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누리백경(百景) ⑧

우리나라에서 민간전화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02년 3월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15년 전의 일이다. 개통된 그 이듬해 3월까지 1년동안 개인전화를 가지고 있던 집은 지금의 서울인 한성에 11곳, 인천에 7곳, 평양에 2곳 등 모두 20곳 이었다. 한성에는 주로 중국집과 외국인이었다. 평양에는 관찰부 등의 관공서에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한국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고, 거의가 크게 장사를 하는 외국사람들이었다. 3년 뒤인 1905년까지 민간전화가 50대로 늘어나긴  하지만, 역시 주 가입자들은 중국상인들이었다. 그나마 10여 명의 한국인 가입자가 있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외세를 끌어들이는 새로운 문명물이라는 주술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전화에 대한 인식 때문에 명사나 벼슬아치 양반들은 단 한 사람도 끼어있지 않았다.

당시 전화교환대는 12대, 전화기는 189대로 되어 있었는데, 전화를 영어의‘텔레폰’을 국역하여‘덕진풍(德津風)’,‘다리풍’또는 말을 전하는 기계라는 한자어 뜻으로‘전어기(傳語機)’라 불렀다.
조선 황실이 있었던 덕수궁에는 1898년에 황실전용전화가 개통되었는데, 고종황제는 활발하게 이 전용전화를 이용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독립협회가 그 사무실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난 후 위홍석이 들어와 말하길,‘금일 전어기로 황제의 칙어가 있을 터이니 회장은 전어기 앞에 와 기다리라’하였으니 곧 고종황제의 전화 칙교가 있었다.”

이렇게 황제의 전화를 받을 때에는 의관을 바르게 갖추어 입고 전화통 앞에 엎드려 신하의 예를 갖춘 다음에 엎드린 채  전화를 받아야 했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이것이 불과 1세기 전의 일인데, 10년 전인 2007년에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획기적인 발명품이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바로 애플CEO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최초의 스마트폰‘아이폰’의 등장이었다. 그 이전까지 꾸준하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전화기는 휴대통화와 문자메시지가 핵심기능이었으나, 아이폰은 휴대전화로 이메일,인터넷 검색, 일정관리, 게임 등 PC로만 가능했던 모든 기능을 구현했다. 컴퓨터에 통신기능을 결합한 혁신적 발상으로 스마트폰을 모든 정보기술(IT)기기의 중심체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때까지 휴대전화 시장 1~2위를 다투던 난공불락의 노키아와 모토롤라는 이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혁신바람 앞에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앞으로 10년 내에는 아이폰을 선보인 저 세상의 스티브 잡스도 놀라 관에서 벌떡 일어날 신기술들이 속속 현실화 된다. 옷처럼 입을 수 있고 태양광 충전이 가능한 천으로 만든 스마트폰, 눈에 보이는 정보를 담는 렌즈 폰, 사람의 생각을 읽어 다른 사람에게 문자로 보내는 텔레파시 폰, 접거나 두루말이처럼 돌돌 말 수 있는 스마트 폰… 등등. 

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스마트폰 진화의 끝은 어디인가? 불과 1500cc의 뇌용량을 지닌 인간의 무한 창조능력과 잠재력, 그 미래가 궁금하다 못해 오싹한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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