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타워크레인 운전…‘여성 화장실’ 없어 고통“
건설 현장에도 여성노동자가 있다” 목소리 높여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위원장 6년 맡아

■특별인터뷰-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의 보이스’ 김경신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우리 사회가 함께 나아가는 데 영감을 준 개인 혹은 단체에 감사와 연대의 마음으로 수여하는 상, ‘올해의 보이스’ 수상자 김경신 타워크레인 기사를 만났다.
김경신 기사는 “이 상은 건설 현장에도 여성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보다 성평등하고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에 주신 상이라고 생각하고 끈질기게 여성건설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올해의 보이스’ 수상 소감을 전했다.

김경신 타워크레인 기사는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라고 부르는 데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의 인식이 녹아 있고, 노조가 이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 왔다란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김경신 타워크레인 기사는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라고 부르는 데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의 인식이 녹아 있고, 노조가 이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 왔다란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공중화장실 찾아 막 뛰어다녔어요” 
김경신 기사는 건설 현장에서 부재했던 여성 화장실과 탈의실, 휴게실 등의 편의시설과 성희롱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단기 근로자의 출산 휴가 부여 문제 등 오래된 업계 내 성차별 인식 전환과 여성건설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건설산업을 남성의 산업이라고 여기다 보니까 현장에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는 거죠. ‘여성 화장실 제대로 구비해라’, ‘물이 나오는 화장실이어야 한다’ 등을 요구해 왔습니다. 손을 씻을 만한 곳도 제대로 없고, 옷을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로서 건설 현장에서 일해 온 지 23년. 부산에서 상업계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여군에 지원, 3년 복무 뒤 퇴역했다. 

“자격증을 알아보다가 지인을 통해 건설중장비 분야 일이 괜찮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고소공포증도 없고, 현장에서 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죠. 당시만 해도 타워크레인은 국가자격증이 아니었고, 교육원 수료나 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이드로크레인 자격증만 가지고 있어도 조정을 할 수 있었어요.”

3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2001년부터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20대 여성기사로서 5060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부대낄 수 있다는 건 각오했던 터라 버틸 수 있었지만, 당장 생리적인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쳤다.

“여성들은 달거리를 하잖아요. 여성 화장실이 없다는 건 고통에 가까웠어요.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현장 주변 공중화장실부터 확인했어요. 지하철역을 많이 이용했죠. 화장실을 찾아 막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아파트 10층이면 30m, 지금까지 일하면서 최고 30층 높이까지 올라가봤다. 김경신 기사는 그곳에서 ‘참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아파트 10층이면 30m, 지금까지 일하면서 최고 30층 높이까지 올라가봤다. 김경신 기사는 그곳에서 ‘참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건폭 몰이’ 여파…취약 노동자에 미쳐
2002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가입한 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있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김경신 기사는 그때부터 ‘건설 현장에도 여성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규정 때문에 건설 현장에는 반드시 갖춰야 할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있어도 쓸 수 없는 시설이 많아요. 노조의 요구에 현장에 여성 화장실이 설치되긴 했지만 물이 안 나오거나, 칸막이가 없거나, 비교적 관리가 잘된 원청사 여성 화장실은 잠겨있기도 합니다.”

김경신 기사는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위원장을 2021년까지 6년간 맡았다. 앞서 건설노조 부위원장으로 2년 동안 활동했다.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는 그동안 건설 현장에 남녀를 구분해 화장실, 탈의실 등 편의시설 설치를 비롯해 일용·일당직 건설노동자의 임신·출산·육아 등 모성보호제도 보장, 매달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등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제기, 국회의원과의 간담회 등을 추진해 왔다. 

“건설 현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알리기 위해 국회 등에서 ‘사진전’을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 왔지만 여전히 풀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타워크레인은 전국에 3천대가량 있다. 하지만 타워크레인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한 기사는 남녀 합해서 8천명이나 된다. 그중 민주노총에 가입한 여성기사는 100여명. 김경신 기사는 전국 200명가량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6개월에서 1년가량 일하고 비슷한 기간을 백수 혹은 실업자로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민주노총 소속이어서 정해진 순번에 따라 채용이 되기에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대기’만 하면 채용이 보장됐다. 

“노조가 나서면서 건설 현장의 환경과 임금체계, 인식이 개선돼 왔는데, 최근 들어 ‘건폭 몰이’로 건설노조를 압박하면서 그 여파가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먼저 미치고 있습니다. 사측이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채용을 꺼리면서 여성, 고령 노동자일수록 순위에서 밀리는 분위기입니다.” 

현장 남녀비율 10대 1…성평등 교육 절실
게다가 여성건설노동자들은 10대 1로 현장에 남성노동자들이 워낙 많은 탓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에 김경신 기사는 강의에 나설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을 이수, 대기 중일 때는 성평등 강사로 활동한다. 앞으로 더 공부해서 노동 현장의 성평등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김경신 기사와 함께 선정된 ‘올해의 보이스’ 수상자는 56년 만의 ‘미투’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문제를 다시 환기한 ‘최말자’씨,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등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힌 ‘성소수자부모모임’, 인천광역시 검열에 굴하지 않고 시민의 자유를 연대로 지켜낸 ‘인천여성영화제’다. 

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의 보이스’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한국여성재단이 수상자 후보를 함께 추천했다. 

‘올해의 보이스’에 선정된 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24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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