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 FTA 시대, 여성의 창의·협력이 농업·농촌 지킨다
②경남 하동 ‘딸기의 달인’ 꿈꾸는 리선희씨

세계 무역환경은 양국 간 FTA(자유무협정)를 넘어 RCEP, CPTTP 등과 같은 다수 협상국 간 규범을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일명 ‘메가 FTA’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무역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농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정부는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고자 청년농업인 육성에 박차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들어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농업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여성농업인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본지는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 농업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여성농업인을 찾아 미래 한국농업의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한다.

<농림축산식품부·농촌여성신문 공동기획>

킹스베리 재배를 안정화하고 다양한 맛의 딸기품종을 소비자에게 선보이며 판로를 다각화하고 있는 리선희씨
킹스베리 재배를 안정화하고 다양한 맛의 딸기품종을 소비자에게 선보이며 판로를 다각화하고 있는 리선희씨

외국인 며느리의 농촌 정착기
딸기 수확 끝물에 접어드는 4월 말, 경남 하동 옥종면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별줌마농장’ 리선희(46)씨는 딸기묘 심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농한기인 여름을 대비해 직접 모종을 키워 판매하며 소득을 보전하고 있어서다. 리씨의 11동 하우스에는 ‘킹스베리’ ‘설향’ ‘메리퀸’ 등의 딸기가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리선희씨는 중국 연변에서 한국으로 2009년 시집왔다. 그의 친할아버지는 경기 수원이 고향으로 리씨는 재중 동포다. 어릴 적부터 한국말과 중국말 모두 구사했지만, 중국어는 성조도 복잡하고 한자도 어려워 힘에 부쳤다고 한다. 중국인이어도 연변지역 소수민족이어서 중국 내에서 차별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조부모의 고향 한국 사람들은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란 희망으로 이주해온 리선희씨.

그는 중국 연변과 상하이에서도 직장생활을 한 똑 부러지는 여성이었다. 한국에 정착해서도 군 소재지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중국어수업을 하는 다문화강사로 2년간 활동하며 시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하지만 결혼이민여성의 사회활동은 농촌 어르신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십상이었다. 과도한 관심을 한몸에 받아서일까. 리씨의 시어머니가 마을에 한둘이 아니었다는 전언이다. 8년 동안의 시집살이를 견디고 시부모님 농지를 물려받은 리씨는 토마토에서 딸기로 작목을 전환했다.

“옥종딸기가 정평이 나 있는데, 딸기재배 농가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보니 재배기술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무슨 이유인지 3년 동안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의지할 곳 없던 그를 농업인으로 성장시킨 건 뜨거운 학구열이었다. 하동군농업인대학 친환경농업과정, 첨단품목대학 딸기전문과정, 농산물가공반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이수했고, 지난 2021~2022년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딸기전공)도 졸업했다.

특히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딸기전공 7기로 20개월 동안 수업을 다닌 건 리씨가 전문농업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스스로 터득한 지식을 영농현장에 하나씩 접목하면서 자신감도 갖게 됐다.

“든든한 보험에 가입한 기분이죠. 매년 계절에 따라 딸기재배에 애로가 생기면 교수님에게 자문을 구했어요. 현장 컨설팅으로 농장까지 직접 방문해 해결해줘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외국인며느리’ 색안경에 농촌정착 어려움 겪어
뜨거운 학구열로 명실상부 딸기농업인으로 우뚝
킹스베리 재배 마스터하며 싱가포르 수출 성과
농협 여성조합원으로 남편과 동등한 농업인 지향

결혼이민여성으로는 유일
농업마이스터대학은 2009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전국 9개 도에 설치돼 농업인들이 창조적 농업인재로 발돋움하는 기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 농업의 선진화와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품목중심, 현장실습 중심의 실용교육과 전문농업경영인 농업마이스터 양성을 위한 교육을 운영한다.

응시자격은 해당 전공 과정의 품목을 5년 이상 재배한 경력이 있는 중상급 이상 기술을 보유한 농업인이다. 농업인에게 첨단 농업과학기술 동향과 작물 맞춤별 재배정보, 병해충 방제, 유통과 마케팅 등을 제공해 변화하는 시대에 농업기술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심화과정이다.

최근 리선희씨가 졸업한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은 2022년 운영 종합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하면서 전문농업인 양성 교육의 장으로 5년 연속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종합평가에서 교육만족도, 학습성과도, 현업적용도 등의 교육성과가 타 마이스터대학과 견줘 우수했다는 후문.

경남도 최고 농업교육기관으로 위상을 높인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은 경남의 대표 농작물 위주로 10개 품목전공을 11년간 운영하고 있다. 6기까지 1111명이 졸업했다. 7기 교육생으로 졸업한 리선희씨는 205명의 교육생 중 유일한 결혼이민여성이었다.

김한비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원예학과 딸기전공 과정장은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은 학장을 비롯해 경상남도 관계관, 주임교수, 과정장이 협력해 선진농업기술이 농업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교육 운영주체로서 기획 특강을 통한 최다 농업마이스터 배출, 온라인해외기술교육, 스마트 농업기계교육, 찾아가는 현장컨설팅 등 최근 농정 이슈를 반영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교육으로 농업인들과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리선희씨 남편은 입버릇처럼 “내가 없더라도 모든 농사일을 해낼 줄 알아야한다”고 늘 말해온 터라 리씨 또한 언젠가는 자신의 농업 역량을 내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킹스베리로 날아오르다
“남들과 똑같이 농사지으면 시부모님을 뒤따르는 것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딸기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시부모님과 남편이 알려준 딸기재배법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됐습니다.”

