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부식비 지원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
농촌여성 ‘가사부담 경감·삶의 질 향상’ 호응 높지만
국비사업 아니라 지자체마다 예산·운영 천차만별
■주간Focus- 농번기만이라도 부엌서 벗어나고파~
광역지자체 지원 없어 시·군비 100% 편성
일부 지자체 “경로당운영비와 중복” 외면도
전남 나주, 공동급식 지원 조례 2008년 최초 제정
시비 100% 시작…현재 도비 25% 지원
마을 자체 공동급식·도시락 배달 중 신청
# 4~5월이면 농촌지역은 농번기에 접어든다. 못자리와 모내기가 한창인 이때 일손이 모자랄 만큼 바쁘다. 마을회관도 음식을 차리는 손길로 북적인다. 나물 무치는 손놀림은 어느새 국이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로 향한다. 잠시 뒤 차려진 20인분의 밥상. 한 상 가득 밥에 국에 나물 등 각종 반찬이 수북하다. 낮 12시를 기점으로 논과 밭에서 일하던 주민들이 한두 명씩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 중 절반가량은 여성농업인이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주민들은 함께 식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모내기철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 ‘모내기 때의 하루는 겨울의 열흘 맞잡이다’는 이맘때 농촌 현실을 빗댄 속담이다. 특히 여성농업인들의 손길은 더욱 분주하다. 논과 밭에서 쉼 없이 일을 하다가도 점심 전부터 다시 ‘부엌데기’가 된다. 밖에서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도 집안일은 계속된다. 설거지에, 빨래에, 잠자리 준비에… 남성농업인보다 하루 평균 3~4시간 더 일을 하는 셈이다.
“일하다가 외식하는 기분”
“농번기에는 다른 농가 사정을 들을 수 없는데, 동네 사람들을 식사자리에서 여럿 만나니까 정보도 얻게 됩니다. 없던 우애도 생기는 거 같아요. 부담을 덜고 편하게 점심을 해결하니까 우리 집도 그렇고 마을도 함께 발전하는 거 같습니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일하다가 바로 마을회관에 와서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편하고… 또 밥도 따뜻하고요. 외식하는 기분도 나고, 여러 모로 좋은 거 같아요.”이처럼 농번기만이라도 부엌데기에서 벗어나고픈 게 농촌여성들의 작은 바람이지만 대부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도시처럼 배달을 시켜서 먹고 싶지만, 외진 농촌에서는 딴 나라 얘기죠. 왜 우리 지자체는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을 안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농사에 가사까지 담당하는 농촌여성들은 바쁜 농번기만이라도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요.”
지원사업 안 하나 못하나
인건비와 부식비를 지원해 봄과 가을 농번기에만 집중적으로 공동급식 운영을 돕는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이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또한 영농 참여와 집중을 통한 농업생산성은 물론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여성농업인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국비로 지원되는 정부(농림축산식품부) 사업이 아니다 보니 지자체마다 사업의 규모나 지원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지원사업을 하지 않는 지자체가 많아 여성농업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광역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일부 시·군은 100% 자체 사업으로 운영한다.
일부 지자체는 ‘경로당운영비지원사업’을 들어 “중복된다”면서 공동급식지원사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로당운영비는 시·군비 100% 예산으로 전국 대부분의 마을회관에 지원된다. 대개 연간 100만원 안팎의 기본 사업비에 마을회관을 이용하는 만 65세 이상 주민 수에 따라 30명 기준 30만원가량 추가로 지급되다 보니 마을 노인회에서 농번기를 제외하고 자체 공동급식을 운영하곤 한다. 일부 지자체는 경로당급식도우미 인건비를 지원하는 가운데 인건비와 부식비 등이 겹친다며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을 중단하거나 아예 수요 조사도 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마저도 마을회관 등에 공동조리실을 갖추지 못한 곳은 ‘그림의 떡’일 뿐인 곳도 있다. 일부 지자체는 공동조리실을 갖추지 못한 마을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신청조건을 완화했지만, 대부분 지자체는 공동조리실을 갖춘 데다 20인 이상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어서다.
공동급식 모태는 철원 ‘공동취사장’
농번기 때마다 되풀이되는 농가의 고민, 특히 여성농업인의 가사부담을 경감해주고자 추진된 이 사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형태의 농촌마을 공동급식이 시행, 지금까지 이어지는 곳도 있다.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안에서 운영되는 공동취사장 사업이다. 시작이 2000년이다 보니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의 모태라는 견해도 있다.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철원읍 외촌리에 마련된 ‘못자리 공동취사장’에선 수많은 농업인들이 점심을 함께 먹는다. 철원농협 관계자는 “민통선은 출입이 제한된 곳으로, 농업인들이 식사를 해결하기에 불편함이 많았던 곳”이라며 “한 장소를 정해 놓고 인근 농업인들이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왔다”고 전했다.
운영 기간과 시간은 못자리 시기 20일가량, 오전 11시에서 12시30분이다. 지원대상은 못자리하는 농업인이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철원군 관계자는 “바쁜 봄철 농번기에 식사 준비까지 하려면 정말 힘들다”면서 “농토 인근에 마련된 공동 취사장에서 무료로 식사를 한 뒤 바로 다시 일할 수 있으니 여성농업인들의 호응도 높고, 농업인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공동취사장에서는 농업인들에게 밥과 국, 5~6개 정도의 반찬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농업인은 하루 평균 400~500명에 달한다.
6천만원 안팎의 공동취사장 운영 경비는 철원군과 철원농협이 각각 절반씩 부담한다. 매년 봄철 농번기에 운영되는 공동취사장의 식수 인원은 1만6500명에 이른다.
지자체 지원사업이 되면서 주로 모낼 때와 추수할 때 점심 공동급식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운영됐다.
봄철에 주로 많이 시행되며, 정해진 한도 내에서 급식도우미 인건비와 부식비를 지원,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새참 나르는 아낙네’ 사라져
지자체 중 최초로 시작된 곳은 전남 나주시로 파악된다. 사업 근거는 2008년 제정된 ‘나주시 농업인 마을공동급식지원 조례’다. 이로 인해 나주 들녘으로 점심이나 새참을 나르는 아낙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됐고, 소문이 나면서 인근 지자체로 번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식재료는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부담했으나 2011년에 조례를 개정해 부식비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번 개정을 거쳐 신청조건을 20명에서 현행 15명 이상이 공동급식에 참여하는 마을로 지원대상의 범위를 완화했다.
나주시의 올해 공동급식 예산은 모두 6억9400만원이다. 이 중 도비 지원은 25%에 불과해 나주시의 재정부담이 만만치 않다. 공동급식은 23일, 도시락은 22일로 상·하반기로 나눠 열흘가량 운영된다.
나주시 관계자는 “지원 금액은 마을마다 비슷하다”면서 “마을 자체적으로 조리를 하는 마을도 있고, 공동조리실을 갖추지 못한 마을 등은 배달 업체를 통해 도시락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공동급식 1인1식 단가는 2600원, 도시락은 4840원이다. 공동급식 시 조리원 인건비는 하루 4만5천원이다. 올해 전남도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 배정 시·군은 나주시를 포함해 21곳이다. 전체 48억4천만원에 이르는 예산 중 나주시가 가장 많은 사업비를 지원받은 셈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농업인, 특히 여성농업인들의 일손을 덜고, 자체 농산물을 소비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일찍 시작됐고, 인식이 자리 잡히기 전이라서 처음에는 시비 100%로만 지원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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