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르포: 집중호우 농가피해 현장을 가다(충남 논산)

충남 논산에 지난 14일 새벽 4시 기준 호우경보가 발효되고 이튿날 밤 8시까지 약 392㎜의 누적 강수량이 기록됐다. 읍·면별 일간강우량에 따르면 ▲가야곡 404㎜ ▲상월 437㎜ ▲벌곡 397㎜ ▲양촌 357㎜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지난 17일 기준 47가구 7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논산은 시설하우스가 많아 논산천 범람으로 인한 농작물 침수피해가 컸다. 논산시가 집계한 집중호우 피해현황을 보면 지난 17일 기준 상추 139.7ha(250농가), 수박 103.2ha(148농가), 콩 21.2ha(26농가) 규모였고, 가축(소)은 400마리 폐사했다. 지난 21일 부적면, 성동면 일대의 수해현장을 찾아 실의에 빠진 농업인들을 만났다.

충남 논산 부적면 조혜영씨가 여름 한 철 1동당 400만~450만원의 소득을 올리던 수박 시설하우스가 침수되자 망연자실해 있다.

논산천 범람하고 제방 무너져 농가피해 극심
농작물 재해보험처리에 피해농작물 폐기 못해

34℃ 폭염에 침수농작물 타 죽어
기록적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인 지난 21일 충남 논산 부적면 시설하우스에 들어서자 침수된 농작물 수박이 하얗게 떠있었다.

조혜영(부적면생활개선회원)씨는 남편과 1만578㎡(3200평) 시설하우스 12동에서 수박을 재배하고 있는 5년차 귀농인이다. 수박품종도 씨가 없는 ‘씨드리스그린프라임’을 선택하고, 1동당 500주를 심어 익기만을 기다렸던 터다.

그러나 지난 14~15일 하우스 내부까지 들이닥친 ‘도깨비 폭우’에 하우스 6동을 속수무책으로 내줬다. 폭우가 뭉갠 하우스에는 누런 수박잎이 어지러이 늘어졌고, 수박이 썩으면서 악취를 풍겼다.

“물에 잠겼던 수박이 하우스에서 햇볕을 받아 뜨거워지니까 그대로 타 죽고 있어요. 피해가 덜한 하우스 5동만이라도 영양제를 관주하고, 엽면시비하면서 살려보고 있는데, 출하는 장담 못해요.”

부부가 밤새 진흙을 파내고 모터펌프로 물을 퍼내서일까. 그나마 하우스 5동은 피해가 덜했다.

“줄기가 마르면서 수박 꼭지부터 썩어 들어가는 탓에 수확을 못해요. 이파리가 쌩쌩하게 올라가야 되는데 다 처져 있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앓아누운 거나 다름없어요.”

조혜영씨는 9900㎡ 규모 상추밭과 6610㎡ 규모 콩밭 수해 복구에도 여념이 없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수박은 물론 상추, 콩 등을 계약재배 해 왔다”면서 “일대 농작물 침수 피해 소식 때문인지 아직까지 유통업체에서 연락은 없고, 당장 복구 중인 5동의 수박을 수확한다 해도 판로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과일을 소매하는 지역상인 2명만이 조씨 시설하우스를 찾아와 헐값에 건질 만한 수박이 있는지 둘러봤다.

재난지역 정부지원 “체감 못해”
조혜영씨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해놨지만 보상금이 얼마나 나올지 짐작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5일 농협 보험 관계자가 방문했지만, 이후 연락이 없어 썩은 수박을 폐기하지 못하고 손 놓고 기다리는 처지다.

지역농협 농작물 재해보험 관계자는 “침수농작물에 대한 1차 조사가 이뤄지고 2차 조사까지 1~2주 기간이 소요되는데, 농가에서 농작물 재해보험 손해사정사에게 연락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강금순 한국생활개선논산시연합회장은 “보상금을 제대로 받으려고 침수 피해 입은 몇몇 농가들이 일부러 시설하우스에 들어찬 물을 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농업인들은 지난 14일 새벽 4시 발효된 호우경보 재난문자를 보고 자구책으로 수박을 조기에 수확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결과적으로 농작물 재해 규모가 적다고 판단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뒷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수박농가들 사이에서 “침수 피해가 염려돼 조기에 수확했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다”고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논산은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됐다. 하지만 건강보험료, 전기료, 도시가스요금, 지역난방요금 감면 등이 지원의 전부다. 침수로 인해 생업이 끊긴 지역 농업인들은 “정부 지원을 체감하지 못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현장에선… - 희망의 손길 뻗는 성동면생활개선회

논산 성동면생횔개선회원들이 이웃주민의 양계장을 찾아 폐사닭 1천수를 거둬들이는 모습
논산 성동면생횔개선회원들이 이웃주민의 양계장을 찾아 폐사닭 1천수를 거둬들이는 모습

생활개선회원들이 폐사 닭 1천마리 처리 
복구여력 없는 피해지역서 회원들 구슬땀

논산 성동면생활개선회는 매월 1회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이불빨래봉사를 실시한다. 지난 21일 어울림센터에 회원 10여명이 모였다. 회원들은 “농장 상태 어때요?” “복구되고 있어요?” 등 침수 피해 관련 첫마디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날 오전부터 회원들은 수해복구를 위해 논산을 방문한 경기남부경찰청 경찰들에게 냉커피를 만들어 나눔 봉사를 펼쳤다.

성동면생활개선회 회원들은 “연일 30℃를 웃도는 폭염에 커피가 경찰들에게 오아시스가 됐을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김경자 성동면생활개선회장

지난 14일부터 심상치 않은 우기에 성동면 이곳저곳을 살폈다는 김경자 성동면생활개선회장. 우곤리, 개척리 제방이 붕괴되면서 피해가 속출했지만, 도로가 내려앉아 제방을 막아준 덕분에(?) 석성리까지 물이 들어차지 않았다고 한다. 김 회장이 이처럼 생생한 광경을 전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이웃 축사의 소를 몰면서 논산천이 불어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회장은 “남인숙 원북2리 부녀회장이 양계 4천수를 사육하는데 1천수가 물에 잠겼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재빨리 성동면생활개선회 회원들을 소집해 방제복 차림으로 양계장에 들어갔다”고 돌이켰다.

폐사한 닭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내장이 썩어 악취가 심했고, 죽은 닭을 거둬들이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군인들도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우려와 악취로 인해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활개선회원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어요. 부패돼 악취가 코를 찔러 치우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회원들에 따르면 논산은 그나마 육군훈련소가 가까이 있어 군대를 동원할 수 있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수해 복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양계, 양돈축사 등 도움이 필요한 농가가 산재해 있는 터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부녀회장이 혼자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계분을 못 치우고 있다고 해요. 시설하우스 외에도 농촌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농가가 많아요. 소외되는 곳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활개선회가 앞장서겠습니다.”

논산 성동면생활개선회원들이 경기남부경찰청 경찰들의 수해 복구 봉사에 시원한 커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논산 성동면생활개선회원들이 경기남부경찰청 경찰들의 수해 복구 봉사에 시원한 커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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