2016년에 육종·보급된 킹스베리가 계란보다 크다.
2016년에 육종·보급된 킹스베리가 계란보다 크다.

대중적인 딸기 품종인 ‘설향’ 외에도 ‘킹스베리’에 승부수를 띄운 것도 앞으로 20년을 내다본 선구안이었다.

킹스베리는 2016년 충남도농업기술원에서 육성했다. 커다란 과육에서는 복숭아 맛이 나고 높은 당도로 유명하다. 크기는 일반 딸기보다 2배 이상 큰데 성인 남성도 한입에 먹기 힘들 정도다. 단점은 흰가루병에 취약해 재배가 어렵고 수확량이 적다는 것. 이로 인해 시장에서도 가격이 높게 형성된 로열과로 대우받고 있다.

“킹스베리는 꼭지 쪽이 빨갛지 않더라도 당도가 높아요. 소비자들에게 킹스베리를 택배로 보낼 때 흰 부분을 안심하고 섭취해도 좋다는 안내문을 동봉하고 있습니다.”

리선희씨는 마이스터대학에서 딸기 재배법을 확립해나가면서 유통회사와 킹스베리를 계약재배해 납품하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한 택배거래, 공판장 등으로 판로를 다각화했다.

“킹스베리는 40% 이상을 택배로 판매하고 있어요. 킹스베리딸기잼도 가공하는데 인기가 많아 현재는 품절상태네요.”

킹스베리, 메리퀸, 내년에 식재할 ‘금실’까지. 리씨가 다양한 딸기품종 재배에 도전하는 이유는 중간 유통과정 없이 전국으로 택배거래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열정에서 비롯됐다. 이를 위해 리씨는 꾸준히 우체국을 직접 방문해 딸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설향 딸기 외에도 딸기의 다양한 맛을 전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별줌마농장을 알리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킹스베리는 흰가루병에 취약해 비교적 재배법도 쉽고 수량도 많은 설향에 비해 어려운 작목이다. 그동안 옥종면에서 킹스베리 재배에 도전한 농가는 5곳이었는데, 현재는 2곳의 농가만 킹스베리를 재배하고 있다고.

우리나라에서 수출 주력 농산물로 꼽히는 딸기는 재배 농가만 1898농가(2023년 2월 기준)에 이르는 충남 논산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데, 리선희씨는 지난 2019년 싱가포르에 킹스베리 딸기를 시범 수출하는 농업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별줌마농장에서는 직접 딸기를 포장하고 택배를 통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이고 있다.

능률 오르며 주도적 삶 가꿔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도 충실한 리씨는 아이들을 위해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차량 운전으로 기동력이 생기면서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동문들과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딸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남편과 대화가 안 통하던 부분은 친구와 지인을 만나 해결하며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나아가 리씨는 옥종농협 여성조합원으로 가입해 자신의 입지를 다졌고, 가정의 변화도 이끌었다. 자신만의 주관을 갖고 남편과 끊임없이 딸기에 대해 대화하면서 동등한 농업인으로 관계를 다져왔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과거에는 집안 어른들 말을 군말 없이 따르던 며느리였죠. 전문농업인으로 성장하면서 시부모님 생일상차림을 외식으로 바꿨고, 명절 연휴 형님이 친정에 갈 수 있도록 분위기도 주선했어요. 본업인 딸기농사를 잘하니까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농장에서 내일 해야 할일과 하루의 순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눈에 그려진다는 리선희씨.

“딸기처럼 향기로운 작물로 농사짓는 것 자체가 복 받은 일이죠. 딸기는 무한대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남편 그늘을 벗어나 내 이름의 딸기를 재배하는 것이 꿈입니다.”

■리선희씨는요~ – 김한비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딸기전공 과정장
“선희씨는 꿈을 향해 앞서가는 인재”

김한비 딸기전공 과정장
김한비 딸기전공 과정장

- 7기 교육생 리선희씨는.
다방면으로 열정적인 분이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분이다. 한 곳에 집중한다고 다른 부분을 놓치는 것 없이 항상 노력했으며, 긍정적인 마인드와 밝은 에너지로 23명의 딸기전공 교육생, 담당 교수님과 거리낌 없이 지내며 교육에 대한 의지도 남달랐다.

리선희씨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이듬해에 신청할 교육을 알아봤다. 2년의 장기교육을 한 번 듣기도 버거운데, 내년을 계획하며 지속적으로 역량을 높이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 딸기전공을 진행하며 에피소드는.
항상 현장학습 나갈 때마다 겨울에는 보온병에 따뜻한 믹스커피와 아메리카노를,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을 같이 챙겨와 교육생들에게 베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일본으로 국외연수에 참여하려고 하던 중 우리나라는 일본 입국이 무비자로 변경된 상황이었지만, 리선희씨의 모국 중국은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끝내 국외연수를 포기했던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 특색 있는 딸기품종에 대한 도전은.
대부분 한국대표 딸기품종으로 알고 있는 품종은 설향, 금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딸기품종은 킹스베리, 비타베리, 만년설 등이다. 많은 딸기품종이 유행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의 딸기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있어서다.

농가에서는 생산 목적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 유통하는 것이 판매할 때 우수한 품질과 높은 가격을 받기 유리하다. 일본 딸기품종 외에도 우리나라 딸기품종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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