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야 강소농 - 전북 무주 꽃피는 산골농원 김화자씨

농사 고되지만 뿌듯함이 더 커
적상면 분과위원 등 생활개선회 활동도 열심

▲ 김화자 회원은 귀농을 위해 철저한 준비와 마을주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그는 2013년 무주군으로 귀농해 사과와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즙을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흔히들 말한다. ‘나중에 시골가서 집 짓고 살아야지…’.
일상에 지치거나 도망가고 싶어질 때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리멸렬한 곳을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살아가리라는 꿈을 다들 한 번씩은 꿔보기 마련이다.
막상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고 설사 귀농·귀촌을 했더라도 적응을 못하거나 꿈꿔온 로망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에는 귀농·귀촌의 로망을 실현해 낸 사람이 있다. 생활개선무주군연합회 김화자 회원이다.

귀촌보다 귀농
지난해 전라북도 귀농·귀촌 우수사례 발표 현장에는 농업으로 억대 연봉 만드는 비결 등이 오고가는 가운데 귀농후 소소한 일상과 행복, 자기 삶의 철학에 대해 설파하는 이가 있었다. 김화자씨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억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데 그 앞에서 농촌의 건강하고 정겨운 일상에 대해 발표하기 조금 민망하긴 했어요.”
그러나 귀농 후 꿈꾸었던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가공이나 6차 산업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인정받은 것 아니었을까.

비결은 바로 철저한 준비다. 경기도 일산에서 대형 문구점을 운영하던 김 씨 부부는 항상 귀촌 후의 일상을 그리고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다.
“남편과 나 둘 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자연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평소 오지 여행도 자주 다녔고요. 다행스럽게도 퇴직 후 귀촌 생활에 대해 둘 다 마음이 맞았고, 수년간 준비했죠.”
김 씨는 2013년 귀농했지만 2007년 지금의 집터를 구매하고 6년간 경기도에서 무주를 오가며 천천히 마을에 스며들었다.

“무주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어요. 집 지을 곳을 보러 다니다가 딱 여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눈에 무주의 산세가 딱 들어오는 이 풍광을 놓칠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고민 없이 계약했다. 예쁜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길 계획이었다.
“여기가 원래 온통 사과밭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사과농사 지으시던 분이 자기가 알려줄 테니 농사 짓는거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농사가 이렇게 힘든 줄 모르고 알겠다고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귀촌계획은 귀농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역시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었다. 2016년 사과를 따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김 씨는 수술로 그 흉터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수술 후 힘이 들어서 후회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지으며 얻는 게 더 크더라고요. 새싹이 돋아날 때, 과일이 열려 결실을 맺을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 김화자 회원이 만든 다육이 화분

농사 결심 후 끊임없이 이어진 교육
김 씨는 건강하게 농사지으려고 노력한다. GAP 인증을 받은 껍질째 먹는 사과, 무농약 블루베리 등을 농사짓고 있으며 사과즙과 블루베리즙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죠.” 그렇게 매년 강소농 교육을 받던 것이 6년이 흘렀고 어느새 코엑스에서 열리는 강소농 대전에 무주군 대표로 나갈 정도로 강한 농업인이 됐다.

전교회장을 도맡을 정도로 농업대학도 열정적으로 다녔다. 농촌 정착학과, 식품발효, e마케팅, 농산물 가공 등을 공부하며 작년에는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상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팜파티 플래너, 떡제조기능사, 식품가공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현재는 남편과 함께 농촌체험학습지도사를 준비하고 있다. 손재주가 뛰어나 그림과 도자기를 즐기는 김 씨는 다육이로 미니정원 만드는 체험을 계획 중이라고.

“최종목표는 외갓집 놀러 온 것처럼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산세도 즐기고 다육이로 사부작 사부작 미니정원도 만들고 편안히 있다 가는 그런 쉼이 있는 공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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