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생활개선연합회장 탐방-이행단 전주시연합회장

이행단 회장은 20여 년간 담배농사를 지었다. 독한 담배 냄새를 맡고 새벽에 일어나 뻘뻘 땀 흘리며 일했다. 그러다 농지에 전주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농사를 정리했다. 그렇게 농사와 결별하는 듯싶었는데 집에 가만히 있는 농기계를 보니 농사를 안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아무래도 농사가 운명인가 보다고 말한다.

▲ 이행단 회장은 회원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10년 넘게 매월 봉사를 이어오는 힘이라고 말한다.

농사 정리했다가 농기계만 보면 몸이 근질
10년 넘게 이어오는 생활개선회 봉사활동

농사는 내 운명
전남 신안군이 고향인 이 회장은 젊은 시절, 서울에서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렇게 정착을 하는 듯 싶었지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편의 고향인 전주에 따라 내려오게 됐다. 잠깐 내려온 것이 이렇게 평생 농사 지으며 살 줄은 몰랐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지금은 담배농사를 안하지만 담배가 참 힘들어요. 냄새가 독하고 또 한여름에 일해야 하거든요. 소득은 높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고생했죠.”

살던 곳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농지를 정리한 이 회장은 고된 농사일을 쉬고 싶기도 했지만 마당에 있는 농기계를 볼 때마다 몸이 근질거렸다고 한다.
“집에 있는 농기계를 볼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과 상의한 끝에 다시 농지를 구해 농사일을 시작했죠. 지금은 벼농사, 고추, 옥수수, 감자 등 복합영농을 해요. 이쯤 되니 농사가 제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회장까지 오르다
생활개선회는 남편의 고향에 따라 내려오자마자 가입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됐다. 이 회장은 가입 당시 전주시생활개선회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 돼 회원이 40여 명 안팎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회원이 200여 명 정도 돼요. 도농교류 차원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회원들도 받다보니 회원 수가 많이 늘었어요.”

이 회장은 동회장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시연합회 사무국장일을 맡았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회계 살림살이를 도맡아 온 이력 덕분이라고. “당시 동회장님이 부탁하더라고요. 그렇게 전주시연합회 살림을 8년이나 맡았어요.”
사무국장 8년, 부회장 2년. 총 10년간 전주시연합회 임원으로 기반을 탄탄히 다진 이 회장은 작년에 회장직에 올랐다.

“이전 회장님들 보고 알았지만 정말 바쁘더라고요. 각종 회의, 교육 등 참석으로 눈코 뜰새 없어서 농사도 못 지었어요.”
그러나 올해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고.
“계획에 차질이 생겨 안타깝죠.”

회원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봉사의 힘
전주시생활개선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해오던 봉사활동도 올해는 코로나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비록 올해 상반기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전주시생활개선회는 1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매월 장애인복지시설에 방문해 빨래, 청소부터 바느질까지 돌봄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 회장은 교육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환원하고 싶은 회원들의 마음이 봉사를 오랜 세월 이어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록 상반기에 방문은 하지 못했지만 나눔 봉사로 그 마음을 이어가려고요.”
장애인시설에 방문해 직접적인 돌봄봉사는 어렵지만 전주시생활개선회는 고추장, 김치 나눔으로 봉사를 이어나간다고 한다.

“얼마 전 전문강사를 통해 고추장 담그기 실습교육을 받고 회원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활용해 고추장을 담갔어요. 우리 회원들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고추장 100통은 사회복지시설로 전달했고요.”
김치교육도 이어갈 예정이다. “실습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나눔을 하고 싶어요. 코로나로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 아닙니까. 우리 회원들의 봉사는 계속될 겁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