각각 익산시 용동면과 망성면 일대에서 농가 폐기물을 정리하는 등 수해복구에 힘을 보탰다.

“장병들이 너무 안쓰러워요. 날은 덥고 땅은 질고, 하우스의 비닐을 걷어놔야 빨리 마르니까 이 마을부터 복구작업이 시작됐는데 땀을 하도 흘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더라고요. 고령의 어른들만 있는 농촌에선 사실 젊은 장병들이 없었으면 복구하는 건 엄두도 못 내요.”

수해복구에 참여한 한 장병은 “우리가 흘리는 땀보다 농민들이 흘릴 눈물이 더 크다”며 “미약하지만 피해 농민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수거한 폐기물은 임시로 마련한 집하장에서 1차 분리수거를 거친 뒤 지자체에서 무상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침수로 전자제품이 손상되는 등 피해를 본 주민들을 위해 S전자와 L전자 서비스팀이 나와 침수 가전제품을 세척하고 무상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익산시는 밥차를, 익산시소방서는 빨래차를 운영하는 등 지자체가 복구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기본생활 지원금 100만원이라도”
김정매 망성면생활개선회장은 25년 전 남편과 귀농했다. 1만㎡(3300평) 규모로 애호박과 오이, 대파 등을 친환경적으로 재배해 학교나 로컬푸드매장 5곳에 납품하고 있다. 매달 1천만원 매출을 올리던 김 회장은 이번 수해로 농작물 수확이 어려워지면서 대략 5천만원 손해를 입었다. 게다가 함께 일하던 외국인근로자 2명도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김 회장은 “복구에 나섰는데 혼자 힘으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면서 “애지중지 키운 저 애호박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탄식했다.

애호박 재배 하우스에선 넝쿨이 흙탕물에 잠겨 노랗게 말라 호박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농기계는 물론 집기류와 가전제품도 물에 잠겨 하나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기콘센트마저 위태롭게 꼽혀 있어 2차 사고까지 우려됐다.

“가장 급한 건 수입이 없으니 뒷정리할 때 필요한 물품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요.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르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한 동에 100만원은 들여야 비닐을 교체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상태에선 어떤 작물도 심을 수가 없어요.”

올가을에나 비닐을 씌워 겨울 농사를 지어야 할 판이다. 일반 하우스 철재골조물 수명이 대략 10년이지만 물에 닿은 철재구조는 부식속도가 빨라져 5년 정도밖에 사용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인건비도 오르고 씨앗값, 비룟값 등 높아진 농자재 비용에 그동안 외상결재한 비용도 있어 빚으로 수개월간 투자만 해 온 농장주로서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로컬푸드매장에 납품해서 그날그날 받아 인건비와 농자재 비용으로 이미 다 지출했어요. 앞으로 3~4개월은 딱히 수입도 없는데... 100만원이라도 기본 생활비가 지원됐으면 좋겠어요.”

생계마저 막막해진 김 회장은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지원되길 바랐다.

익산 망성면생활개선회는 임시대피소에 집밥이 그리운 어른들을 위해 소찬의 식사라도 정성껏 마련해 대접했다.
익산 망성면생활개선회는 임시대피소에 집밥이 그리운 어른들을 위해 소찬의 식사라도 정성껏 마련해 대접했다.

임시대피소가 외국인근로자 숙소로
용동면 성북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는 집을 떠나온 주민과 외국인근로자 등 35명을 위한 텐트 15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애초에 200여명이 머물다 일부 주민들은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 복구에 힘 쏟고 있지만 외국인근로자와 몇몇 주민들은 이곳에 발이 묶였다.

“전에는 급하니까 인근 모텔에서 지낼 수 있게 했는데 이게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일도 아니고, 하루에 5만원이라는 숙박비를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외국인근로자들이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했죠.”

침수 피해 주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일이 없어 월급을 줄 수 없는 농장주는 학교를 임시 주거지로 마련한 것이다.

김정매 망성면생활개선회장과 신향식 총무는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몇몇 어르신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소찬의 식사라도 정성껏 마련해 대접하며 건강을 챙기는 등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정자 한국생활개선익산시연합회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힘을 모아 헤쳐나가길 바란다”며 쌀국수 20상자를 도연합회로부터 지원받아 피해 주민들을 위해 전달했다.

한편, 익산시는 이달 31일까지 피해 접수 기간을 두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피해신고를 받고 있다. 익산시 관계자는 “적극적인 피해신고를 독려해 신고 누락으로 불이익을 받는 피해주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정자 한국생활개선익산시연합회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힘을 모아 헤쳐나가길 바란다”며 쌀국수 20상자를 도연합회로부터 지원받아 피해 주민들을 위해 전달했다.
박정자 한국생활개선익산시연합회장은 쌀국수 20상자를 도연합회로부터 지원받아 피해 주민들을 위해 김정매 망성면생활개선회장에게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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