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 결혼이민여성의 한국살이 - 경남 거창 이하나씨

경남 거창의 이하나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여성으로 마을반장과 북상면생활개선회 총무까지 맡고 있다. 사진 왼쪽은 산양삼 재배농장에서 같이 일하게 된 하나씨의 친언니
경남 거창의 이하나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여성으로 마을반장과 북상면생활개선회 총무까지 맡고 있다. 사진 왼쪽은 산양삼 재배농장에서 같이 일하게 된 하나씨의 친언니

벚꽃 만발한 K-드라마 보고 한국행 결심
마을 반장에 생활개선회 면총무까지 맡아

‘누엔티녹 디에우’와 ‘이하나’라는 두 이름은 모두 한 사람의 것이다. 경남 거창 북상면 방기실마을에서 남편, 두 아들과 살고 있는 디에우씨는 이제 이하나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친숙하다. 그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지 17년째에 접어든 결혼이민여성이다.

간간이 농담을 던지는 말솜씨에 시원시원한 성격, 하지만 결혼 당시 한국에 대해 서울과 부산 정도만 알았다는 하나씨.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농업인, 마을의 유일한 여성 반장, 그리고 한국생활개선거창군연합회 북상면 총무까지 맡고 있다. 1인 4역을 거뜬히 해내고 있는 하나씨가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나 한국행을 결심한 건 20살 무렵이었다.

복작복작 결혼살이
“한국 드라마가 유행이었어요. 벚꽃이 핀 장면이었는데 그걸 보고 한국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부모님은 만류하셨지만 고향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반대가 컸던 부모님은 본인보다 손자와 남편을 더 반긴다. 그런 모습에 하나씨는 한국행이 잘한 결정이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남편은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됐다’는 의미로 거창 이(李)씨에 하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름 덕분인지 이제 완전히 지역사회에 녹아들었다.

남편과 나이차도 있고, 지명도 들어보지 못한 경남 거창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이 순조로울 순 없었다. 베트남과 다른 기후와 농촌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덴 시간이 필요했다.

“농사일이 힘들잖아요. 고향에 있을 때도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렸지만 그때보다 훨씬 일이 힘들었어요. 벌이도 적어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도 많았어요. 한국에 올 때가 겨울이라 추위도 많이 탔어요. 또 이곳은 지대가 높아요. 귀가 먹먹해지는 등 한동안 고산병을 겪었어요.”

먹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베트남과 생산되는 과일종류는 엇비슷하지만 맛이나 먹는 방법이 달랐다. 베트남에선 설탕 대신 소금에 찍어 먹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 같은 식성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녀가 만나도 쉽지 않은 게 결혼생활인데, 식성과 문화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이국(異國)의 남녀가 꾸리는 결혼생활은 수시로 난관에 부딪쳤다.

“처음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속았다고 생각했죠(웃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울 때도 많았어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어요.”

 

올해 이하나씨의 언니와 남동생이 외국인 계절근로자로 입국했다. 사진은 거창군 외국인 계절근로자 교육현장.(사진출처 거창군)
올해 이하나씨의 언니와 남동생이 외국인 계절근로자로 입국했다. 사진은 거창군 외국인 계절근로자 교육현장.(사진출처 거창군)

결혼 초기 어려움 있었지만 이웃 도움으로 위기 넘겨
외국인 계절근로자로 언니·남동생 입국 “행복 두 배”

붙임성 있는 성격에 인심 얻어
남편과 부지런하게 일해 땅도 넓히면서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한국 엄마 못지않게 자녀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차츰 적응해갔다. 생활개선회 활동으로 다양한 여성농업인 선배들과 교류한 경험도 한몫했다.

베트남에서 건너온 새댁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호기심 반 걱정 반의 시선이 있었지만 특유의 활달하면서 붙임성 있는 성격에 동네 주민들도 마음을 열었다. 인심을 얻은 덕분에 마을의 반장까지 맡게 됐다. 남편과 화목한 결혼생활을 지켜본 이웃들은 농촌에서 보기 힘든 아이들의 성장이 고맙고 기특하다며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활개선회에 가입한 때는 10여년 전. 줄곧 봉사와 학습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를 인정받아 북상면생활개선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생활개선회원 중 결혼이민여성을 찾는 기자의 부탁에 박경자 한국생활개선경상남도연합회 수석부회장(전 생활개선거창군연합회장)이 단박에 하나씨를 추천한 이유다.

“나이가 하나 엄마뻘인데 ‘언니’라고 불러요. 예뻐 보일 수밖에 없는 동생이죠. 처음 본 건 수확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양파농가를 돕는 봉사활동이었어요. 그때가 농번기라 모두 바쁠 때였는데, 얼마나 열심히 돕던지 첫눈에 반했어요.”

당시 하나씨는 생활개선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응에 도움을 준 북상면생활개선회장의 부탁을 받고 동행한 길이었다.

하나씨는 “거창에 터를 잡고 농사일과 집안일에 여러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내 일처럼 열심히 돕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가족이 있어 더 힘이 나요”
코로나19로 4년 동안 베트남을 찾지 못했던 하나씨는 지난 2월 고향을 찾았다. 모처럼 회포를 풀며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쁜 일이 생겼다. 언니와 남동생이 외국인 계절근로자 신분으로 지난 4월부터 하나씨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언니와 동생은 산양삼 재배농장에서 일주일에 하루만 빼고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까지 일하고 있다. 하나씨 집에서 출퇴근하며 사과농장 일까지 돕고 있어 큰 힘이 된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서 손이 빨라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밖에 모르지만 하는 방법만 알려주면 바로 따라 해서 사장님이 좋아해요. 원래부터 알던 사장님이라 농장에 가끔 들러 통역도 해주고 일하는 것도 알려주고 있어요.”

지난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외국인 계절근로자 체류기간을 당초 5개월에서 1회에 한해 최대 8개월까지 취업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기자의 설명에 하나씨는 “정말이냐”며 반색했다.

“(체류기간이 8개월까지 늘어나면) 사과 수확도 같이할 수 있겠네요. 사과농장이 1만3천㎡(4천평) 규모인데, 남편이 얼마 전에 다쳐서 힘쓰는 일을 남동생이 도와주고 있어요. 규모는 안 커도 언니랑 남동생이 있으면 든든하죠.”

정부는 최대한 법령을 신속하게 개정해 적용대상을 이미 입국해 체류 중인 계절근로자에게도 소급 적용하기로 한 만큼, 하나씨가 가족과 보낼 시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하나씨는 농사일을 덜 수 있어 좋은 것보다 언니와 남동생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단 기대에 더 부풀어 있었다.

“언니랑 일하다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정말 좋아요. 바쁜 일이 끝나면 계곡에도 놀러 가고 구경도 많이 시켜주고 싶어요. 면허 딴 기념으로 남편이 사준 차 타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요. 베스트 드라이버라서 우리나라에 못 갈 데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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