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생활개선연합회장 탐방 - 심명순 전라북도연합회장

▲ 지난 2월 제16대 한국생활개선전북도연합회장에 취임한 심명순 회장은 ‘소통’과 ‘화합’을 바탕으로 긍지와 자부심이 넘치는 전북생활개선회를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농도 전북’ 명성은 전북생활개선회가 지키죠
 하반기부터 현장교육, 선진지 견학 확대
 시어머니 103세까지 모신 효부…지역사회 모범

심명순 회장은 35년 전 첫 아들을 낳고, 다음해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김제로 이주해 농기계 재활용사업을 계속했다. 김제시 황산동 일대에 농토를 마련한 1995년부터는 쌀농사를 시작하며 부부는 농부의 길을 걷게 됐다. 농업과 농촌생활을 잘 몰랐던 심 회장은 황산동생활개선회에 가입한 후 본격적인 농촌여성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고 드디어 지난 2월23일, 제16대 한국생활개선전북도연합회장으로 취임했다. 6월 하순 녹음이 짙어가는 전북 김제의 들녘에서 그를 만났다.

-귀농 후 농촌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을 동년배 친구와 생활개선회에 가입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게 됐어요. 처음엔 마늘장아찌 담그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각종 장류 담그는 법을 배웠고, 천연염색 등 다양한 교육에 참여하며 재미를 느꼈죠. 농업기술센터 교육 덕분에 농촌생활 적응이 더 순조로웠고, 삶의 질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전북생활개선회의 특징과 장점은?
농도(農道) 전북의 생활개선회원들은 여성농업인으로서 농촌·농업을 지켜나간다는 사명감에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배움의 열의도 강해서 적극적으로 교육과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어떤 전북생활개선회를 만들어 나갈 생각인지?
제가 도연합회장에 나오려 마음먹었을 때, 회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소통의 확대’란 것을 알게 됐어요. 집행부가 회원들과 충분한 소통을 통해 사업과 활동 방향을 정하고, 사업의 추진단계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일이 매우 필요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된 거죠. 회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농업기술원 선생님들의 조언을 참고해서 회원들이 원하고 바라는 일들을 우선적으로 펼쳐보려고 해요. 코로나19 상황이 좀 나아지면 적극적으로 선진지 견학과 현장교육 등에도 눈을 돌리려 합니다.

-올해 특별히 추진하는 과제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 실천하려 합니다. 환경보호와 생태보전을 위한 활동은 소소한 일 같아도 가장 쉽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탄소중립의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농촌을 가꾸고 지켜가는 우리 생활개선회원들은 조그만 것이라도 성실하게 실천하려고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리·수납 교육도 계획하고 있는데, 우리가 체계적인 정리수납 능력을 갖추면 가정과 일터에서 일들이 훨씬 효율적이고 매끄럽게 돌아가리라 봅니다.
우리 회원들은 바람직하고 올바른 일이라면 잘 이해하고 따라줍니다. 지구 환경을 지켜나가는 일은 우리 자녀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세대가 적극 나서고, 회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에요. 우리는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 확대, 폐비닐 모으기 등을 실천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정부도 우리처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면 좋겠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생활개선회 활동에 제약이 많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농촌지역에 있다고 해서 첨단기술에서 뒤처지지는 않아요. 각종 비대면 SNS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더욱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의견을 교환합니다. 농업기술센터와 농업기술원에서도 회원들에게 이 같은 방식을 잘 지도해줘서 지장이 없어요. 그래도 앞으로 여성지도자 리더십교육, 자연과 함께하는 천연염색 체험, 농촌융복합 농촌체험, 농촌여성지도자 능력배양 교육, 김장 나눔행사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겁니다.

-보기 드문 ‘효부’로 소문나셨던데....
스물다섯에 시집와서 27년간 모셨는데,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일’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시 농촌에선 시부모님 모시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남편은 제게 늘 고마워하고 아껴줍니다. 저도 시어머님의 노후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신 것이 내심 뿌듯하고요. 한 때 남편이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시자고 했을 때, 저는 단호히 거부하고 집에서 수발했어요. 지금도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1986년 결혼 후, 2012년 103세로 시어머니가 작고하실 때까지 헌신적으로 봉양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보기 드문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고, 관련 단체에서 주는 각종 ‘효행상’도 여럿 받았다. 남편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더욱 끔찍이 자신을 아껴줘 남편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경선을 통해 회장에 선출되셨죠?
“솔직히 도회장 선출이 경선까지 갈 줄 몰랐어요. 하지만 경선이 시작된 이상 저의 진솔한 모습을 최대한 알리고, 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어요. 경선이 ‘민주주의의 꽃’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생활개선회 만큼은 사전에 충분히 조율해서 추대하는 형식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중앙은 모를까 지방에서까지 선거 기탁금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道)를 책임지며 농촌여성들을 대표하는 일에 책임이 크지요?
저를 선택해준 회원들의 마음과 기대를 잘 알고 수행해야겠지요. 또한 제가 전북지역 생활개선회의 대표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현안과 애로사항을 잘 수렴하고 농촌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전북지역은 식품산업클러스터가 조성돼 있잖아요. 농촌여성들이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과 창업에도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의욕과 능력을 갖춘 농촌의 여성 인재들을 더 발굴해주고 교육과 훈련을 확대해 줄 수 있도록 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농촌여성신문에 바라는 점은?
전국 곳곳의 훌륭한 농촌여성지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잖아요. 늘 그 수고와 열의에 감사하고 있어요. 우리 회원들은 각자마다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더 많은 인재들을 발굴해서 소개해 주면 좋겠네요. 꼭 농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면에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회원들이 많아요. 취재의 영역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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