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나온 뒤 대기업 근무…제대로 가장 노릇
노래하고 싶어서 사표 내고 맥주집 열어 콘서트
로커 인생 30여년…신조음계 ‘나만의 꿈’ 재조명
■만나봅시다- 밴드에 웃고 밴드에 울었다…‘부활’ 7대 보컬 이성욱의 홀로서기, 그 후
“수제맥주전문점인데, 노래를 하면 여기가 콘서트장이죠. 그런데요, 콘서트를 한다는 건 비밀리에 준비합니다. 알려지면 일대 좁은 거리가 온통 마비되거든요. 하하하.”
밴드 ‘부활’의 7대 보컬 출신으로 더 알려진 가수 이성욱의 말이다. 꽃다운 나이에 밴드 ‘아기천사’를 거쳐 ‘신조음계’와 ‘부활’의 보컬에 이르기까지 그는 지난 세월 밴드에 웃고 밴드에 울었다.
홀로선 지 10여년, 그동안 대기업에도 다녔다가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서 자신만의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아파트단지 주변 먹자골목에 자리한 맥주집이다.
"가게 없었다면 빚더미 올라앉아"
“중학교 동기가 하던 술집을 넘겨받았다가 호주에서 맥주 양조를 공부하고 온 후배가 있어서 수제맥주전문점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어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아내가 직접 피자를 굽는 등 맛집으로 알려졌죠. 지금은 직접 굽지는 못하고요, 대신 맛있는 수제맥주를 보다 저렴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부활에서 나와 한동안 대기업을 다니면서 모처럼 가장 노릇에 충실했다. 그렇다고 노래를 포기했던 건 아니다.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찾는 무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노래와 가수에 대한 그의 욕심과 열정을 알았기에 아내도 마지못해 사직을 허락했다. 하지만 돌연 사표를 날리고 나니 불안이 엄습해 왔다. 비록 코로나19 전이었지만 설 무대가 마땅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게 불 보듯 뻔했다.
“권리금도 터무니없이 많이 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물정을 잘 알기란 쉽지 않죠. 코로나19를 지나면서 행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 가게마저 없었다면 아마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지 않았을까요.”
7년 전, 그렇게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고 있다. 김태원, 박완규, 정단 등 부활 전·현 멤버들이 와서 함께 노래도 부른다. 그때마다 몇 시간 전부터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차량 통행은 물론 골목 진입도 어렵다고.
“이 지역에서 먹고사는 소상인이 다 됐거든요. 콘서트도 좋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합니다.”
최근에는 고(故) 가수 박정운 추모곡을 녹음했다. 박정운과 절친했던 가수 박준하와 김태원이 친분이 있는 사이라서 우연찮게 참여하게 됐다. “정운 선배가 노래를 참 잘했어요. 일본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쿠보타 토시노부에 견줄 만한, 흑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리드미컬하고 정열적인 그런 소울풀한 목소리를 내는 가수는 드물거든요.”
1990년 포토뮤직 가요제 1등
이성욱은 1991년도에 아기천사 보컬로 참여해 앨범을 냈다. 고등학생이 가수로 데뷔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때, 그는 ‘기죽지 않아서’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음악잡지사에서 주최하는 가요제에 나갔던 게 계기가 됐다.
“음악 하는 친구가 ‘주니어’ 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어요. 내 실력이 궁금했죠.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포토뮤직’ 가요제에 나갔죠. 그만 1등을 하고 말았어요.”
매월 예선을 치르고, 예선 통과자들이 겨루는 연말 결선 자리에서다. 1990년 이야기다. 기획사를 만나 앨범을 준비하다, 故 가수 신해철이 보컬로서 앨범을 준비하던 밴드 아기천사에서 보컬을 급하게 찾는다고 해서 아기천사 2집 앨범에 참여하게 됐다. 신해철은 아기천사를 나온 직후 ‘무한궤도’를 결성한 뒤 MBC 대학가요제에 나갔다.
“그러니까 데뷔는 해철 형보다 빠른 거였죠. 앨범을 내고 나니까 음악적인 어떤 그런 느낌이 ‘뿜뿜’ 막 생겼어요. 내 갈 길은 시키는 노래나 해서 스타가 되는 게 아니다, 음악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홍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죠. 완전 미친 거였죠. 하하하.”
인디, 록, 메탈로 분류되는 신조음계에서 보컬로 활동하며 두 장의 앨범을 냈다. 당시 그가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한 ‘나만의 꿈’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재조명을 받았다.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 돼준 건 내 곁에 함께했던 음악소리 예 누구나 같은 길을 걸을 순 없어….’
신조음계 시절에도 생활고를 벗어날 수 없었다.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김태원이 찾아와 부활 보컬을 맡게 됐다. 2000년 발매된 부활 7집 앨범 컬러(Color)에서 그의 탄탄한 발성과 고음,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좀 좋았어요. 부활을 나와서 대기업 통신사에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휴대폰 요금을 정하는 업무를 맡았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가수 이성욱은 처가가 있는 경남 밀양 얼음골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꿈이다. 어릴 적 경북 영덕 외가에서 쌓은 추억과 닮은 데가 많아서다.
“일곱 살 때까지 오줌싸개였어요. 외할머니께서 어느 날 개구리 뒷다리 양념구이를 해주셨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다 낳았어요. 얼음골은 사과가 유명한데, 글쎄 장인·장모님이 몇 년 전에 사과밭을 팔아버렸어요. 지금 땅값이 다섯 배나 올랐다고 해요. 오른 땅값만큼 벌어야 되살 수 있을 텐데, 맥주를 얼마나 팔아야 그 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가수 이성욱은 시종 유쾌한 웃음과 뛰어난 말솜씨로 좌중 없는 맥주집에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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