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8명 인터뷰…실존적 생지옥 경험
“영상 접하자마자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가해자 형량 낮고, 개인정보 보호에 ‘무력감’ 
​​​​​​​심리적 지지와 특화된 개입·제도 개선 필요

■ 기획특집- 디지털 성범죄 여성 피해자 보호 강화하려면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피해 경험 보고서 발간

# “그 영상을 딱 접하자마자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나는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모든 피해자가 할 텐데, 나도 당시에 그랬어요. 나는 이제 끝났구나, 결혼은 고사하고 지금 하는 일도 못하겠구나, 사회생활 자체를 못하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 “그 영상을 딱 접하자마자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나는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모든 피해자가 할 텐데, 나도 당시에 그랬어요. 나는 이제 끝났구나, 결혼은 고사하고 지금 하는 일도 못하겠구나, 사회생활 자체를 못하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 “진짜 모든 외부 활동을 다 끊고, 경제 활동은 다 끊고, 그냥 집안에만 박혀서 살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꽉 차서 사람이 너무 싫고, 사람을 이제 못 믿겠고, 대인기피증처럼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어요. 일단 신분증에 있는 사진도 아예 바꿨고, 긴 머리였는데 머리도 잘랐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거예요.”

# “병원이나 건강검진 같은 거 받는 게 너무 무서워요. 이름 호명하잖아요.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예전 이름은 유포가 돼서 개명을 했는데, 운동하는 곳은 제가 옛날부터 알던 사이라서 예전 이름을 자꾸 듣게 되는 거예요. 나를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무서워서 더는 못 가겠더라고요.”

# “국내에 있는 사이트나 이런 곳에 대해서만 뭔가 삭제지원이 되는 느낌이지, 정작 중요한 영상이 내려지지가 않아요. 가해자들은 반성문 쓰고 탄원서 내고 우리가 원치 않은 공탁금을 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형량이 깎여요. 동의하지 않고 찍었다는 것이 처벌 기준에서 엄청나게 중요한데, 그걸 증명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경험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초 질적 연구를 담은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및 유포 불안 피해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담긴 피해자 인터뷰 내용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나날이 늘어나고 수법은 교묘해지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유포와 신상정보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같은 ‘실존적 생지옥’에서 살고 있다. 

피해자들은 ‘유포 불안’으로 밤낮 휴대폰을 확인하는 강박행동과 지속적인 유포로 인한 압도감 등 첫 유포 인식 뒤 유포가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이를 경험한다. 

일부 피해자는 성형 수술과 개명으로 사건과 관련된 모습을 지워버리려 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물리적 성폭력 피해자와 유사한 증상들을 보인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물리적 성폭력 피해자와 유사한 증상들을 보인다. 

연구진은 “피해자들은 사건 당시 가해자가 불법 유포물을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인 접근을 한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면서 “또 디지털 성범죄의 속성과 대응 방법에 대해 이전에 들어보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만큼 ‘디지털 성범죄 대응의 생소함’으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가해 동기 “장난과 재미 삼아”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가해는 물리적 성범죄 가해 동기보다 복합적인 동기에 의해 행위를 저지른다. 피해자에게 겁을 주거나, 처벌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관심을 얻기 위해, 질투나 집착, 굴욕감을 주기 위해, 여성혐오 표현, 성적 만족, 단순 장난과 재미, 물질적 이득 등 다양하다. 

2021년 서울시가 가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해 동기가 합의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호기심으로, 충동적으로, 남들도 하니까 따라 해보고 싶어서 등으로 나타났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거나 복수를 위한 의도적 동기가 아닌 경우가 상당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속성상 불법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국내법 내 처벌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또 가해자 처벌을 위해 재판에 참석해 탄원서를 제출해도 형량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 고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해자 형량 수위’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신상정보 유포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을 경험했다. 

유포물 자체 삭제의 어려움은 또 다른 벽이다. 반복적인 유포물 삭제 요청에도, 사실상 도메인만 삭제될 뿐 유포물 자체는 삭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피해자 보호에 대해 낮은 인식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시공간의 제약 없는 온라인 특성상 유포 가해자들이 전국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발생된 지역으로 진술하러 가는 번거로움을 경험했다. 

또한 개인보호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 사건 접수가 이뤄지고, 사건 진술 도중 감정이 복받칠 때 사건 처리로 빨리 넘기려 하는 것과 같은 수사방식을 경험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불법 사이트에 대한 허용적 문화 ▶피해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심리지원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수사방식 등을 문제로 꼽았다.

연구진은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를 향한 군중의 비난과 군중의 비난이 자책감으로 스스로 2차 가해를 가하는 자기 비난의 패턴도 보인다”면서 “불법 사이트를 접근할 수 있는 용이성과 불법 사이트를 보는 것에 대해 별로 문제 삼지 않는, 불법 사이트에 대한 허용적 문화가 피해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이번 연구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을 위한 관련 기관들이 디지털 성범죄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피해지원에 특화된 정책과 지원전략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구보고서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누리집(www.stop.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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